Ⅴ. 제주문화의 창조
1. 제주문화의 세렌디피티적 재조명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1] 다양한 문화가 조우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헌팅턴이 설파한 ‘문화가 중요하다’는 울림은 이미 우리 삶 깊은 곳까지 자리하였고, 우리의 삶은 문화라는 이름의 프레임 속에 문화를 즐기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다. 문화에는 다양한 특징이 있다. 특히, 문화는 인류의 공통적인 것을 포함하지만 이보다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발휘될 때 짝퉁문화가 아닌 진품 문화, 명품 문화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한국과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자신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과거 제주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고난과 시련의 역사였다. 한때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중죄급 유배인의 유배지가 되기도 했으며,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군사기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제주도 원주민에게 내륙보다 괄시의 땅 일본을 선택하게 할 정도였다. 즉, 제주도는 나와 타자로부터 버려진 곳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도가 달라졌다. 섬이라는 특징, 자연 지리적 조건,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진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구가 맞물려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각광을 받고 있다. 경제적 풍요와 삶의 여유는 환경과 참살이 문화를 생각하며 제주도를 떠올리게 했고, 정보화는 바다라는 지리적 공간으로 고립된 섬을 해방시켜 세계와 소통하는 제주도를 만들었으며, 세계화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제주도로 불러 모았다. 또한 교통과 통신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척박한 곳을 살기 좋고 쾌적한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치열한 경쟁과 각박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제주도가 고립된 자연속의 휴식 공간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시대적 요구를 골고루 갖춘 제주도와 제주도의 문화가 점점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의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이 발달하면 일원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사회를 읽는 방법도 일원화 혹은 기성이론을 토대로 진행되기 십상이다. 또한 기존의 것만 따르다보면 우리 모두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경로의존성’에서 나오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제주도의 문화를 보려했다. 본고에서 말하는 새롭다는 것은 제주문화에 접근하는 이론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방식이 새롭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다른 연구에서 이러한 이론은 소개되고 연구되었다. 그러나 철학, 문학, 사회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는 이론들의 복합적 적용은 기존의 연구와 달리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전달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존의 제주도 문화를 분석하고 창조적 문화를 만드는 단초로서 ‘실존과 구조’를 통한 접근을 시도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존적 접근은 나와 여기와 지금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문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입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자신을, 성찰(Reflection)의 작업을 통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화의 출발은 자기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문화, 다른 사람, 다른 시대와 조우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실존적 입장에서도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존이 순수하게 어떤 영향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우리의 차이에서 생각해 보면, 나와 우리는 ‘구조적 관계’라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나’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관계’가 ‘우리’에서는 나와 너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실존과 구조를 통한 분석을 토대로 공감과 유비적(analogical) 사유를 이용한 문화의 확대를 시도해 보았다. 자기 문화에 대한 성찰을 마쳤다면, 자기 문화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과 확대가 필요한데,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공감과 유비적 사유가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즉, 실존과 구조에서 찾은 자기 문화의 확대로서 유비적 사유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유비적 사유는 중국 철학에서 강조된 상관적(correlative) 사유와 비슷하다. 또한 연상적 사유라는 말과도 통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귀납논증에 가까워 동양적 사유 양식과 비슷해 보인다. 문학 작품 그 가운데에서도 시에서 유비적 사유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고대 중국 철학의 『장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우언(寓言)이라는 것도 이러한 사유 방식과 같은 선상에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유 방식과 더불어 동양에서 발달한 공감이라는 것이 맞물려 문화의 확장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것은 현대 문화산업에서 자주 거론되는 ‘스토리텔링’의 생산에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비적 사유와 공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느낌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이를 함께 공유하기 좋기 때문이다. 문화의 확장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하지만, 본고에서는 제주역사와 지리를 공감과 유비적 사유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스토리텔링을 이용해서 제주문화를 확대하는 데 적용하려 했다.
끝으로 세렌디피티를 통한 제주문화의 창조를 알아보았다. 물론, 이상의 방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함이 따른다. 제주도 문화의 분석, 확장, 창조를 각각의 이론으로 접근하는 무리함과 이를 구체적인 지역문화에 적용한다는 무리함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는 입장에서 의의를 갖고 시도해 보려한다.
