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군자국과 제주신화의 비교

4. 군자국과 제주신화의 비교

제주신화를 아틀란티스와 연결하는 임환영의 연구는 주로 『부도지』나 단군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한국에만 국한된 『부도지』와 단군과 관련된 문헌 외에도 군자국과 관련된 자료를 찾는다면 많은 동아시아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군자국"이란 단군시대 중국에서 한반도 지역을 통치의 중심으로 하는 국가를 일컫는 용어였다. 군자국은 『부도지』와 같이 군자국이 1만리를 넘어가는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표현된다.

먼저 군자국은 중국 당(唐)나라의 구양순(歐陽詢) 등이 625년에 고조(高祖)의 명으로 편찬한 사전인 예문류취(藝文類聚)에 나타난다.

《山海經》曰 君子國民冠帶劍土方千里多薫華之草 好讓 故為君子國
산해경왈 군자국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찬다. 사방 천리의 영토이다.
무궁화가 많으며 서로 양보한다. 고로 군자국이라 한다.

무궁화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말이기에 군자국은 한반도를 지친한다고 간주한다. 여기서 군자국 사람들의 인품은 남다르고 그 영토는 천리에 이른다고 한다. 군자국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같은 『산해경』의 「해외동경」편에 보다 상세히 나타난다.

海外自東南陬至東北陬者…君子國在其北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虑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萬寧草 朝生夕死
해외의 동남쪽 귀퉁이에서 동북쪽 귀퉁이에 이르는 지역.
의관을 갖추고 칼을 한다.
짐승을 먹고 큰 호랑이 두 마리를 부리며 곁에 둔다.
그 사람들은 서로 양보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투지 않는다.
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

군자국은 『산해경』 뿐 아니라 『회남자』 「지형훈 (地形訓)」에도 나타난다.

東方有君子之國
自東南至東北方 有大人國
君子國 黑齒民 玄股民 毛民 勞民

동쪽에는 군자국이 있고,
동남쪽에서 동북쪽으로 대인국,
군자국, 흑치민, 현고민, 모민, 노민이 있다.

이 군자국은 마고의 부도를 복본했다는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과 시대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유사하다, 군자국을 연구해 온 이승규는 단군은 중국의 황제와 7가지가 부합된다고 한다.[20] 황제는 웅녀에게서 태어난 단군과 같이 유웅씨와 연관되고 약 400년을 재위하며 재위 후 등선에 오른다.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단군의 재위기간이라는 2204년은 군자국의 지속년도인 2400년과도 거의 부합된다. 이승규는 『삼국사기』 및 삼국사기 이전 문헌에 한국의 선조는 중국의 황제로 나타나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부터 단군으로 언급되므로 한국 고대사는 '황제'로부터 기원을 찾는 것이 고대 문헌과 더 부합된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문한에는 단군보다도 한반도의 고대국가는 군자국으로 나타난다. 군자국으로 나타난 고조선은 임환영이 제시한 부도지의 부도와 일치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管子』 「소문」 편에는 군자국의 크기와 군자국의 직위가 명확히 나타난다

昔者天子中立 地方千里
옛날 천자는 중앙에 있어
지방권리를 다스린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서 중 하나인 『管子』편에 나오는 "천자"라는 용어가 중국에 처음 사용된 것은 군자국과 관계된 것을 위 글은 보여준다. 가운데 최고 통치자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로 부르고 중앙을 가운데 두고 지방은 외곽을 이루며 중앙천자의 기준은 천리임을 위 글은 보여준다. 『부도지』를 가능할수 있는 군자국의 지역편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예기』 「왕제」 편에 나타난다

王者之制祿爵 公侯伯子男 凡五等
天子之四方千里 公候四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왕의 제도에서 녹작은 공후백자남의 무릇 5등급이고
천자의 땅은 사방 천리,
공과 후는 사방 백리,
백은 70리, 자와 남은 50리로

위와 같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제도는 1만리가 넘는 영토를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군자국의 영토 크기와 관련한 더 구체적인자료가 『사기』 「진시황본기」에 나타난다.

