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금강산의 어원
금강산의 어원과 관련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크게 화엄경의 담무갈보살로부터 비롯된다는 이론과 금강산이 수미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론으로 구분된다. 널리 알려진 것은 담무갈보살과 관련된 이론이지만 수미산과 관련된 이론은 담무갈보살과 관련된 이론이 해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화엄경의 담무갈 보살로부터 비롯된다는 이론이 화제가 된 것을 살펴보면 이는 조선시대부터 비롯된다. 담무갈(曇無竭)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음역으로, 법(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법성(法性),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법기(法起)라고도 한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음역이다.『조선왕조실록』 에 의하면 태종이 신하에게 묻되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반드시 금강산을 보고자 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니 하륜(河崙) 등이 아뢰기를 “『대장경』 속에 금강산 이야기가 실려 있어 널리 세상에 알려진 탓이다.”라고 하였다.[4]
금강산의 명칭은 『육십화엄경』보다 조금 후대의 경전으로 695~704년 실차난타가 번역한 『팔십화엄경(八十華嚴經)』에 등장하는데,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은 법기보살이 거처하며 12,000여 권속(眷屬)과 함께 머물며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5] 이 문구에서 법기보살은 담무갈보살의 음역이므로 담무갈보살을 동진시대 실존인물로 비정하기도 한다. 인도의 왕자가 불법을 찾아 금강신에서 실제 수도를 했다는 것이다. 번역할 당시는 695~704년이었지만 60화엄경이 번역된 시기가 동진시기이므로 동진시기(317-420년)로 간주한다.
반면 법기, 혹은 담무갈 보살이 실존 인물이라기 보다는 금강산의 절묘한 기암괴석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많다. 담무갈 보살이 실제 금강산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고 법기의 뜻이 기암괴석과 같이 솟아오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기가 금강산의 모습을 표현한 용어라면 금강산 명칭의 유래와 더 연관될 수 있다. 금강산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담무갈의 뜻보다는 ‘보살’이라는 용어에 더 의미가 담기어 있고 이는 다음 Ⅲ장 담무갈 보살에서 밝히고자 한다.
금강산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서책은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華嚴經疏)』이다. 그에 의하면 "동해의 동쪽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다. 전체가 금은 아니지만 위아래 사방으로부터 산간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과 모래 속에 금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곧 금이라 할 만하다. 또 해동(海東) 사람들은 예로부터 서로 전하기를 이 산에 왕왕 성인(聖人)이 출현한다."고 하였다.[6]
오늘날 금강산이 불교의 금강산으로 신앙되게 된 것은 8세기 의상대사로부터 본다고 한다. 고려후기의 문신인 민지(閔漬)는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서, "신라의 옛 기록에 의하면 의상 법사께서 처음 오대산에 드셨다가 금강산에 이르자 담무갈보살이 현신하여 법사에게 말하기를 ‘오대산은 수행이 있는 사람들만 세간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이르셨다."하였다.
『동국여지승람』 유점사조(楡岾寺條)에는 월지국(月支國)에서 53불이 쇠북을 타고 이곳 해안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정주한 곳이 유점사의 터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라 진덕왕 때에는 네 곳의 영지(靈地)가 있어 나라에서 큰일을 결정할 때 이 영지에 모여 의논을 하면 그 일이 꼭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네 영지 가운데에 금강산이 들어가 있으나, 거기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 모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금강산에 전하는 마의태자(麻衣太子)의 고사의 배경으로도 볼 수 있다.
금강산 신앙이 크게 유행한 것은 고려시대 원 간섭기로 본다. 금강산 신앙은 원 간섭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금강산 신앙은 고려만이 아닌 이웃한 원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당시 금강산은 동아시아의 불교 성지로 인식되었다고 한다.[7]
고려 원 간섭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곡(李穀)은 「장안사비(長安寺碑)」에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동북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般若)를 강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곡은 또 금강산 신앙의 유행으로 인한 그 지역의 잦은 불사를 "천자의 사신이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것이 길에 늘어섰고, 사방의 사녀(士女)들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면서 소에 싣고 말에 싣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와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는 자가 발꿈치가 서로 닿았다."고 서술하였다.
또 고려 공녀(貢女) 출신으로 원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된 인물로 유명한 기황후(奇皇后)가 금강산장안사(長安寺)에 보시를 한 것을 들 수 있다고 한다.[8] 당시 기황후가 금강산 장안사에 보시할 때 "복을 빌어 위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금강산 장안사만 한 곳이 없다."고 한 이야기는 당시의 금강산 신앙의 유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부터 원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던 장안사가 담무갈보살이 상주하는 금강산에 소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황후 역시 황제와 아들의 복을 비는 불사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원으로 장안사를 꼽은 것이다.
