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제주문화에 대하여 공부하고 연구하며 글쓰기를 시작한 우리는 말한다. ‘나, 여기, 지금’이 대표하는 실존적 입장을 근거로 이를 확대할 공감과 감응으로 제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리고 이러한 것을 아우르기 위해 제주가 즐겁고 제주도민이 행복해야 한다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단다. 제주도는 재주를 부려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 스스로가 행복해야 한다. 이게 진짜 발전이다. 외형적인 성장이나 보여주기 이벤트, 정치적 이슈와 구호로 점철된 재주넘기는 이제 조용히 사라져줘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주도가 즐거운 도시가 되고 제주도민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세태에 호응하여 물질과 자본이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말자. 제주도는 하와이가 아니다. 제주도는 제주도다. 제주도는 제주도다움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나, 여기, 지금’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제주도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기존방식과 다르게 본서의 제목을 세렌디피티로 정했다. 다분히 도발적이다. 특히, 서양의 사고가 우리를 잠식해 버린 이후,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논하는 것 외의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말이다. 또한 이론적으로 세렌디피티에서 강조하는 ‘우연’에만 초점을 맞추기에도 무리함이 있다.
한계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우연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게 된 것도, 필자들이 서로 만나 이 연구를 하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도 다 우연이다.
그렇다. 삶은 우연이다! 그런데 그 우연 때문에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하다. 팔자 탓인가? 재수 탓인가? 십분 양보해서 재수 탓도 팔자 탓도 있다고 하자. 그럼 그 재수와 팔자를 운용하고, 재수와 팔자의 맹아(萌芽)를 받아들여 삶으로 발아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끝도 없이 재수와 팔자와 남, 남, 남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미우나 고우나 내 인생이고, 싫으나 좋으나 내 인생이다. 그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나로부터 바꿔보자. 나부터 변해보자.
다시! 삶은 우연이다. 하지만 우연도 나로부터 출발한다.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해한다. 행복도 불행도 내 탓이다. 이왕이면 행복해지자. 행복한 삶을 만들자. 모든 것은 내 탓이고, 내가 한 만큼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인생은 우연. 좋은 것도 오고 나쁜 것도 온다.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게 끝나지도 않고, 나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나쁘게 끝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세렌디피티, 우연을 성공으로 만드는 힘이다.
본고에서는 이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려 한다. 먼저 ‘나, 여기, 지금’에서 찾은 실존적 입장, 이를 확대할 공감과 감응 그리고 이를 아우를 세렌디피티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고찰해 보았다.
우리는 각자 수년간 세상을 보는 틀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지난 1년 동안은 함께 공동으로 세상을 보는 틀, 공동 법칙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이와 관련된 공동 논문 몇 편을 등재학술지에 발표하고, 관련 도서도 출간하면서 연구의 객관성을 높이고 내적 성숙을 도모하였다. 그러던 중 제주도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분히 도전적이다. 제주에 대한 기존의 책들이 많은데, 우리가 쓴 책은 그것들과 다르다. 또한 문제해결과 관련된 글도 많은데 우리의 글은 기존의 글과도 다르다. 물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연구와 글을 최대한 섭렵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최선생님은 여기저기 도서관을 다니며 부지런히 자료를 찾고, 때론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날아가 자료를 찾으면서 관련 인물들을 만났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는 매주 몇 번씩 만나서 관련 논의를 하였다.
사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더 있었으면 보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과 다른 방식의 것을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우리에게 완벽한 마무리는 애당초 무리였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하여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더군다나 제주발전연구원과의 약속으로 정해진 기한을 넘길 수도 없었다.
책 집필하는 중간에 동일한 주제로 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심사자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시도라고 인정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예상했다. 기존의 프레임으로 생각하면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면서 기존의 틀을 뛰어넘고 반박할만한 논리적 치밀함과 이론적 조밀함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움은 안일한 답습에서 나오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