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명 사상과 동학사상의 리미날리티
동학사상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안적 근대성으로 재평가 받는다면 동학농민운동은 프랑스 대혁명을 넘어서는 세계 최초의 민중사건으로까지 재평가되고 있다.[13] 실제 프랑스대혁명의 숨은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은 그 동안 알려지 바와 달리 실제 근대의 시작은 프랑스대혁명이 아니고 동학농민운동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계기가 된 동학사상에 변혁의 기폭제로 지목되는 것은 동학사상에 나타난 리미널리티이다.[14]
처음 김지하가 생명사상으로 전환한 것은 해월의 삼경사상이었지만 생명사상의 실천기반으로 시작한 것은 테이야르 드 샤르뎅의 가톨릭사상과 가톨릭을 통한 실천이었다. 그러나 동학 또한 서학으로 불리던 당시 가톨릭의 영향 아래 새로운 자생적 사상을 만들어 내듯 김지하의 생명사상도 다시 동학의 자생적 생명사상으로 전환되었다.
리미널리티 이론은 처음에는 통과의례라는 의례와 제의이론에서 출발한 문화인류학의 개념이었지만 빅터 터너에 의해 사회 문화 변동의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대된 용어이다. 빅터 터너의 리미널리티이론은 크게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로 분류된다.
리미널리티는 반 게넵(Arnold Van Gennep, 1873∼1957)이 처음 창안한 용어이다. 라틴어 '리멘'(Limen)은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 즉 분리에서 전이로 이동하는 경계영역인 문지방(Threshold)을 가리키는 언어이며, 리미널리티는 '리멘'에서 파생한 용어이다. 리미널리티는 가치에서 잠시 이탈함으로써 모호하고 무결정적이며 애매한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리미널리티는 자주 죽음이나 자궁, 어두움, 남녀양성성, 황폐함, 일식과 월식 등에 비유된다.
빅터 터너는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연구하면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부족의 구성원들은 용맹하고 강인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마을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13세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 행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적당한 시기에 성인 남성들이 숙소에 몰래 들어가 사내아이들을 보자기에 싸서 납치한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곳에 그들을 데려놓고 사라집니다. 이 아이들이 던져진 장소가 바로 경계성(리미널리티)이다. 아이들은 한 번도 당하지 못한 위기 속에 던져져 주변을 전혀 모르는 산속에 자기들이 던져진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 울고불고 난리가 나지만 이들이 운다고 부모가 오는 것이 아니다. 부족의 원로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조언을 해준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 아이들이 생존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우리가 여기서 살아나려면 우리끼리 뭉쳐야 한다.'는 아주 강한 협동심, 동지 의식, 결속력을 배우며 강렬한 사회적 연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겪은 후 마을로 돌아와서 성인식을 행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성인식을 치르기 전에 스스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생존하면서 배우는 공동체를 커뮤니타스라고 부른다.
빅터 터너의 사회극 개념은 인류민속학자 아놀드 반 게넵의 통과의례 이론을 재해석한 것이다. 반 게넵에 의하면 인간은 생존 위기에 처할 경우 또는 낯선 영역을 통과하거나 신분의 변화를 겪을 때에 통과의례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통과의례는 '분리→전이→통합'의 과정을 포함한다. 문화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반 게넵의 통과의례 개념을 의례뿐 아니라 사회 보편적인 원리와 구조로 보았다. 빅터 터너는 반 게넵의 통과의례 개념을 사회·문화·종교 제반 영역으로 확장했으며 '사회극'이라고 불렀다.[15]
빅터 터너의 사회극은 엘리아데에게 신화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다만 엘리아데에게 신화는 유일한 성스러운 시대와 관계맺고 있는 이야기임에 반해 터너는 신화가 의식의 경계선에 걸쳐있는 경험들을 폭넓게 제공해 줌으로써 현재의 심리적/사회적 목적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화학에서 제의학파의 주장을 수용한 것과 같다. 제의학파는 제의 그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신화와 제의를 연결시켰으나, 터너는 신화와 제의가 똑같이 고통스러운 인생의 전환과정을 보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제의와 신화를 연결시킨다. 빅터 터너의 사회극이론이 위기상황 해석에서 주목받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하게 알려준다는 점 때문이다. 코뮤니타스는 오늘날 의례뿐 아니라 사회, 정치, 종교, 문화, 예술 등 영역에 응용된다.
