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동아시아는 내부적으로 초읽기에 들어간 중국의 대만 침공과 한중일 무역전쟁의 위기 가운데 외부적으로 60-70년대 ‘경제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놀림받던 일본처럼 동아시아 전체가 경제동물로 취급받는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는 유럽을 능가하고 있지만 동아시아 문화는 말콤 X가 말하던 흑인 3세대 문화보다 못한 B급 문화로 전락하여[1] 동아시아인마저 동아시아문화를 외면하고 특히 청년문화는 극우문화에 이용되어 동아시아인끼리 서로 증오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2]

수천년간 유럽을 무시할 정도의 문명국이었던 동아시아지만 서구화가 시작된지 100여년이 훨씬 지나도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는 상황이다.[3] 이 글은 개인의 정신 문제와 유사하게 트라우마의 발견에서 문제의 원인을 새롭게 찾아 보고자 한다.[4] 개인의 경우 트라우마 발견은 전쟁의 외상을 망각이나 무감각으로 대체하는 지점에서 발견된다.[5] 공동체의 경우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경험도 전이에 의해 전승되는데[6] 직접 경험한 트라우마가 아니기 때문에 무의식적 반발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트라우마 또한 한중일 삼국 중 정통성을 중시한다는 한국 내에서 실용주의 문화적 특징이 나타나는 대전투의 장소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유산이란 홀로코스트나 DMZ와 같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추진되어 온 문화유산 중 부정적인 역사를 증명하는 유산을 지칭한다.[7] 동아시아의 근원적 트라우마가 발견된다면 또 하나의 소중한 동아시아 기억유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동아시아 트라우마 발견의 기점으로서 당진을 주목하고 당진 문화의 형성 배경을 트라우마 관점에서 보고자한다. 한반도 관점에서 당진은 큰 트라우마가 없어 보이지만 동아시아 관점에서는 몇가지 주목할만 트라우마가 나타난다. 특히 당진은 오늘날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어가는 한중일의 역사적 분기점을 만든 백촌강 전투의 한 후보지이다.[8] 만약 당진이 백촌강 전투의 전장지였다면 다른 수많은 전쟁 트라우마 유적지의 실용주의 문화처럼 당진의 최근 알려진 실용적 이용후생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는 단초를 잡을 수 있다.[9]

백촌강으로 비정되는 4곳의 후보지 중 하나인[10] 당진에서는 백촌강을 당진으로 비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11] 다른 트라우마처럼 한국보다 발전이 빨랐던 일본에서는 오랜 기억이 누적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잊혀진 전투이기에 백촌강은 일제 시대에 와서야 비로서 그 위치가 비정되었다. 따라서 당진이 백촌강일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얼마든지 있다.

이 글은 당진의 이용후생문화 배경을 백촌강 전투와 연결된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고 당진의 이용후생문화의 배경을 트라우마로 간주하며 트라우마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재해석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필자로서는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는 백촌강의 위치를 논구할 의도는 없다. 백촌강의 위치 비정과 백촌강 전투를 둘러싼 사건에 대해서는 기존의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지만 왜 나당연합과 백제-왜 연합이 그토록 대규모로 싸워야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의문점이 많아 추가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12] 전투의 배경으로 본다면 당진이 백촌강이 아니라도 당진의 문화에 백촌강은 그 중심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당진의 실용주의 문화 배경이 백촌강 전투지라는 가설 아래 백촌강 전투를 전후하여 당진에 나타난 시간적 공간적 역사를 살펴보고 당진의 이용후생문화 배경을 백촌강 전투의 기억유산으로 재해석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