1) 실존과 구조를 통한 제주문화의 분석
현대문화는 실존 개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현대인이 실존을 추구한다는 것은 정신병리학에서 나타난다. 정신병리학에서 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특징짓는 단어를 파악하는 방법은 대개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단어에서 찾는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선호된 객체를 일컬어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 시대를 특징짓는 단어 또한 그 시대가 가장 선호하는 단어에서 찾기보다는 그 시대에서 가장 억압받는 단어, 가장 부정되는 단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반실존주의'로 시작된 후기현대철학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그 단어는 '실존'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실존'의 개념은 정신병리학에서 '트라우마'처럼 잊고 싶어도 계속 기억에 남고, 그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2]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문화는 현대인이 찾고자 하는 나, 여기, 지금이라는 구조적 실존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제주문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지나왔던 그 수많은 난관들은 현대의 난관을 뚫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제시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 어려운 난관 속에서 성공을 이루려고 한 제주문화는 현대 문화에서 찾고자하는 실존 문제의 해법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그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3] 일체의 실체적 가정 없이 나, 여기, 지금이라는 상황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비실체적인 문제 해결 틀인 실존 개념은 자유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2가지 문제 틀 밖에 없던 유럽에서, 유럽이 처한 당시의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4]
나, 여기, 지금이라는 실존의 개념으로 실용성을 접근한다면 실용성은 매우 다양한 해석을 가지게 된다. 21세기에 실용성과 실존 개념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20세기 실존 개념이 출현할 때 실존은 실증주의와 실용주의에 대한 대립개념에서 출발했다. 20세기 발견된 실존개념의 반실용성은 실존주의 흥망의 동인(動因)이 되었다. 이기적 인간이라는 경제학적 인간관이 지배적인 시대에 실존이 가지는 반(反)이기적인 반(反)실용성은 실존주의를 시대의 총아로 만들었다. 그러나 실존주의가 뒤로 물러난 지금, 돌이켜보면 실존주의를 주목받게 했던 반(反)실용성이 바로 실존주의를 사라지게 한 이유가 되었다. 나, 여기, 지금에서 본 20세기 실존 개념과 21세기 실존 개념과의 차이점은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실용주의까지 포용하는 실존개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5]
나, 여기, 지금을 중심으로 한 실존을 기초로 우리는 제주문화를 고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세계시장에서 사전의 대명사로 유명했던 브리태니커는 인터넷 사전의 발달로 어려움을 겪었다.[6] 그런 브리태니커도 결국 나, 여기, 지금을 중심으로 자신을 고찰한 이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브리태니커는 종이 사전 사업을 접고, 자신들의 장점을 찾아 키웠다. 바로 나와 여기와 지금을 중심으로 한 실존과 이를 확대한 구조에서 문제의 답을 찾은 것이다. 실존과 구조를 통한 ‘나’에 대한 분석은 결국 브리태니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분명히 제시해 주었다. 즉, 브리태니커는 두꺼운 종이 사전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프리미엄급 지식을 파는 회사’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으로 많은 대중들로부터 굳건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여기’와 ‘지금’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사회로서 브리태니커의 권위 있는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의 합일점인 온라인 교육시장에 진입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제주도 문화의 경우도 이와 같다. 먼저 나와 여기와 지금을 중심으로 한 실존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자기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제주도의 실존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도는 섬이다. 섬은 고립되어 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갈라파고스제도(Galapagos Islands)는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떨어져 있는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諸島)다. 고립되어 있기에 다양한 생물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군사적으로 주목받게 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는 주요 요지로 사용되었다. 제주도는 고대에는 유배지로, 근대에는 떠나야할 곳으로 버림받았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 사람들이 찾는 파라다이스로 바뀌었다. 파라다이스의 특징은 단절이다. 단절은 능동적이고 자발적 행위며, 고립은 피동적 행위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도 전자는 고립이고 후자는 단절이다. 단절은 능동적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행복을 추구한다. 고립은 불평하는 태도를 가지며 불행하다 생각한다. 과거 제주도가 갈라파고스제도처럼 섬으로서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 이제는 장점이 되어 자발적 단절을 찾고, 고립으로 보존된 결과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제주도가 가진 가장 커다란 실존적이면서 구조적인 특징이다.
둘째, 상황에 따라 축복과 재앙으로 해석을 달리하는 제주도의 자연 조건이다. 동서로 73㎞, 남북으로 31㎞인 제주도는 섬 중앙에 위치한 1950m의 한라산과 368개의 오름, 160여 개의 용암동굴로 이루어져있다. 작은 섬에 이렇게 많은 동굴과 오름이 있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는 연평균 14℃로 따뜻하고, 한라산이 있어 고도에 따라 다른 기온을 가지고 있다. 내륙과 다른 자연 조건 속에 제주도만의 이국적 정취와 문화를 만들었다. 제주도는 대부분이 흑갈색의 화산화토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이었지만, 제주 원주민의 노력과 세대의 변화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 조건은 재앙에서 축복으로 변했다.
