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663년 백촌강 전투의 삼기능체계로서의 의의

4. 663년 백촌강 전투의 삼기능체계로서의 의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결국 백촌강 전투이다. 백촌강 전투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백제와 분리되는 시점이므로 매우 중시된다. 백촌강 전투는 나당연합군이 일본과 연합한 백제부흥운동을 운좋게 이겨, 삼기능체계로 본다면 동아시아에서 한반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기능체계가 중국 한국 일본의 순으로 전환되는 전투이다.

백촌강 전투를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지던 고대사가 사라지고 자체적으로 국가를 이루었다는 역사의식이 지배적이 된다.

백촌강 전투로 일본에 간 백제군은 다시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 고니시를 따라 한국으로 많은 수가 넘어온다고 한다.[10] 구교 가톨릭의 지원자였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신교를 대표하는 영국에 패배한 후 로마 교황청은 동아시아를 통해 재기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대대적으로 예수회 신부를 파견한다. 마테오 리치의 사례에서 보듯이 교황의 정책은 중국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약소국 일본은 교황으로부터 배운 조총 기술에 힘입어 아시아 나아가 인도까지 공격하는 맹주가 되려 한다. 당시 기록은 오늘날 로마 교황청에 그대로 남아 있다.[11]

백촌강의 영향 아래 있던 임진왜란의 역할 또한 삼기능체계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이후 세계는, 서양은 마테오 리치가 전해 준 동양의 문명을 받아들여 다시 삼기능체계의 정치적 중심지로 등장한다. 일본은 서양을 대표하고 한국과 중국은 문명의 멸종 위기에 봉착하며, 그 후유증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아직 동아시아는 문화적 독립이 미비한 실정이다.

참고 — 입체오행이론가 박용규 선생이 발견하여 기상청이 제공한 663년 동지 밤 12시의 오성취루 시뮬레이션.
  1. [1]김정민,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글로벌콘텐츠, 2015.
  2. [2]박용숙, 『한국의 시원사상』, 문예출판사, 1985.
  3. [3]김현자, 「캠벨의 신화론」, 『종교와 문화』 Vol. No. 6,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00.
  4. [4]정태민, 『별자리에 숨겨진 우리 역사』, 서울: 한문화, 2007.
  5. [5]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서울: 김영사, 2002.
  6. [6]정윤표, 『티끌 속의 무한세계(무한중첩우주의 비밀)』, 프랙탈북스, 2010.
  7. [7]박용규, 『동양학, 과학을 말하다』, 시나리오알타, 2013.
  8. [8]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서울: 웅진하우스, 2005.
  9. [9]첨부 참조.
  10. [10]신성호, 『일본 역사 속 백제 왕손: 임성왕자 후손 이야기』, 고래실, 2008.
  11. [11]편집부, 『한국천주교회사 1』, 한국교회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