빅터 터너는 사회적 드라마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회문화 현상"의 변화를 살명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빅터 터너에 의하면 모든 사회극과 갈등은 '구조(structure)→반구조(anti-structure)→구조(structure)의 변증법을 거치며 구체적으로는 위반―위기―교정/치유―재통합/분열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반 게넵이 삶의 위기에서 행해지는 제의들, 예컨대 성년식·결혼식·장례식·출산과 임신 등에 관심을 집중한 데에 비하여, 빅터 터너는 대부분의 제의나 사건들이 통과라는 과정이나 형식을 지니고 있는 사실에 주목했다. 빅터 터너는 요컨대 3단계 가운데서 두 번째 단계인 전이, 즉 이 단계도 저 단계도 아닌 경계선 사이에 놓인 문턱이나 문지방이라는 시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 두번째 단계인 전이, 곧 반구조가 재난해결의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리멘·리미널리티·리미노이드·커뮤니타스·반구조·문화적 가정법 등의 용어들을 활용하여 의례의 상징적 체계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다.
커뮤니타스는 인간의 상호관계성에 관한 용어로, 빅터 터너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 관계성을 제시했다. 병렬적인 상호관계와 양자택일의 상호관계가 그것이다. 전자는 기존사회의 구조적 상태, 즉 정치·법률·경제적인 지위의 구조화되고 분화된 사회양식을 가리키며, 후자는 의례의 전환기에 조직이 완전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미분화된 사회양식을 뜻한다. 후자가 바로 반구조(anti-structure)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커뮤니타스란 구조의 차원을 넘은 '반구조' 또는 구조를 파기한 '무구조' 상태의 탈구조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반구조를 이루는 커뮤니타스와 리미널리티는 밀접하게 연관되면서도 구분된다. 리미널리티는 인간이나 집단의 존재 양상·상황·조건들에 관한 것이다. 그에 비해 커뮤니타스는 리미널리티에서 드러난 인간의 상호관계 양식에 관한 것이다.
리미널리티는 기존의 사회·문화적 체계나 질서 또는 상징적 체계로부터 벗어나 기존의 지위를 상실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재통합하기 위해 경과하는, 모든 가능성과 잠재적인 힘으로 충만된 중간적인 상태와 과정이다. 커뮤니타스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이고 색다른 성질의 개인들 사이의 관계이다. 이런 개인들은 역할이나 신분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 자유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반구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익명성이다. 커뮤니타스 속에서 인간은 일반적으로 익명의 존재가 된다. 의례의 참여자들은 동일한 복장을 착용한 채 무소유자로서 표상된다. 그들이 기존사회에서 지녔던 지위·재산·직업·서열·신분·특권 등 세속적인 식별의식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동질화됩니다. 둘째, 평등성이다. 기존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 등이 모두 무화된 상태에서 수련자들 사이에는 강한 동료 의식과 평등의식이 신장되며 적극적으로 평등주의를 받아여 진다. 셋째, 약자의 역설적인 힘이다. 반구조적인 상황에서 사회적 역할과 권위가 역전되는데, 약자가 권위를 장악하고 강자가 권위를 빼앗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위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거나 낮은 신분이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영구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거룩한 속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사회가 그 존재 방식을 틀잡아 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가 보여주는 익명성과 평등성의 세계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이론이 보여주는 세계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새로운 점을 제시해 준다. 리미널리티가 필요한 혼란의 시대처럼 지라르의 희생양이론에서 사회는 모방적 욕망이 팽배하여 차이와 질서가 사라지면 희생양이 만들어져 희생양이 죽은 다음에야 질서가 회복된다고 한 바 있다. 다만 리미날리티 이론은 희생양 이론과 달리 희생양이 필요한 시기를 통과의 발전시기로 보고 통과의례 또한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는 점이 다르다.
빅터 터너가 사망한 뒤 그의 아내 에디스 터너(Edith Turner,1921-2016)는 커뮤니타스의 적용 범위를 더욱 확장했는데, 거의 모든 삶의 영역들에서 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통과의례·축제·음악·스포츠에서 발견되는 커뮤니타스뿐 아니라 일(노동)·해방·저항·재난의 커뮤니타스 등 새로운 범주도 제시했다
위기상황에서 리미널리티가 중요한 것은 위반―위기―교정/치유―재통합/분열의 사회극 4단계에서 교정/치유 단계이다. 오늘날 사회극에서 교정/치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SNS를 포함한 각종 사회의 언론이다. 그러나 코비드19와 같이 사회의 언론만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부각되는 것이 리미널리티이다.
