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율려 사상과 정역사상의 리바이탈라이제이션

3. 율려 사상과 정역사상의 리바이탈라이제이션

감옥을 출소한 김지하는 율려사상을 제시했다. 율려란 동양음악의 화음에 해당하는 법칙으로 소태극 대태극으로 무한중첩하는 우주에서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조율하는 메트로놈처럼 만물을 리듬으로 조율하는 기능이 율려이다. 김지하 사상이 동학의 생명에서 천주교의 생명을 거친 뒤 율려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김미미는 연구사에 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김지하는 다양한 사상을 섭렵하게 된다. 주대상이 되는 천주교에서 발견하려고 했던 것이 참 삶의 길이었는데 천주교 역시 천상과 지상의 이원론적인 구분을 극복하는 사상이 들어있지 않았고 동학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변한 것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당황하지만 동학에서도 정치적인경륜과 개벽의 우주관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국을 보는 관견과 행동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동학은 정치를 배제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논지가 이후에 그의 사상세계를 다루는 글에서 대체적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그다지 새로운 시각은 발견되지 않는다. 대개의 논의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80년대를 기점으로 삼아 그 이후 애린, 대설 南을 통해 '애린'으로 대변되는 생명사상이 부각된다. (하지만 김지하 연구자들은 그 이전 시기부터 이미 생명사상이 내포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동학의 수용과 함께 '侍天主'로 대변되는 '모심(侍)'의 시학이, 실천적 운동으로서 '율려'가 등장하고 산문집 흰 그늘의 길(2003), 흰 그늘의 미학(2005) 발간 이후는 '흰 그늘의 미학'으로 정리된다는 것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일련의 흐름이다.[23]

김지하가 율려에 주목한 것은 김지하 율려의 출처인 김일부 정역 사상을 동학의 역학적 전개로 간주했기 때문이다.[24] 동학이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이유를 이론의 부재로 보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동학의 역학적 전개인 정역사상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는 '생명'을 주장한 동학사상이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동학사상은 세계 최초로 사용된 기관총이라는 새로운 리미널리티를 맞이하여 또 한번 결단의 순간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 근대화시기 이후 한중일의 동아시아인은 계속되는 한계상황의 연속이었다. 충분한 정보없이 늘 새로운 문제를 만나야 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생존이 보장되는 궁극적 한계상황에 일상적으로 내몰렸다. 전통적인 상관적 사유에 의한 문제해결은 근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엄혹한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인 전통 아래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이 한계상황에 놓이고 있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동학마저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든 상황에서 대안은 매우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때 전통에 기반한 혁신 이론인 정역의 율려이론이 동학을 대신할 수 있는 이론이 될 수 있었다. 역학에 기반하여 이치를 중시하는 정역사상은 기를 중시하는 동학과 달리 일상의 문제에 보다 적용될 수 있었다. 이 시기 율려사상과 같이 제시된 것이 또한 김지하의 밥사상이다. "밥이 하늘"이라는 밥사상은 관념에 치우친 동학의 생명사상에 대해 보다 현실에 기반하는 생명사상의 모델로 제시된 것이다.

율려사상을 통해 김지하는 동학에 의해서 촉발돤 리미널리티를 재활성화하려고 했다. 율려는 따라서 리미널리티로서의 생명사상이 재활성화되어 실천운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김지하는 동학의 실패 이후 전개된 김일부의 정역사상을 동학의 역학적 대안으로 간주하고 정역의 율려사상에 주목한다. 율려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까지 역임한 김지하였지만 율려는 상관적 사유로 대표되는 동양사상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한 부분이었으므로 율려를 설명하는데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했다.[25] 실제 동학을 재활성화의 시작으로 보는 연구도 있어 왔다.[26] 동아시아에서 재활성화의 전통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 공통되는 것이었다.[27]

재활성화(Revitalization Movements) 이론은 변화에 대한 내부의 변화과정을 중시하는 리미날리티 이론과 달리 외부의 변화에 대한 대응과정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재활성화이론은 인류학자 앤서니 F. C. 왈라스(Anthony F. C. Wallace, 1923-2015) 가 1956년 그의 기념비적인 논문 "재활성화 운동 이론"에서 처음 소개되었다.[28]

재활성화란 개인의 정체성이 해체될 수 있다는 위협을 받으면 자신의 장점에 입각하여 개인이 자신의 신념체계를 재정비하고 바꾸고 바뀐 신념체계를 실천에 옮겨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듯이 사회도 사회가 가진 사회적 정체성이 해체될 위기를 맞이하면 각 사회의 기존 문화전통의 장점을 되살려 사회적 신념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이를 재활성화라고 왈라스는 이름지었다.