실제 원나라 사신의 방문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을 살펴보면 원나라 때 고승인 몽산덕이(夢山德異)의 제자 철산소경(鐵山昭瓊)이 1304년(고려 충렬왕 30) 고려 불교계의 초청으로 고려에 왔을 때, 그가 방문한 장소 중 하나가 금강산이었다. 이때 철산소경을 금강산으로 안내한 민지는 사적기에 금강산을 담무갈보살의 주처라고 기록했다. 민지는 철산의 금강산 순례가 담무갈보살 신앙에 의해서 시행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회암사를 창건한 지공 도한 과거불의 수도처로 회암사터를 지목하고 회암사를 짓기전 금강산을 방문했다. 고려말의 왕사였던 나옹혜근(懶翁惠勤)의 스승인 원나라의 승려 지공(指空)이 1326년(고려 충숙왕 13) 고려를 방문했을 때, 지공은 개경을 거쳐 바로 금강산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유력하였다. 당시 지공이 찾은 곳은 금강산의 법기도량(法起道場) 즉 유점사였다고 한다. 도량의 이름을 법기도량이라고 한 데에서 지공이 법기보살(담무갈보살) 신앙의 발로에서 금강산을 참례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산 명칭의 유래가 화엄경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론은 문헌적 기록과 역사적 흐름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이론은 ‘금강’이란 이름을 바즈라신의 ‘번개’와 ‘다이아몬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간주한다.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인데, 뜻은 '와즈라(Vajra)와 같이 강한 힘으로 절단하는 것'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즈라는 인드라신의 뇌전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이란 제목의 뜻은 마음 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라는 뜻이 된다.
원래 산스크리트어 단어‘바즈라’란 원래 낙뢰와 금강석을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한다.[9] 금강석이 낙뢰보다 상징적 의미인 점에서 후대 파생된 의미 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금강석이 다이아몬드의 듯이라면 당시 인도에서 다이아몬드로서 알려져 있었는지의 고증이 선행될 수 있어야 한다. ‘금강’의 원래 의미가 금강석보다는 ‘번개’와 가깝다는 것은 ‘금강’의 힘을 발휘한다는 ‘금강저((金剛杵)’가 뇌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금강산 명칭이 담무갈보살과 연관 된다는 이론은 문헌기록과 역사적 고증이 풍부하지만 정작 ‘번개’와 ‘다이아몬드’ 의 유래, 그리고 ‘금강’과 ‘산’과의 결합 배경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점이 있다. 보다 더 근원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이 근원적 설명을 보완하는 이론이 금강산을 수미산과 연결하는 이론이다.
한편 금강산 명칭의 유래가 수미산과 관련되었다는 이론을 살펴보면 이 이론은 다시 금강산이 금강산은 9산8해로 대표되는 불교 우주관에서 철위산에 해당한다는 이론과 금강산이 곧 수미산이라는 이론으로 구분된다.
먼저 금강산이 불교 9산8해 우주관의 철위산에 해당된다는 이론을 살펴보면 이는 앞에서 살펴본 담무갈 보살 이론과 연관된다. 발견된 기록에 의해 금강산이 동해의 산이라고 주장한 당나라 때의 청량국사(淸凉國師) 징관(澄觀: 73ß~839)은 『화엄경』을 주해(註解)하면서, 금강산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산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동해 지방에 있는 산이 분명하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금강산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산이란 것은 금강산이 불교 9산8해 우주관의 철위산에 해당된다는 불교 우주관을 지적한 것이다.
철위산이 오늘날 금강산이 된 것은 지형적인 요인과 과거불 신앙 요인으로 보는 이론이 있다. 먼저 지형적인 요인을 보면 한반도의 동해안에 있는 금강산이 절벽지형과 암석이 많아 멀리서 보면 빛나고 굳은 돌, 즉 ‘금강’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산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 산을 ‘개골산’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징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퍼지게 되자, 사람들은 징관이 말했던 산이 바로 이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점점 믿게 되었고, 결국 이 산을 ‘금강산(金剛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불신앙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금강산과 관련된 과거불 신앙은 화엄경의 담무갈 보살과 다른 전승도 풍부하다. 담무갈 보살과 다른 전승은 과거7불과 관련된 전승이다. 담무갈은 보살이지만 과거불은 석가와 동급인 부처이다.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곳이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前佛 시대의 절터니라” 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실제 주로 캔지스 강 북쪽에 살던 석가족을 포함한 종족들은 아리안계 백인이 아니라 황인종이었고 넓은 의미의 몽골족이었다 하는 이론이 있다. 석가족이 황인종이었을 것이라는 학설은 19세기 학자들도 주장했다.[10] 화엄사를 창건한 지공 또한 담무갈보살 외에 과거7불과 관련한 기록도 남기고 있다.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칠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 터다大伽藍之址也)"라고 한 바 있다.[11]
금강산이 불교 9산8해 우주관의 철위산과 관련된다는 내용은 금강산과 관련된 선녀와 나무꾼 전설에 나타나는 ‘삼천대천세계’와도 통한다. 9산8해(九山八海)는 불교의 우주론에서 하나의 우주 즉 1개의 3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1수미세계(一須彌世界)에서, 금륜(金輪) 즉 대지(大地) 위에 존재하는, 수미산(須彌山)을 포함한 아홉 대산(大山)과 그 산들을 둘러싼 여덟 대해(大海)를 말한다고 한다.[12] 장아함경에 불교 9산8해 중 제9산인 철위산이 금강위산으로 나타난다.