리미널리티 이론가들에게 리미널리티는 근대를 비판하는 현대의 동서양 사상을 총괄하는 키워드로 간주된다. 이영란은 메를로 퐁티의 몸의 현상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들뢰즈의 생성철학, 김상일의 한사상, 한국 선도사상이 리미널리티 이론으로 통합, 제시하고 있다.[16]
동학이 기존 동양사상과 달리 제시하여 리미널리티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시천주의 모심이라고 한다. 같은 초월적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했지만 서학과 달랐던 것은 동학은 초월적 신을 나의 안으로 모시고 와서 리미널리티의 영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소위 초월과 내재의 중간영역이 동학의 시천주에서 탄생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통과의례로서의 시천주 수련과 동학사상이 탄생한다. 김지하 사상의 변화과정에서도 이 모심의 순간이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나타난다.
김지하 예술과 사상의 출발은 또한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바와 달리 초현실주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실천가로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초기부터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삼일만에 "오적"을 탈고한 것은 그의 기존의 독서량이 집약된 것이라고 한다. "오적"과 같은 담시는 초현실주의를 한국 전통과 결부시키려 한 고등학교때부터 시작한 그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다.
초현실주의와 전통을 연결하려한 김지하의 시도는 향후 전개되는 그의 사상에 나타난 리미널리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초현실주의라는 서양의 극단적인 발전형태와 동양 예술의 극치인 판소리의 중간형태를 담시를 통해 김지하는 구현해보고자 했고 이 모델이 확대되어 그의 후배였던 오윤, 임진택, 김영동, 이애주, 채희완 등이 이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김지하 생명 사상의 연속성도 초현실주의와 민족전통의 리미널리티를 찾고자 했던 그의 초기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지하 생명사상의 단초는 유명한 김지하의 독방 감옥에서 감방속에 피어나는 풀을 통한 해월 최시형의 삼경사상이라는 동학사상과의 만남이다. 김지하가 유물론자는 아니었지만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이 실존의 문제로 대두되던 시절, 독방 감옥에서의 그의 육체적, 정신적 병을 치료한 것은 독방감옥의 시멘트 바닥에서 뿌리를 내리는 풀잎 곧 개가죽나무의 생명력과[17] 그 풀잎의 생명력을 모시고자 했던 동학의 실천가 해월 최시형의 삼경사상이었다.[18] 신을 마음에 모시던 동학은 해월에 이르러서는 생명을 모시는 리미널리티의 단계로 발전했고 이 중간상태에서 최초의 구분이 있기 전의 무극과 태극 같은 상태를 김지하는 경험했으며 다른 통과의례와 같이 이 중간상태에서 김지하는 자신의 병이 치유되었고 이 치유의 힘을 생명이라고 부른 것이다. 동학사상이 당시 많은 민초들의 병을 고쳐준 것을 김지하는 다시 체험한 것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실존적 대립은 생명에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독방 감옥에서의 김지하의 체험은 오늘날 "유물론에서 언어"로 전회 한다는 현대철학과 같이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고 김지하가 체험한 생명사상은 오늘날 자생적 생명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처음 김지하가 제시했던 생명사상은 매우 낯설었지만 생태와 환경이 민중운동의 대세가 된 오늘날 선견지명에 가까운 전환이었다. 특히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서양의 수많은 생명사상에 대응할수 있는 한국의 자생적 생명사상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오늘날 생명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이정배에 의해 잘 정리된 바 있다.[19]
한국에서 생명담론은 대안적 가치를 모색하면서 그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 내의 주류적 가치가 여전히 경제 및 개발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 성장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나 무게중심은 여전히 후자에 있었기에 생명담론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성장이 '성숙'으로 바뀌지 않는 한 성장은 결국 공멸에 이르는 길엄을 숙지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화두가 자유와 평등을 말하던 이전 시기와 달리 단순성 (simplicity)이란 점도 이런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다. 최소한의 물질로 살고자 하며 상품의 유통과정 속에서 에코지능을 발휘하고 자연 따라 살기 (Biomimicry)를 실행에 옮기려는 시람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생명가치가 더 이상 소수자의 것이 아니라 중심담론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명의 형이상학 적 측면을 논구한 A. 슈바이쩌와 H. 요나스, 생태계 위기 실상을 알렸던 J.리프킨, J. 러브록 등의 책들과 F. 카프라의 신과학적 영성 그리고 김지하의 자생적 생명학과 생명운동,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론', 최근에는 플라톤 사상의 각주이기를 거부하고 진화론과 접목된 프랑스의 생명철학, 『통섭』의 저자 E. 윌슨의 생명호성(biophilia), 미국의 과정사상의 생명담론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물론 『천부경』을 비롯하여 생명을 종교적 가치로 여기는 제종교의 생명사상도 담론으로 발전했으며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에게서 생명사상의 단초를에 소개된 서구 생태여성주의 역시 생명담론에 한 축을 담당했던 것으로 정현경의 '살림이스트' 영성과 이은션의 한국적 '생물(生物)여성영성'의 탄생을 도왔다. 모던(하이어라키)과 포스트모던(헤태라키)의 극성을 극복 지양시킨 홀아키론을 주창한 켄윌버 의 사상 역시 생명사상으로서 소개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천규석, 윤구병 등 자신의 생명가치를 공동체 영역에서 실험하는 몇몇 실천가들 역시 본 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나 지면 관계상 논외로 할 것이다.