셋째, 제주도는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한국의 최남단에 있는 제주도는 한국, 중국, 일본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면서,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동남아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예를 들어, 일제말기에는 극동지역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제주도가 갖는 중요성이 컸기에, 일제는 한반도에 배치된 일본군의 절반에 해당하는 7만 명 정도를 제주도에 주둔시키면서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았을 정도였다.
제주문화는 이상의 세 가지 실존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에 의해 다양하게 변화했다. 첫째와 둘째가 실존적 측면의 것이 강조된 것이라면, 셋째는 구조적 측면의 것이 강조되었다. 각각은 매우 뚜렷한 특징을 지녔다. 이러한 것에 의해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작은 도(道)이면서 가장 큰 도(島)로서 자기만의 색깔을 유지한 채 존재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이러한 세 가지 동인이 제주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제주도와 제주문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제주도의 많은 가정에는 일본산 코끼리 밥솥이 육지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제주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형제와 친척을 두고 있기 때문이란다. 과거 제주도 사람은 육지보다도 괄시와 천대가 심한 일본으로 먹고 살기위해 건너갔다고 한다. 고대에는 유배지로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불과했다. 그러니 과거의 제주도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존감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4·3사태와 같은 역사적 상처를 관광의 대상으로 삼는 다크 투어리즘은 과거 한때, 아름다운 자연 관광과 더불어 사람들이 제주도를 기억하는 두 가지 아이콘이 되었다.[7] 물론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다크 투어리즘이 제주도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 다크 투어리즘으로 지속적이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세계적인 관광지는 다크 투어리즘의 관광지보다 승리와 기쁨의 관광지이다. 관광객은 여행지에 와서 아름다운 자연뿐 아니라 그 자연을 지혜롭고 아름답게 활용한 문화에 더 감동한다. 실제 제주도의 가치는 다크 투어리즘보다 더 훌륭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서 발휘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제주도의 문화를 한의 문화와 같은 불운과 슬픔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과거 일부 제주도민은 스스로의 문화가 주체적인 문화가 아니고 외부로부터 도입된 융합과 식민의 문화라는 인식아래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측면에서 로마 문화와 중국 문화는 제주도 문화보다 더한 식민의 문화였고, 외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도입한 수용과 융합의 문화였다. 이제는 ‘나와 여기와 지금’을 기초로 하여 스스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제주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
제주도 문화의 가치를 알기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로마 문화와 중국 문화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고유 문화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주문화처럼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가 많다. 그러므로 외부 문화를 얼마나 자기에 맞게 활용하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의 기준이 바뀔 필요가 있다. 바뀐 기준으로 제주도 문화를 평가할 때 제주문화는 로마 문화나 중국 문화만큼 관광객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 제주문화를 찾는 관광객에 대한 대응은 매우 미진했다. 과거 제주문화는 자신의 문화를 슬픔의 문화, 감추고 싶은 문화로만 알리어 관광객에게 다크 투어리즘의 공감을 일으켰지만 희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고난극복의 문화를 통해 활력을 얻고 싶어 한다. 이제 이러한 것을 역으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는 머리 좋고 의리 있는 사람이 많다고 평가 받았다. 제주도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것은 과거 우수한 인재들의 유배지였다는 점도 작용했고, 또한 의리가 가장 두터운 것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공동체가 가진 윤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 운명이 긍정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영화 ‘지실’에서 나타났듯이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왔고 한국은 전통 사회에서 매우 순박한 민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도의 민심이 소박하지만 제주도의 소박한 민심을 단지 순수함만으로 볼 수는 없다. 제주도의 공동체 의식은 수많은 외침에서 비롯된 자생적 생존방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 제주도가 상업화된 오늘날까지 제주도의 공동체의식은 궨당문화로 선거에서도 영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결국 장점과 단점은 손바닥의 안과 밖과 같다. 실존과 구조의 변화 속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문화는 이러한 제주문화의 실존과 구조적 특징을 앞세워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모델로 성장할 수도 있다. 제주도에 있어 주체적 수용은 이재수의 난과 4·3사건에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재수의 난과 4·3사건은 각각 영화화되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영화를 중심으로 이재수의 난을 살펴보면 제국주의 시절 가지고 있던 천주교의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는 실제 가장 아름다운 경관만큼 가장 강렬한 고난극복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제주도가 이룩해 온 문화의 가치를 현대인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제주문화에 대한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관광은 관광으로 키워야 한다. 관광은 서양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광(光)을 찾아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빛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을 찾아가 꿰뚫을 만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관(觀)]이다. 