불교 9산8해 우주관은 《장아함경》 제18권 〈30. 세기경(世紀經)〉, 《기세경》(起世經) 제1권 ,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제1권 등의 경전과 《구사론》 제11권 등의 부파불교의 논서들과 《유가사지론》 제2권 등의 대승불교의 논서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각 경전에 따라 순서는 다소 다른 점은 있지만 철위산이 제9산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9산(九山) 중 4보(四寶)와 7보(七寶)로 이루어진 제1산인 수미산과 쇠[鐵]로 이루어진 제9산인 철위산을 제외한 일곱 산은 모두 보석인 금(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7금산(七金山)이라 한다. 9산 중 수미산은 하나의 거대한 산이지만 나머지 여덟 산은 명칭만 산일 뿐 실제로는 산맥(山脈, mountain range)이라고 한다.
삼천대천세계라는 용어가 불교 우주관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라고 할 때 금강산이 9번쩨 산인 철위산에 해당된다는 것은 수미산과 대응구조를 이룬다. 실제 금강산이 곧 수미산이라는 이론이 후대에 출현하였다.
금강산이 철위산이 아니고 금강산 자체가 수미산이라는 이론은 최근 작고한 변광현 교수에 의해 주장되었다. 실제 화엄경에서 금강산이 지목된 것도 우주관과 직접적으로 연결한 문헌은 찾을 수 없지만 금강을 언급한 것이 수미산과 연관된다 할 수 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도 철위산이 9산이라고 하지만 2-8산까지는 모두 금으로 된 산이고 첫 번째 수미산과 9번째 철위산만 실제산으로 나타나며 역학에서도 1과 9가 서로 대응된다고 할 때 금간산이 수미산일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은 있다.
금강산 자체가 수미산이라는 이론은 불교 우주관으로 추론될 수도 있지만 변광현 교수의 이론은 주로 역사적 측면으로 설명한다, 고대문명의 중심지로서 금강산 이론은 2005년 이 이론을 발표하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전 안동대학교 교수 변광현의 이론이다.[13] 변광현은 고대문명의 중심지로서 금강산 이론을 문헌과 유적, 이론이라는 3중 증거법으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변광현은 서울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고인돌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세계적인 고인돌 전문가였다.
변광현은 단군과 요임금이 건국했다는 BC 2300년경 기존 고대문명이 위성 충돌로 인한 자연재해로 붕괴되었다고 한다. 산해경과 서경, 불경에 나오듯이 당시 태양이 10개로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금강산 위에만 태양이 비치고 나머지 지역은 어둠에 덮였다고 한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태양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새로운 청동기 문명이 빗살무늬토기와 같이 전파되어 나갔다고 한다. 불교의 수미산, 산해경의 고사는 당시 금강산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한다.[14]
변광현이 제시하는 3가지 근거는 첫째 유물로서 고인돌 둘째 문헌으로서 산해경, 불경 셋째 이론으로서 피라미드 연대조작설이다, 첫째 고인돌을 살펴보면 변광현 교수는 한국은 세계 고인돌의 1/2 이상이 집약되어 있으므로 한국이 고대문명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대문명사에서 한국이 고대문명의 기원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영국이 피라미드 발굴을 계기로 피라미드의 연대표를 2,000년 이상 올리면서 시대가 역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은 이후 외계인 담론을 확장 했다고 한다. 만약 피라미드의 연령을 변경 전으로 환원하면 모든 고대 유물은 한국 금강산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변교수는 주장했다. 여기서는 우선 금강산에 대한 사실적인 것을 제시하고 다음 담무갈 보살에 대한 장에서 세부적인 것을 논의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