왈라스에 의하면 사회의 신념체계가 바뀌는 것은 한 사회의 성원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이미지(mental image)인 메이즈웨이(Mazeway, 인식지도, 원뜻은 미로)를 통해서이다.[29] 왈라스에 따르면 한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 사회유기체의 일부로서 자신의 신체와 신체가 행하는 행위의 규칙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에 대해 정신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데 바로 이 이미지가 메이즈웨이에 해당한다고 한다.[30]

왈라스는 인간 사회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았고 메이즈웨이는 각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사회적 유기체에 적응해 나가는 방식이다. 메이즈웨이(미로)라는 개념은 사회적 환경 안에 살아가는 물리적 객체에 대한 인식 뿐 아니라, 주어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개인이 조정하는 방식이나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이 미로를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31]

사회의 정체성 위기가 오면 개인에게는 이 메이즈웨이에 위기가 찾아오게 되고 이는 물질적인 위기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위기로까지 연결되므로 물질적 위기보다 더 큰 위협으로 사회 구성원에게는 다가오게 된다. 이에 사회는 다양한 종교적 재활성화운동으로 반응하게 되고 일부 종교운동은 정치운동으로까지 확대된다.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19-20세기 수많은 식민지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은 물질적 위기보다 정체성 위기였다. 수천년간 이어오던 전통은 서구 문명에 의해 미신으로 전락되고 존경받던 지도자들은 미신을 조장하는 사기꾼으로 전락되어 더 이상 전통사회의 신념체계는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고 개인의 사회적 지위 또한 돌이킬 수 없게 추락되었다.

일반 대중에게도 전통의 붕괴는 강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된다. 새로운 서양의 신념체계도 무너진 전통신념체계와 같이 오랜 전통에서 온,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신념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체계만 부정되는 상황에서 일반대중과 지도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전통의 전유, 곧 재활성화였다.

재활성화는 시간, 공간, 인간에게 다 적용되었다. 시간의 경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천년왕국운동(Millenianism)으로 나타나고 공간의 경우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지상천국운동이 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는 종교 학설이 혼합되는 혼종주의가 나타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무저항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19-20세기의 종교운동은 재활성화의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고 동학의 경우는 이 모든 유형이 종합되어 있다.

재활성화 이론은 1952년 인디언 부족의 하나인 세네카(Seneca) 부족 예언자 핸섬 레이크(Handsome Lake, 1735-1815) 가 벌였던 19세기 초 이로쿼이족(Iroquois) 사이에 나타난 롱 하우스 운동(Long House movement)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종교 단체의 탄생과 발전을 평가하려는 이론에서 출발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오랜 종법적 질서를 세계의 전체로만 알고 있던 조선에 일본서구와 일본의 자본주의적 물질문화가 정체성 위기를 당시 조선 사회에 일으킨 것처럼 오랜 세월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온 인디언들에게 총칼로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서양문화와 서양사람 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뉴욕이 위치한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인디언 부족인 이로쿼이족에게 그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이로쿼이족의 하나인 세네카 부족 지도자 계층의 한 사람이었던 핸섬 레이크 또한 미국의 식민정책에 정체성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던 인물이었다. 핸섬 레이크가 살던 시기는 미국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진행되는 때로 이 골드 러시가 생기면서 과거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국가대 국가의 계약을 하던 인디언의 지위는 한일합방 때 국가자격을 상실했던 조선도 마찬가지로 보호국으로 전락된다.

김지하 사상연구에 있어 재활성화가 중요한 것은 재활성화가 다루는 민족 사상이 인류 보편사상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어떤 보편적 사상도 특수한 민족의 사상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보편적 사상을 이루기 위해 먼저 민족 사상의 재할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화해와 상생의 사상으로 가는 출발점은 민족사상의 재활성화에 있다.

