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당진 문화배경 연구의 필요성

2.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당진 문화배경 연구의 필요성

당나라로 통하는 포구라는 뜻을 가진 “당진(唐津)”이란 지명은 한국 지명 가운데 가장 동아시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지명이다. 더욱이 한나라로 통하는 포구라는 당진의 옛지명 한진(漢津)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 중 풀리지 않는 많은 부분을 한나라 때 까지 거슬러 올라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때 중국으로 가는 항구로서 당진이 주목받은 것은 중국에서 경주로 가는 최단 코스에 당진이 있어서이다. 고려시대 이후는 개성이 중심이 되어 예성감이 중심이 되었지만 통일신라 내내 중국으로 가는 무역과 사상교류의 중심지는 당진이었다.

필자가 당진을 주목하는 이유는 보다 거시적인 시공간적 측면에서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시간적으로 살펴보면 당진이 주목받던 백제말-통일신라시기는 동아시아 역법(曆法)의 시간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백촌강 전투를 기점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종식되는 시기는 음력 663년 11월, 양력으로는 거의 663년 동지가 된다.[13] 이 663년 동지는 1980년에 한번 돌아온다는 동양 역법 주기의 첫날이기도 하다. 60갑자를 적용하는 동양역법의 첫날은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되어야 하지만 동양역법의 태음-태양력 동시적용 원리 때문에 동양역법상 첫날은 계해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되고 바로 이 날이 663년 동지였다.[14] 동양역법으로 본다면 세계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이 날 백제만이 무너졌다는 것은 백제문화가 세계 문화의 1980년 1주기를 이끌어 온 문화이고 그 중심에 당진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또한 1800여년 동안 단 한번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여자황제 봉선의식을 시도하던 때이기도 하였다.[15] 천문관측기록을 시뮬레이션하면 이 날 태양계의 행성은 일렬로 정렬하였다고 한다.

공간적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본다면 당진은 동아시아를 넘어 한반도의 중심지역이기도 하였다. 당진을 포함하고 있는 내포지역은 일찍이 이중환이 충남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16] 한반도 전체를 보는 풍수에서는 한반도에서도 어머니의 품같은 자리라고도 했다. 이는 지구전체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하여 당진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풍수적으로는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진의 이용후생문화는 한서대의 인문도시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당진이란 이름자체에서 이미 당진은 이용후생문화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나라로 통하는 포구라는 당진의 지명에는 이미 당진의 이용후생문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교환이 위주가 되는 해양문화의 공통적 특징은 그리스나 일본의 사례와 같이 실용주의 문화이다 그러나 당진은 통일신라 이후 해양 상업문화의 중심지는 아니었고 실용보다는 정통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내부문화도 포함하나든 것이 다른 해양문화와의 차이점이다.[17] 당진은 다른 해양문화와 달리 내부로 수축하는 차분하고 난해한 해양문화였다.

독특한 당진의 문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배경에는 당진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중 아직 풀리지 않는 백촌강 전투의 이해되지 않는 배경이 있다. 흔히 백촌강 전투가 한중일 삼국의 역사와 문화를 결정지었다고 한다. 당진과 인접된 지역에서 발생한 백촌강 전투는 660년 백제가 멸망한 직후 3년간 백제 유민들이 신라와 당나라에 대항하여 일으킨 한국사에서는 유일한 국가 부흥운동인 백제부흥운동에서 가장 큰 전투를 말한다. 임진왜란 규모의 동아시아 세계대전이란 별칭과 같이 한중일 삼국 최정예 육군 및 수군 부대가 백촌강 전투에서 대규모로 대결헸다. 백촌강 전투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된 한중일 삼국의 문화가 최초로 분기된 전투로 평가되어 그 과정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18] 방송으로도 여러 번 방연된 바 있다.[19] 그러나 아직 왜 나당 백제-왜가 연합했는가는 정작 의문이 남아 있는 상태다. 실제 트라우마 측면에서는 과정보다는 배경과 결과가 중요하고 그 결과 또한 배경의 이해에서 시작한다. 백촌강 전투가 동아시아를 결정지은 사건이라면 동아시아의 트라우마도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당진을 통해 동아시아 트라우마를 볼 수 있는 한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