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담무갈 보살의 유래
금강산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금강산의 유래를 일종의 신앙으로 간주하고 신라시대부터 기원한 불국토사상의 연장으로 본다. 그러나 촤근 가야 연구의 재조명은 기존 견해와 달리 실제 금강산이 화엄경의 금강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금강산이 실제 화엄경의 금강산이라는 이론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언급된 기록이 실제라고만 간주하더라도 많은 기록이 있다.
금강산이 실제 화엄경의 금강산이라는 변광현의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기존 이론은 크게 대승불교 용수 보살의 ‘바다’이론과 오늘날 세계불교 연구의 저명한 권위자인 하바드 대학교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의 ‘불교해양전파론’이다. 실제 산스크리트어 대가 읠리엄 제임스가 쓴 옥스포드 사전에는 석가모니는 단군족이었다고 강상원은 주장한다.[15]
먼저 대승불교 용수 보살의 ‘바다’이론을 살펴보면 담무갈 보살의 ‘보살’ 직위와 연관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주지하다시피 ‘보살’은 대승불교의 대표용어이고 용수보살은 대승불교의 대표자다. 먼저 대승불교는 불교의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우선 대승불교는 경전 자체가 소승불교에서 말하는 서가여래의 직접적인 설법이라기보다 불교적 사고방식으로 간주될 정도다. 『반야심경』, 『화업경』, 『법화경』, 『금강경』, 『천수경』 등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의 경전은 소승불교에서는 전혀 출현한 바가 없고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새롭게 출현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과거불은 소승불교에서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소승불교에서는 힌두교의 신을 대승불교에서 수용했다고 한다. 심지어『반야심경』, 『화업경』, 『법화경』, 『금강경』, 『천수경』 의 출처인 용수보살은 이 대승경전을 바다의 용궁에 가서 가져왔다고 했고 대승불교계에서는 이를 모두 공인했다, 주지하다시피 소승불교인 남방불교와 대승불교인 북방불교는 불기 자체도 다르다.
용수보살의 ‘바다’와‘용궁’이 대승불교계의 공인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 ‘바다’와 ‘용궁’이 오늘날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16]‘천독’과 같은 용어가 보여주듯 ‘바다’와‘용궁’은 오늘날 금강산이 있는 중국 동쪽의 군자국으로 당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용숙 등 ‘바다 이론가’들은 결국 징관은 화엄경의 바다를 당시의 용어로 풀어 오늘날 바다와 달리 동쪽나라로 해석하여 금강산을 동쪽나라의 산이라고 해석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미 대승불교당시에도 불교가 인도보다는 수미산을 금강산이 있는 동쪽에서 보고 불교가 동쪽에서 왔다는 것을 공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담무갈보살도 보살이고 금강산도 대승경전인 화엄경이라는 점은 화엄경 자체가 이미 금강산을 실제 한국의 금강산으로 간주하고 썼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원나라 귀족들도 금강산을 화엄경의 금강산으로 인정했다고 바다 이론가들은 주장한다.
다음 오늘날 세계불교 연구의 저명한 권위자인 하바드 대학교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의 ‘불교해양전파론’을 살펴보면 ‘불교해양전파론’ 또한 ‘바다이론가’의 이론에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 전 세계의 불교자료의 디지털화 프로젝트 책임자인 루이스 랭카스터는 관세음보살 등 불교 보살의 여성화를 해양전파의 근거로 간주한다.[17] 종교는 상업과 친화성이 있어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가 전파되듯 불교는 해상 무여강을 통해 전파되었고 지상보다 더 강력했기에 불상들이 해양문화인 여성성을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허황옥도 해양문화와 관계된 쌍어문과 관계되고 실제 인도와 금강산은 허황후처럼 바닷길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전통적으로 ‘바다’는 루이스 랭카스터와 달리 사막으로 간주되기도 했다.[18] 인도와 금강산은 사막으로 분리되어 있고 사막너머의 세계가 군자군의 용궁이 된 셈이다.
기존이론을 수용하는 데는 두 가지 난점이 있고 최근의 이론들이 난점을 해결해주고 있어 화엄경의 금강산이 실제 오늘날 금강산이란 이론에 힘을 실어준다. 두 가지 난점 중 첫째는 불교가 금강산에서 발생했다면 다른 유사한 사례가 있으며 어떤 원리이가 하는 점과 두 번째로 금강산이 군자국으로 불리는 중심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불교가 금강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리에 대한 논의는 최근 가야와 관련된 논의에서 나타났고 두 번째 문헌적 근거는 최근 중국의 서북공정에서 타나났다.
먼저 첫 번째 원리적 측면을 살펴보면 가야의 갯벌과 하천 그리고 태양이 불교의 발생원리라는 점이다. 최근 가야에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솥과 시루이다. 솥과 시루는 진표로 대표되는 미륵불관련 사찰 곧 금산사, 법주사, 발연사에도 나타나는데 솥과 시루가 주목되는 것은 솥과 시루에서 나타나는 물과 태양의 순환원리가 불교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19]불교의 윤회원리가 인간의 일생에만 치우쳤다면 고대 과거 불교는 윤회를 인간 뿐 아니라 전 사물에 다 적용시켰다. 특히 한반도에서 불교와 관련하여 가야에 주목하는 것은 가야가 당시 가장 발전된 문명의 국가이기도 했지만 인도의 가야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불佛 이라는 글자 자체가 태양을 향해 활과 화살로 스스로를 측정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20] 동북아의 대표적인 용봉문화는 태양신으로서의 일월이 봉을 상지한다면 태양의 힘을 전달하게 해 주는 금성이 곧 오행의 원리가 된다. 고대의 뱀은 태양의 변화, 불은 태양에너지의 순환을 의미한다. 태양이 가진 빛, 열, 습도는 각각
다음 문헌적 측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서북공정에서 단군이 황제로 비정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21] 황제가 단군으로 비정되는 것은 단군과 같이 황제가 신선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황제는 400여년 이상을 살았고 이는 400여년 후 자신의 고손자에 가까운 요임금 시절 황제가 동쪽에서 단군으로 군자국을 개국한다고도 한다. 한국 선도와 도교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중국의 서북공정으로 의외의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황제와 단군이 서로 연결된다면 불교의 기원이 태양신과 연결되어 불교이해와 전파의 난제 해결에 큰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결국 담무갈보살은 불교 이전의 불교에 대한 논의로 회암사에 대해 살펴볼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