이제 제주도는 시대와 공간이 요구하는 요청에 따라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도의 관광은 나를 치유하고 너를 치유하는 치유의 관광으로 변할 수도 있다. 또한 제주도를 도덕군자의 섬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윤리적인 지역 가운데 하나로 성장 할 수도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나쁜 짓을 하면 도망갈 곳이 없다는 섬의 오랜 특징과 깨끗한 자연을 매개로 이러한 것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주도는 문화적으로 한국에서 특별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자연과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 제주도는 세계 자연유산, 세계 7대자연경관,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더불어 다양한 국제회의와 국가 정상회담 등을 개최하여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구조론적 특징인 섬, 자연, 지정학적 동인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통한 제주문화의 확대
제주문화는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통하여 문화적 확대를 모색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이전과 달리 공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8]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은 그 대안으로 ‘공감’을 찾았다. 소위 유물론의 붕괴와 철학의 ‘언어적 전회’ 이후 그 동안 경시되었던 인간의 공감능력 혹은 현상학적 공감감정에서 이성을 초월하거나 혹은 이성의 실제적 근원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실제 뇌과학 분야에서도 공감이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거울 뉴런이 발견되었고, 인터넷의 발전 속에서 공감이론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들이 사회 현상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9] 인문학을 정신치료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인문치료에서도 공감은 중심주제가 되고 있다.[10] 상실의 시대, 피로 사회에서 허기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자각,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여기와 지금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이것은 선진(先秦)시기 유가(儒家)에게도 동일한 문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들은 문제를 나와 여기와 지금에서 공감하며 풀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바로 나와 여기와 지금, 즉 실존과 구조의 근거가 된다. 공감하기 때문에 실존과 구조에 대한 파악이 중시된다.[11]
공감이 문화이론의 키워드로 대두되는 것은 공감이 문화의 기반이 되는 도덕이론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이 도덕이론의 기반이 되는 것은 유교문화의 근원이 공감에 있었다는 것을 서양에서 재발견했기 때문이다.[12] 공감의 측면에서 유교문화는 제주에서도 발견된다.[13] 이러한 공감이론은 유비적 사유와 상호 보조하며 문화의 확장에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문화는 오늘날 공감이라는 주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의 궨당문화는 나, 여기, 지금을 중심으로 한 공감문화로서 유교문화의 가장 고귀한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용암의 분출부터 시작되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보유한 제주도는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부터 제주도의 유비적 문화의 역사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주도는 남태평양 한 가운데 우뚝 솟아 바다와 육지의 용암분출이라는 유비적 대조로부터 문화가 시작된다. 일찍이 제주도 문화는 진시황의 서복이야기에서 보듯이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만으로도 문화가 된다. 제주도는 진시황이 명하여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 일행의 종착지로 역사책에 가장 먼저 기록된다. 서복의 이야기는 권력과 자연이라는 유비적 대조의 표본을 보인다. 또한 제주도가 가진 자연의 유비적 대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주도의 문화적 가치를 보여준다. 제주도는 그 자연만으로도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유비적 대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통한 제주문화의 확대는 다양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 제주도 문화의 다양한 확대가 여러모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주도의 지리적 특징을 근거로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적용한 제주문화의 확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제주도의 지형에 풍수학적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제주도 전체를 하나의 문화유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14] 올레길로도 유명한 제주도지만 제주도에는 올레길보다 더 큰 자연의 지혜를 담고 있는 물과 불의 길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이미 몇 몇 사람들에 의해서 거론되기도 했다. 본고에서도 이것을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통한 제주문화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물의 길과 불의 길로 앞서 제시했다.[15]
제주문화는 공감과 유비적 사유로 다양하게 해석되며 확장될 수 있다. 그밖에도 제주도의 자연에 얽힌 전설, 신화, 문화와 역사, 일상 문화에도 유비적 사유를 찾거나 적용하면서 제주문화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유비적 사유란 전체와 개체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전체를 이해하든 개체를 이해하든 동일한 구조로 사유하면 된다는 방식이다. 이처럼 유비적 사유와 공감은 구조와 실존의 문제를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유비적 사유는 동양 문화의 특징이면서도 제주문화에 접목하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유비적 사유를 적용하여 제주문화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제주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의 특징에 따라 유비적 사유가 더 도드라졌기 때문이고, 제주는 고립이라는 위기 상황으로 늘 나, 여기, 지금이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3) 세렌디피티를 통한 제주문화의 창조
제주도의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분석되고, 확대되면서 창조될 수 있다. 창조의 방법과 과정도 매우 많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기에 어떤 고정된 틀에서만 볼 수는 없다. 다양한 창조의 방법 가운데, 본고에서는 세렌디피티의 관점에서 제주문화의 창조를 알아보려한다.