정역사상에서 제시된 재활성화가 바로 주역의 전통 재해석이었다. 김지하가 전통 재해석에 정역을 주목한 것은 근대화 시기 한중일 삼국은 중체서용과 같이 전통에 기반한 수많은 이론으로 서양사상을 융합해 보고자 하였지만 정역과 같이 근본적으로 재해석한 이론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역의 율려사상은 정진홍이 말한 바와 같이 전통을 일관성있게 통일하는 논리였다, 정역이 추구한 논리는 포태, 양생, 욕대라는 동아시아 오행체계의 일관성이었다. 정역의 포태, 양생, 욕대는 증산에 의해 명확히 밝혀졌지만 정역사상에 내포되어 있었다.

역의 十一一言에서는 지지를 중심으로 천지의 개벽원리를 논하여 선천의 지지가 자축으로 시작됨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十土六水는 不易之地니라 一水五土는 不易之天이니라. 天政은 開子하고 地政은 闢丑이니라. 丑運은 五六이오 子運은 一八이니라.(십토의 육수는 불역의 지이며, 일수와 오토는 불역의 천이다. 천의 정사는 자에서 열리고, 지의 정사는 축에서 열린다"(김항, 『정역』, 「십오일언」, 제이십이장, 이현중, 「정역의 干支 度數 원리(1)」,『『동서철학연구』Vol.27 No.-, 한국동서철학회, 1998, 59쪽) 도가 사상과 불가 사상을 주객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인식대상의 측면에서 주체와 객체가 합일된 세계의 자각을 이루고자 한 것이 도가사상이라면 인식주체의 측면에서 주체와 객체의가 합일된 인격성의 세계를 자각하고자 한 것이 불가사상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유가 사상은 자각에 그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각의 가능 근거로서의 존재 자체를 천명함으로써 그것을 근거로 하여 자각과 실천에 그 중심이 있다. 따라서 도가와 불가 유가 사상이 시간적 계대관계를 이루면서 출생기와 생장기 그리고 장성기를 이룬다.[32]

이는 정진홍이 말한 미토스., 로고스, 테오스로서의 종교사상적 변화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역적 해석은 한태동에 의해 보다 수리논리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김지하는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형태이다. 먼저 한태동의 설명을 살펴보면 유불선은 서로 논리적으로 리미널리티로 연결된다.

유불선을 수리논리로 표현한 한태동의 연구[33]는 유뷸선이 철학일 뿐 아니라 음양오행에 기반한 과학이론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불선과 기독교는 친구와 원수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있어 그 특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배워서(X) 익히니(X) 기쁘고 멀리서 친구(X)가 또(X) 찾아와서 기쁜 유교는 임금(X)은 임금(X)다와야 하고 신하(-X)는 신하(-X)다와야 하므로[34] 친구(X)와 원수(-X)의 관계에서 친구(X)는 친구(X)고 원수(-X)는 원수(-X)다. 원수와 친구를 척력과 같이 분리하여 추진하는 봄-유교에 대해 오랜 유교의 숙적이었던 도교는 도(X)를 도(X)라 하면 도가 아니고(-X) 유(X)는 무(-X)이고 무(-X)는 유(X)이며 가장 약한 물(-X)이 가장 강하고(X) 가장 추한(-X) 사람이 가장 미인(X)이므로[35] 원수(-X)는 친구(X)요 친구(X)는 원수(-X)[36]라고 한다. 원수와 친구를 대칭으로 배치하는 폭발력-은잠성의 도교에 대해 오랜 유교-도교의 중재자인 불교는 친구(X)도 원수(-X)도 없는 일체 공(空)을 주장한다. 물론 유불선의 삼각관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킨 기독교는 불교에 대해 원수(-X)를 사랑하라는 말로 유불선을 모두 포함해 버린다[37]

결국 김지하가 말하는 정역사상에 나타난 율려란 서로 다른 사상들의 엇박자와 조화가 논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김지하는 서로 반대되는 사상을 융합한 사례로 정지용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정지용 시인상 수상자리에서 소감으로 밝힌 바 있다.[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