昔者五帝地方千里
其外侯服夷服諸侯或朝或否天子不能制
옛날 오제때 사방 천리 밖
후복 이복의 제후들이
조정에 들기도 하고 않기도 하여
천자의 다스림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천리 밖의 제후라는 위 구절이 전체적으로는 1만리에 이른다는 것이 『사기』 「오제본기」에 나타난다,

万五千里 至于荒服 南撫 交阯北發西戎析枝 渠氐羌
北山戎 發 息慎 東長 烏夷 四海之內咸戴帝舜之功

땅은 사방 5,000리로 황복까지 이르렀다. 남쪽으로는 교지, 북발을, 서쪽으로는
융, 석지, 거수, 저, 강을, 북쪽으로는 산융, 발, 식신을, 동쪽으로는 장長, 조이를 어루만지니 사해 안이 모두 제순의 공을 받들었다.

1만리는 오늘날의 지도상 남북으로 만주에서 동남아에 이른다. 황제로부터 군자국 제왕의 지위를 물려받은 순임금의 영토는 부족국가 수준이 아니고 청나라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지역이었다. 「회남자」 <시칙훈>에는 태호 복희씨가 1만 2천리를 다스렸다

東方之極 自碣石山過朝鮮 貫大人之國 東至日出之次
木之地 青土樹木之野 太皞句芒之所司者 萬二千里

동쪽 끝 갈석산에서부터 조선을 지나고 대인국을 통과해 동쪽으로 해 떠오르는
곳에 이른다. 나무(부상목)의 땅으로 푸른 흙에 수목의 평야이다. 태호와 구망이 다스렸던 곳으로 1만2천리이다.

1만2천리는 복희씨가 다스린 나라이며 황제의 아들이었던 소호금천씨는 그 중앙나라에서 서쪽 곧 오늘의 이집트 쪽의 나라 1만 2천리인 고망국을 다스렸다고 『회남자』 「시칙훈」에 나타난다. 같은 규모의 동쪽 부락국은 헌원의 둘째 아들이며 전욱 고양의 부친인 창의가 다스린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1만리 해양을 누볐던 민족은 남색족인 해양민족이었다고 한다. 헌원부터 오제 그리고 하은주까지는 남색족이 다스렸고 한나라 이후 중국대륙에서 남색이 사라졌으며 만주와 한반도에서도 혼혈인 부여인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남색족이 사라졌다. 남색족이 지금은 멸종했으나 옛 기록과 진시황릉 토용에서는 남색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학자들이 옛 기록의 산동반도의 동이는 고구려로 대표되는 동북방향의 동이와 다르다는데 옛 동이는 남색족이고, 동북방의 동이는 혼혈로 구별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족보상 헌원의 후예인 한국인들은 남색족을 조상으로 해야 하기에 따라서 북방 황색족이 조상인 맥족을 우리의 조상으로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3만리에 이르는 군자국의 영토가 『부도지』의 마고족과 연관될 뿐 아니라 군자국에는 제주신화와 관계되는 삼신산이 발해에 가라앉았다는 기록도 있다. 『사기』 <봉선서禪>에 삼신산은 발해 속에 있다고 하니 발해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말이다.

自威 宣 燕昭 使人入海求蓬萊 方丈 瀛洲 此三神山者其在勃海中
(제나라)위왕·선왕·연나라 소왕 이래로 사람을 시켜 바다로 들어가서 봉래 • 방장 • 영주를 찾게 하였다. 이 삼신산은 발해 속에 있다고 전해지며

이는 요임금 때의 대홍수로 인해 중앙국의 수도가 발해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헌원의 첫 도읍은 탁록이었는데 여기도 황해바다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요하문명의 하류에 있던 초기 군자국의 수도가 가라앉은 것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본다. 황제의 재위기간이 380년이고 노아의 홍수기간이 600년이라고 하니 이도 거의 부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