세렌디피티는 제주문화의 창조에서 우리가 새롭게 고려해 볼 만하다. 제주문화의 세렌디피티적 특징은 앞서 실존과 구조에서 살핀 섬이라는 것, 자연적 조건,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위치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주문화에 유비적 접근을 통해 제주문화를 확대할 수 있고, 세렌디피티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확대 즉, 창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문화의 실존적 구조적 분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섬이라는 것은 고립적 성격과 진출이 용이하다는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문화가 번성할 때는 진출이 용이하여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지만, 문화가 침체할 때는 홀로 고립되어 주위의 시선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건의 전후에 우연적 요소가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렌디피티로서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반도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경계를 이루는 일본의 해양문화, 중국의 대륙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역시 자신의 문화가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제주문화의 위치와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제주문화를 살펴보면 우연성을 활용한 문화적 저력이 발견된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지금까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제주도 물 ‘삼다수’는 마실 물이 부족했던 제주도 섬의 한계를 극복한 또 하나의 반전 드라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세렌디피티가 존재한다.[16]
현재 추진 중인 전기자동차의 활용도 앞서 살핀 제주의 특징을 극대화한 창조적 접근이다. 과거로는 오랫동안 이어온 조랑말 문화와 연계하고 미래로는 무공해 자동차, 무공해 도시, 환경 수도로 확장한다면 또 하나의 세렌디피티가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영어 특화도시나 국제학교도 고립과 개방의 제주적 상황에서 찾을 또 하나의 세렌디피티다. 더 나아가 국제적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 고립에서 적극적 개방의 섬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반면, 낙후와 발전에서 찾을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과거 자연환경이 제주문화와 제주 사회를 낙후시키는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이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제주도 흑룡만리 돌담밭’처럼 자연과 어울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극복했던 전력이 제주에는 있다. 제주민의 성실하고 뛰어난 개척정신은 돌섬을 가꾸고, 가꾸면서 나온 돌을 담처럼 쌓았다. 그리고 이것이 연결되어 검은 용이 내려앉은 것 같은 장관을 이루었다.[17] 과정 하나하나가 필연이라기보다 우연적 사건에 의해 진행되지만, 인간의 필연적 노력과 태도에 의해 창조적 성공이란 세렌디피티를 보여주었다.
제주 올레도 결국 고립된 섬, 밖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면서도 ‘경계’ 속에 자신만의 경계를 소유하며 바다와 뭍의 경계, 자연과 인간의 경계,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경계 등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섬의 우연성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18] 제주는 다른 곳과 달리 천혜의 자연자원이 사람과 어울려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환경은 제주의 미래를 이끌 또 하나의 귀중한 자원보고가 될 것이다.
또한 섬은 여성이 많고, 여성이 중심이 되는 문화를 조성했다. 예를 들어 김만덕은 한국 역사상 평민신분으로 기부를 통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여인이 되었다. 이제 이를 더욱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의 발전도 결국 여성의 활용에 달려있으니 이를 제주문화에서 창조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또한 궨당 문화로 불리는 것처럼 가장 공동체가 발전된 문화를 이루었다.
