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김지하 추모 1주기를 맞이하여 화해와 상생 사상으로서의 김지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최근 대두되고 있다. 처음엔 보수에서 두 번째는 진보에서 큰 홍역을 겪은 김지하의 사상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한 직언으로 생전에 늘 오해받았지만 사후 그 가치가 재평가 되는 것이다.
김지하의 사상이 오해 받았던 것은 진보와 보수 양쪽을 넘나든 그의 이력 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다방면에 걸쳐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으로 말해 온 그의 사상 표현 방식에도 원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김지하의 사상적 변천은 "오적"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질 때의 유물론적 민족주의자에서 생명사상가로 율려운동을 벌인 말년에는 밥사상과 흰그늘의 미학사상가로 크게 대별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표현방식에서 매우 창의적이긴 하지만 사상적 변화가 어떤 일관성이 있는가를 파악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실제 그 자신도 자신의 이론에 대한 소개서로 자신에 대해 최초의 박사논문을 쓰고[1] 최후의 대담을 한[2] 홍용희의 글을 지인에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3] 그의 사상은 체계적인 이론가의 사상이라기보다 실천사상가의 미학적 담론 정도로만 이해되었지만 그의 사상이 좌우 진영에 대해 화해와 상생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은 좌우 진영 모두 추모 학술대회에서 동의하는 분위기이며 따라서 상생의 입장에서 일관적으로 재조명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지하의 화해와 상생 사상은 평생 좌우진영을 넘나들며 논란의 중심에 있어 그 평가도 극과 극으로 양분된다. 그의 사상이 진보 진영에서는 기회주의의 전형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화해와 상생과 관련하여 그의 공헌은 화해와 상생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숨기고 싶은 과거, 부끄러운 전통과의 화해와 상생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점은 모두 동의한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생명 사상이 오늘날 하나의 생명분야 사상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에 치중했던 인문사회과학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김지하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4]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생명사상은 유물론을 대체하는 인문사회과학의 거대한 새 패러다임이 되었다.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생명 사상 중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한국 유물론을 대표하는 사상가의 자생적 생명사상으로 자리매김되어 특히 논란이 커진 셈이다.[5]
김지하는 사상적으로 많은 논란을 남겼지만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문화예술에서는 가정불화로 헤어졌던 가족을 상봉시키듯 잃어버렸던 방법을 되살려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탈춤, 마당놀이, 국악, 판소리, 살풀이 춤 등이 흑인 3세와 같이 숨기고 싶던 치부로부터 탈출햐여 우리의 이목구비에 성공적으로 작용하는 예술로 화해하게 된 것은 김지하로부터이다. 논란 많은 김지하 사상은 생활 속 예술로 실현되었다는 점이 일반 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오윤의 판화 미술, 이애주의 살풀이 춤, 임진택의 판소리, 채희완의 탈춤, 김영동의 국악, 농악과 풍물, 조용필의 대중가요[6] 등 오늘날 우리가 서구화된 문화 예술에 지쳐 조금이라도 쉬고 싶을 때 우리를 쉴 수 있게 하는 것은 김지하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수많은 민족 예술이다. 실제 김지하 이전에 민족문화예술은 거의 이름만 전해지는 상태였고 '오적'으로 대표되는 그의 담시 이후에야 비로소 민족문화예술이 사회운동가들에게 일상의 변화에 활용될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게 되어 활성화되었다. 식민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한국 민주화에 민족문화예술의 공헌은 남달랐고 재평가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김지하의 화해와 상생 사상은 그동안 사상과 문학에 대한 분야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지만 그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김지하는 방대한 자서전을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사상적 변화의 계기를 다양하게 설명하는 방대한 이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그에 대한 연구가 있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김지하의 사상적 변화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이론은 없는 가운데 추모 1주기를 맞아 여러 가지 논의가 전개되었다.[7]
추모 1주기 동안 열린 다양한 학술대회에서 김지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김지하 사상에 자주 나타나는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비교를 통해 그 사상적 변화를 설명한 내용은 드물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이 김지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데도 두 사상의 영향을 비교하지 못한 것은 아직 동학사상과 증산사상 내부에서도 두 사상의 비교가 많이 연구되지 않은 점도 다소 기인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인문사회과학적 패러다임의 대변화를 종합하고 있고 동학과 증산사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사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자생적 생명사상이란 점에서 김지하의 생명사상연구에는 기존에 연구되지 않은 보다 보편적인 이론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민족문화예술분야에서 논하는 인류학적인 방법인 리미널리티와 리바이탈라이제이션(재활성화)을 김지하 사상의 일관성 연구 개념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특히 두 개념을 김지하 사상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비교에 적용하여 김지하 사상의 변천에 나타난 일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 김지하 사상의 일관성에 대한 논의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신과 혁명의 통일"과 같은 문학과 사상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가 있었지만 인류학적인 틀로 분석한 사례는 드물다.