김지하 생명사상의 계보가 동학에 뿌리를 대고 있지만 김지하 생명사상은 또 다른 자생적 생명사상과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김지하 생명사상과 관계된 생명사상을 통시적으로 과거에서 찾아본다면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운동과 연관되며 이는 가톨릭의 생명사상에 기원한다고 되어 있지만 일찍이 류영모, 함석헌 계열의 생명사상이 있었다.
류영모, 함석헌 계열의 생명사상과 김지하 사상을 연계해 본다면 두 사상 모두 동양 전통 특히 장자의 연결사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함석헌은 류영모의 제자였지만 둘은 또 일본 우찌무라 겐조의 무교회주의에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기독교의 토착적 해석, 곧 유불선, 장자와 연결된 해석은 류영모에게 영향을 준 조만식 선생과도 연관된다. 화엄, 주역이 연결을 화합과 상생을 위주로 하지만 둘 다 대칭성과 상관적 사유로 서양과는 차별화를 보인다.
김지하 생명사상과 관계된 생명사상을 공시적으로 살펴본다면 무관해 보이는 이문열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종교학자였던 서울대 정진홍 교수는 한국종교사를 뮈토스의 불교, 로고스의 유교, 테오스의 동학으로 정리하고 해방 후 개신교의 발전을 동학의 연장선에서 본 바 있고[20] 동학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21] 정진홍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명한 개신교 주제 소설가였던 이문열은 동학의 계승관점에서 김지하와 동일한 위상에 있었다 할 수 있다.
이문열외에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대비될 수 있는 또 다른 작가는 박노해라 할 수 있다. 노동자 출신으로서 김지하만큼의 문학적 능력을 보여준 박노해는 김지하와 같은 오랜 수감 생활 후 김지하와 달리 평화운동가로 변신했다. 김지하가 이문열 혹은 박노해와 달랐던 것은 자신의 사상적 뿌리를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리미널리티입장에서 본다면 정진홍이 언급한 바와 같이 김지하가 선택한 동학과 증산사상은 한국 사상 리미널리티의 연속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김지하의 입장이 의의가 있다.
정진홍의 이론을 확대하여 들뢰즈의 이론과 연결해 본다면 한국적 화합, 상생이론을 구상해 볼 수 있다. 들뢰죄는 생명이라고 하는 화합을 칸트 이론에 기초하여 연결, 이접, 연접으로 구분한바 이는 정진홍의 원리에 따라 각각 동양의 불교, 도교, 유교에 연결할 수 있다. 김지하는 동학에서 증산으로의 한국사상의 변화에서 나타나듯이 김지하 사상에서 화합의 의미도 화합에서 상생으로 발전한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생명"개념에 나타난 김지하 사상에 나타난 리미널리티는 향후 율려, 흰그늘, 밥, 남녁 등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각 개념은 실천적 속성이 더 강화된 개념이다. 경계의 뜻을 가진 리미널리티는 실존주의와 같은 한계상황의 개념으로 확대된다.[22] 김지하의 시세계를 리미널리티로 해석해 온 이강하는 한계상황을 칸트의 인식론, 실존주의의 존재론, 호모 사케르의 가치론이라는 세가지 영역으로 해석하고 가치론적 측면에서 리미널리티는 사회의 주변인인 호모사케르로 나타나 김지하의 시세계는 이 호모 사케르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나타난다고 한다.
한계상황의 통과의례적 해결책으로 제시된 리미널리티는 오늘날 다양한 현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통일하는 하나의 개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배우이자 연극이론가인 이영란은 이정배가 요약한 다양한 현대사상을 리미널리티 이론으로 통합한다.
고대도시에서 말하듯 리미널리티는 새로운 시대의 문화를 만드는 기폭제가 되고 이를 재활성화를 통해 완성해야 될 과제가 생명사상을 통해 김지하가 재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