‘여성 존중 문화’, ‘올레’에서부터 최근에 거론되는 ‘영어 특화도시’, ‘환경수도’, ‘힐링과 클린의 도시’에 더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전기차의 활용’까지 제주문화의 대부분은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한 문화일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어려움을 극복한 문화였다. 즉, 여기에는 반전을 더하여 성공으로 이끈 ‘세렌디피티’가 존재하는 문화다. 세계는 오늘날 제주가 부딪혀 온 문제점들과 유사한 문제들에 봉착해 있고,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문화가 해결해 온 문제 풀이의 과정은 아픔과 상처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연성이라는 것을 창조적 성공으로 바꾼 세렌디피티는 제주문화의 새 희망이 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세렌디피티가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우연과 실수도 포용하는 열린 문화와 문화적 포용력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문화의 장점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서 예로 들었던 제주도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유비적 감동은 우연성에 기초하여 역사로도 확대될 수 있다. 제주의 역사는 사람들의 영욕으로 얼룩진 육지문화와 달리 자연이 가진 유비적 순수함으로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역사는 필연적 요소만이 아니라 우연적 요소에 의해 존재해 왔다. 역사를 필연적 노력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연적 요소와 함께 보면 다양한 창조적 소재가 발견되고, 오늘의 난관을 긍정적 창조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제주의 역사적 부침 속에는 우연성을 기반으로 한 공감과 유비적 사유의 요소가 존재하는 데, 이는 고려시대 삼별초에서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몽고에게 오래 저항하고 삼별초를 도왔던 제주의 역사는 제주를 넘어 인류와 공감하는 바가 크다. 제주는 조선시대 이르러서는 성리학이라는 보다 절제된 문화체계를 맞이한다. 유교가 과거 해상왕국이 누리던 자유를 다 빼앗아 갔다고는 하지만 유교는 제주에게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기회를 보여주었다. 제주는 유교의 이상사회인 대동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제주에는 아픈 기억이 많았다. 그리고 제주가 타격도 많이 받았다. 제주는 마침내 현대라는 시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이겨내고,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역이 되고 있다. 제주 역사는 세계 문화의 집결지와 같이 한국 본토가 주는 고통까지도 이겨낸 가장 한국적인 지역이 된 것이다. 육지와 고립된 제주의 특성으로 제주도는 역사의 부침마저도 육지와 달리 영광과 고통이 극단적으로 번갈아 찾아오는 특징을 보였다. 우리는 제주문화의 역사를 근거로 세렌디피티를 통한 제주문화의 다양한 창조를 더 많이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렌디피티를 통한 제주문화의 창조를 모색해 본다면, 우연으로 보이는 것도 창조적 필연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제주에 보존된 문화는 저 멀리 유럽에까지 연결되어 있고, 인류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이론들에 의하면 인류가 가장 먼저 문명을 이룬 알타이 지방에서 수 차례에 걸쳐 민족 이동이 이루어져 오늘날 세계 문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19] 아랄 지역에서 이동했다는 민족 가운데에는 인도를 침공했다는 아리아족도 있고 수메르 문명을 만들었다는 수메르족, 이집트족도 있으며 이슬람 문화를 만든 아랍족도 있다. 또한 중국과 동북아시아의 제 민족도 있다고 한다. 홍수와 연관하여 아랄 지역에서 오랜 문화를 함께 이루고 살아왔기에 서로 흩어졌다고 해도 유사한 문화를 이루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더 드러나는 세계문화의 공통성은 아랄 지역에서 흩어졌다는 가설을 더 풍부하게 검증해주고 있다.
그런데 세계는 아랄 지역에서 흩어졌던 초기 문화가 어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궁금해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 그리고 이를 세렌디피티로 승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 제주도다. 제주가 섬으로 고립되어 원형의 문화를 간직 할 수 있는 기회와 실존적, 구조적 상황 속에 다른 지역과 공감할 수 있는 유비적 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관광객이 제주에 와서 가장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제주문화의 시원성이 가진 유비적 요소다. 제주가 가지는 공감과 문제해결 능력은 잠재된 시원문화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관광객은 제주의 시원 문화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주에는 세계에 몇 안 되는 창조신화가 살아 있고, 유라시아에서도 많은 무속과 설화가 남아있기에, 제주는 인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다양하게 재단해서 세상에 내 놓을 수가 있다.