문지방이라는 뜻에서 출발한 리미날리티(liminality)는 애초 세계 문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통과의례라는 인류학의 분야였다. 리미날리티는 통과 과정에 나타난 문지방같은 애매한 중간상태를 일컫는 말이었다. 화해와 상생에서 이 리미날리티 개념이 유용한 것은 이 애매한 중간상태에서 수많은 통과의례가 이루어지듯 화해와 상생이라는 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리미날리티는 변화의 기반이 되는 "탈경계"의 표준이 되어 리미날리티를 통과의례 이론에 도입한 빅터 터너 이후 미개민족 문화를 연구하던 인류학이 오늘날 수많은 현대연극, 나아가 민족예술까지 아우르는 현대 일상문화 분석틀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일상이 모두 연극이라는 어빙 고프만의 이론은 연극치료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오늘날 리미날리티 이론은 니체 이후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이론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틀이 되어 그 동안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브레히트의 소외극 이론, 아르또의 잔혹극 이론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 되었다. 리미널리티 이론이 현대희곡에 대한 인류학적 이론의 적용이라는 부분에서 시작된 만큼 리미널리티를 통한 희곡작가인 김지하 사상의 분석 또한 희곡연구에서부터 재해석된 셈이다.
김지하 사상을 해석하는 단초로서 리미날리티 개념에 주목한 것도 한국의 희곡이론 연구가 김익두에서부터이다.[8] 김익두는 리미널리티 이론가 빅터 터너의 이론서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예술인 마당극, 농악, 풍물굿의 사상적 특성을 도출해 내었다. 김익두는 김지하와 교류하며 김지하 사상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리미널리티를 제시하고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동학과 증산 사상에 대해서도 그 리미널리티를 중심으로 동학과 중학이라는 개념으로 그 연결점을 추구해왔다.[9] 김익두는 김지하 사상의 의의가 김지하 사상과 많은 유사점이 있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끝내 실패한 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갈등적 희곡의 세계관으로 끝내 찾을수 없었던 화해와 상생의 리미널리티는 김지하의 동양적 리미널리티에서 찾을 수 있다는데 김지하 사상의 의의가 있고 그 리미널리티는 김지하 사상의 내부에서 수운의 동학에서 증산의 중학으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10] 실제 김지하는 오늘날 K-문학의 원조로 회자되고 있다.
리바이탈라이제이션(재활성화, revitalization)은 리미널리티가 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리미널리티가 민족운동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이 서로 다른 사상이지만 공통적으로 식민지시대 민족문화를 리미날리티로 재해석하여 재활성화하는 다른 식민지 문화운동과 공통적 특성이 있다. 식민지 시대 민족문화 재해석을 통한 민족문화 부흥운동은 그 동안 인류학에서는 리미널리티와 리바이탈라이제이션(재활성화)이론으로 설명해 왔다.[11]
일찍이 김지하가 주목한 한국의 마당극과 같은 리미널리티적인 공연 예술문화는 중국의 경극과 같이 서구 예술의 대안으로 주목받았고 마당극과 담시와 같은 열린 예술형식에서 시작한 김지하의 사상은 향후 생명 사상 등에서도 일관적으로 반영된다. 김지하가 생전 자신의 사상을 리미날리티 개념에 주목하여 설명하지 않았지만 "남조선" ."흰그늘"등 많은 리미날리티 개념의 흔적을 남겼다.
이 글은 김익두가 발견한 김지하 사상의 리미널리티 개념을 바탕으로 김지하 사상의 변천에 나타난 일관성을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변천 과정으로 해석해 보고자 하는 글이다. 김지하 사상을 리미널리티 개념으로 분석한 연구가 김익두 이후 시도된 바 있지만[12] 이 글은 기존 연구와 달리 동학사상에서 증산사상으로의 변화과정을 추가하여 김지하 사상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재활성화란 식민지 상황과 같은 문화위기 상황에 통과의례같은 민족문화가 부활되어 위기를 극복하려는 공통성이 문화적으로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재활성화는 리미널리티 개념을 한국과 같은 식민지 국가의 사상분석에 리미널리티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이 김지하 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준 사상이긴 하지만 큰 틀에서 김지하가 이룩한 민족문화예술 부흥은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을 오히려 재해석해 낸 성과가 크다. 이 글은 김지하 사상에 영향을 준 동학사상을 리미널리티 개념으로 증산사상을 그 리미널리티 개념을 완성한 재활성화라는 연속성으로 이해하고 김지하 사상의 변천과정을 리미탈리티의 재활성화이론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