제주도의 문화는 오랜 시절 원시문화 수준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고립된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세계 고대 문화 박물관이라 할 만큼 오래된 문화가 보존되어 온 제주는 관점에 따라서 역사와 설화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설문대 할망’이라는 천지창조 신화는 제주도를 대표한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천지창조 신화가 존재하는 곳은 많지 않다. 자기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원문화로서의 제주문화는 서복을 거처 장보고의 신라시대에는 탐라왕국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오늘날 발전하는 제주도와 같이 탐라는 해상왕국의 문화를 자랑했다. 관광객은 제주에서 제주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탐라왕국의 지혜에도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제주도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관점과 방법만 바꾼다면 구석구석 깊은 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제주도는 진시황이 명하여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 일행의 종착지로 역사책에 가장 먼저 기록된다. 서복의 이야기는 권력과 자연이라는 유비적 대조의 표본을 보인다. 이처럼 제주도의 기록은 서복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제주문화 속에는 세계에 몇 안 되는 천지창조의 신화가 있고, 이스터섬의 석상과 비슷하게 보이는 돌하르방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창조적 상상은 제주의 망각된 역사를 상상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고, 세계화로 지구촌의 정보가 한 곳에 모이면서 제주의 잊혀진 역사가 상상만이 아닌 개연성 있는 것으로 거듭 창조된다. 사실 이러한 것은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가 아닌, 무지(無知)와 무관심(無關心)에서 유(有)로의 창조였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상상의 창조적 실현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발달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제주도가 지금은 UN이 지정한 세계적인 7대 경관과 유네스코 3관왕만을 강조하지만, 언젠가는 세계 문화의 시원지이자 종착지로서의 가치가 재부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을 이제 다시 정리해서 생각해보자. 문화는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 모든 것을 반영하기에 중요하다. 게다가 21세기에 가속화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이 만나 이루어지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은 문화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제 문화는 우리와 시대를 아우르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제주도의 문화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한국에서 제주도의 문화적 가치는 실로 크다. 그것은 제주도가 한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서 반도국이 갖지 못하는 색다른 문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제주문화의 중요성은 날로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의 기저에 실존과 구조에서 언급한 섬이라는 것, 자연적 조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등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도의 문화를 분석하고 확대하고 창조하기 위해, 제주도의 문화를 실존과 구조를 통해 분석하고, 공감과 유비적 사유를 통해 확대하며, 세렌디피티를 통해 문화의 창조를 생각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성을 기초로 하지만, 사실 우연의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그리고 우연이란 것이 모두 좋은 결과만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올바른 행동과 의지에 달려있다. 비록 우연이 성공과 실패를 담보하지 않지만 성공에는 좌절과 실패에 맞서 지속되는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상상력이라는 것도 단순히 공상을 권한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기초 실력과 준비 속에서 나온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성 이전에 우리의 관점을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곳으로 돌려준다. 그래서 실존적 성찰과 구조적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제주문화를 이해하는 종합적인 틀로서 실체보다는 관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제주문화를 실존과 구조의 공감을 통한 주체적 수용, 자연과 역사의 유비적 사유가 주는 감동, 세린디피티라는 우연성을 통한 창조의 모색이라는 관계중심의 틀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느낄 지속가능한 감동은 제주가 가진 자연 그 자체보다는 제주도민이 거쳐 온 자연과 문화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있다. 제주문화를 이해하는 관계지향적인 틀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를 분석하고, 확대하고, 창조하는 방법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양하다. 실존과 구조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으로서 작용할 것이고, 공감, 유비, 세렌디피티는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 제주의 문화가 적응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것도 ‘결국 살아남은 것은 강한 종(種)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고 언급한 것처럼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주문화를 비롯한 지역문화를 연구하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제주도의 문화는 고립과 개방이라는 모순된 상황을 잘 이용하고 있다. 문제를 모순으로 푸는 트리즈의 좋은 예이다. 섬으로 고립되어 있지만, 고립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방으로 고립과 개방의 장점을 취하는 문화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제주도는 버려지고 도망가야 할 대상이었다. 이제는 실존과 구조를 통한 자기 정체성에 맞춰 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주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 오랫동안 점철되었던 고난과 시련의 역사에서 벗어나 희망과 기쁨의 역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1.아래의 글은 저자들이 공동 발표한 「제주도 문화의 분석, 확대, 창조에 대한 다각적 고찰」(『인문연구』 71호, 영남대학교, 2014년)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 2.김덕삼, 최원혁, 「인문학 위기에 대한 나, 여기, 지금을 중심으로 한 실존적 접근」, 『인문연구』 69호, 영남대학교. 455-456쪽.
- 3.제주의 역사는 끊임없는 육지로부터의 수탈과 그 극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현용준, 『제주도 사람들의 삶』, 민속원, 2009년, 20∼51쪽) 그러나 칭키스칸에게서 경영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한때 유행했듯이 『해녀처럼 경영하라』는 책을 쓴 전경일은 제주 해녀에게서 칭키스칸 못지않은 민속경영학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전경일, 『해녀처럼 경영하라』, 다빈치북스, 2010년)
- 4.김덕삼, 최원혁, 앞의 책, 459쪽.
- 5.김덕삼, 최원혁, 앞의 책, 469-470쪽.
- 6.브리태니커가 이런 것을 몰랐을까? 그리고 이런 기회가 없었을까? 1978년 브리태니커는 백과사전의 디지털화에 착수했고, MS보다 4년 앞선 1989년에 CD롬 백과사전을 만들었으며, 위키피디아보다 7년이나 앞선 시기에 세계 최초의 온라인 사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7년 E-Blast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검색 포털 구글과 비슷하다.
- 7.지금은 일본군 전적지를 찾는 것은 줄어들고, 4.3 투어는 ‘북촌’이나 ‘백조일손묘’ 등 일부로 축소되었으며 그 대상도 학생 등 일부에 국한되고 있다.
- 8.‘공감’을 다룬 논문과 책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역, 『공감의 시대』, 민음사. 2010년, 박숙자, 「근대국가의 파토스, '공감'의 (불)가능성 : 『검둥의 설움』에서 『무정』까지 」 『서강인문논총』. 32.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년, 75∼80쪽. 정정호, 『공감의 상상력과 통섭의 인문학』, 한국문화사, 2009년.
- 9.최성실, 「자기 성찰과 인지 과학적 프로네시스의 통섭적 글쓰기」,『한국문예창작』.11(3). 한국문예창작학회, 2012년, 292∼296쪽.
- 10.이찬종, 허재홍, 「공감, 정서 그리고 행복의 관계」 , 『호남문화연구』 49,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1년, 189∼193쪽.
- 11.김덕삼, 최원혁, 「先秦儒家에 나타난 共感으로서의 나 여기 지금」, 『儒敎思想文化硏究』 54집, 韓國儒敎學會, 392-393쪽.
- 12.김덕삼, 최원혁, 「先秦儒家에 나타난 共感으로서의 나 여기 지금」, 『儒敎思想文化硏究』 54집, 韓國儒敎學會, 393-399쪽.
- 13.제주도 유교문화는 함덕-화순을 축으로 구분되어 동남지역은 유교문화로 장남봉사가 더 지배적이라고 한다. 제주로 유배온 유생들이 지배층만 위하고 백성을 무시했다고는 하나 조선시대 이후 제주의 풍속은 유교적 영향을 받아 대각선 축을 기준으로 동남지역이 유교의 문화가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현용준, 앞의 책, 215∼220쪽)
- 14.본고에서 언급한 풍수학은 오늘날 동양의 지리학으로 재평가되고 경제대국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중국과 서양에서도 재평가되고 있다. 풍수학은 풍수학이 기반하고 있는 음양오행이라는 유비적 사유로 말미암아 풍수학적 자연 그 자체가 관광객에게 자연의 문화적 감동을 전해 준다.
- 15.제주도에서 한림공원→산방산→용두암→천제연 폭포→정방 폭포 코스는 물의 길을 보여주고, 제주민속자연사 박물관→만장굴→성산 일출봉→산굼부리는 불의 길을 보여준다.
- 16.물론, 삼다수의 탄생과 발전을 세렌디피티만으로 본 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경제적, 생태적, 정치적 함수가 종합되어 있다. 그러나 물 부족 현실을 타파한 제주도의 상황이나 개발과정에서 우연을 성공으로 이끈 요소를 부인할 수는 없다. 윤석철, 『경영학의 진리세계』, 경문사, 2001, 69-71쪽.
- 17.농림수산식품부는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농어업 유산을 유지·보전·활용하기 위해 ‘국가농어업유산 지정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서 ‘제주도 흑룡만리 돌담밭’이 중요농어업유산 2호로 지정되었다.
- 18.올레는 이웃 나라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세렌디피티의 좋은 예가 되었다. 일본의 규슈 올레가 2012년 2월 1차 개방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제주올레의 많은 것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올레라는 이름, 이정표 등, 그래서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사)제주올레에 매년 업무 제휴비 명목으로 100만 엔을 지불한다고 한다.『중앙일보』, 2014년 3월 14일자.
- 19.유목민의 역사에 대한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세계사를 유목민족의 역사로 규정하고 유목민은 빗방울처럼 갈라졌다 합쳤다를 반복해왔다고 한다. 같은 종족이 동시에 또는 연속적으로 키메르, 쿠찬, 사카, 스키타이, 사르마트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알타이지역에서 기마민족은 각지로 이주하는데 기원전 1,500년경에 언어와, 기원지, 종착지에 따라 크게 알타이 어족과 인도-유럽어족으로 나뉜다. 알타이족에 몽고족, 훈족, 투르크족 등이 있었고 인도-유럽어족에 아리아족, 드라비다족, 수메르족, 스키타이족, 게르만족 등이 있었다. 자크 아틸리 저, 이효숙 역, 『호모 노마드』, 웅진하우스, 2005년, 128-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