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관적 사유의 제1방법 – 입체(立體)

2. 상관적 사유의 제1방법 – 입체(立體)

도교적 미메시스(Mimesis): X는 -X이고, -X는 X이다

2.1. 입체적 사유의 정의

입체적 사유를 가장 쉬운 말로 바꾸면 ‘한쪽 면만 보고 결론 내리지 않는 힘’이다. 상자를 사진 한 장으로만 보면 앞면만 보이지만, 실제로 손에 들고 돌려 보면 옆면과 뒷면, 안쪽 구조까지 이해할 수 있다. 입체적 사유는 생각의 상자를 돌려 보는 능력이다.

사람 사이의 갈등도 그렇다. 어떤 친구가 무례하게 굴었다는 장면만 보면 그 친구 전체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그날의 상황, 감정, 오해, 관계의 역사까지 보면 사건의 구조는 훨씬 복잡해진다. 입체적 사유는 잘못을 없애 주지는 않지만 더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AI 시대에는 이런 입체성이 더 중요하다. AI는 표면적 패턴을 빠르게 잡아낼 수 있어도, 왜 그런 상황이 생겼고 그 판단이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까지 깊이 헤아리는 일은 인간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인 “입체(立體)”는 현실과 문제를 단선적이거나 평면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차원적이고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구조와 연결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관점을 통합하여 ‘견고한’ 이해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이해는 추상적인 데이터 처리를 넘어 “신체, 감정, 직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주관적 질감인 “감각질(Qualia)”이나 진정한 “지향성 (Intention-ality)”을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체화된, 경험적 지식은 AI가 복제할 수 없는 이해의 깊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베이징 오페라는 몸짓, 색채, 소리 등을 통해 풍부하고 유추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구현된 의미”의 전형으로, 관객을 “신체적, 정서적으로도” 참여시킨다. 이는 다층적이고 비문자적인 소통 방식이다. 또한, 역할극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심리적 치유를 돕는 드라마 치료는 부분적으로 베이징 오페라와 같은 동양 연극 형식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는 체화된, 다감각적 참여가 깊은 이해와 변형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입체적 사유”는 AI의 데이터 처리 방식, 즉 방대하지만 종종 평면적인 정보 나열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전략이다. AI가 넓은 범위의 데이터를 볼 수 있다면, 인간은 “입체”를 통해 그 데이터 포인트들의 깊이와 상호 관련된 구조, 그리고 윤리적 층위나 정서적 맥락과 같은 비정량적 측면을 파악해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기반한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심층적 맥락 이해가 필수적이다. “신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 생존이 물리적, 살아있는 경험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각하며, 이는 점차 비물질화되는 AI 매개 세계에서 독특한 인식론적 기준점을 제공한다. 연구 자료에서 제시된 “입체음양오행(박용규, 2017)” 이나 “구조론(김동렬 2010)” 과 같은 개념들은 이러한 입체적 이해를 심화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적 접근을 시사한다. 구조론은 현상의 “연결 지점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을 탐구하고 다양한 수학 분야를 “하나의 일관된 논리 체계로 통합”함으로써 , 현상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이해하려 한다. 이는 피상적인 현상을 넘어 생성 원리를 파악하는 것으로, AI 시대의 복잡한 시스템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데 중요하다.

2.2. 도교(道敎)적 미메시스(Mimesis)

입체적 사유가 대립항 간의 상호의존성을 통찰하는 것임을 이해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은 추상적 기호가 아니라 현실의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나타난. 우리는 이를 ‘본질적인 뿌리’를 찾는 동양의 가장 오래된 지혜인 도교적 미메시스에서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모방’으로 처음 쓰인 미메시스는,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고 체화하는 창조적 능력을 뜻한다.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이를 인간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서사적 정체성’의 뿌리로 보았고, 한국의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1988)는 이를 종교적 체험과 상징이 인간의 몸과 삶 속에서 ‘뿌리를 찾고 구체적으로 신체화되는 근원적인 도교’로 할당하였다. 본 글에서는 미메시스를 도교적 생명력, 즉 추상적 세계를 구체적인 신체로 바꾸고자 하는 처음의 정신적 역동으로 적용한다.

모방이라는 미메시스의 원뜻을 살려 정신이 인간을 모방하여 몸을 가지게 되는 단계를 도교적 미메시스라 할 수 있다. 몸이 자신과 상반되는 정신을 가지기에 도교적 미메시스는 ‘X는 -X이고, -X는 X이다로 요약된다.’(한태동 2003)

실제 노자는 道(X)를 道(X)라 하면 道가 아니고(-X), 가장 강한 것(X)은 가장 약한 물(-X)이요, 천지(X)는 불인(不仁, -X), 친구(X)는 원수(-X)이며 원수(-X)는 친구(X)이다.라고 하며 도덕경 전체를-X는 X이다로 일이관지한다.

한태동(2023)은 동아시아 유불선이 상식과 달리 엄밀한 수학적 구조로 정립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가령 친구와 원수에 대해 도교와 유교는 다음과 같이 논쟁한다. 원수(-X)를 친구(X)라고 하는 도교에 대해 유교는 원수는 원수고 친구는 친구라 한다, 유교에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 다워야 한다(X→X ~X→~X). 이때 늦게 동아시아에 나타난 불교는 친구도 원수도 없다 X->(~X∧ X))와 같이 표현하여 크게 성공했다.

이 문장은 처음 보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뜻은 오히려 단순하다. 어떤 것은 반대되는 것과 완전히 끊어져 있지 않고, 그 반대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의미를 얻는다는 말이다. 낮이 있기에 밤을 알고, 밤이 있기에 낮도 선명해진다.

중학생의 일상으로 바꾸면 공부와 휴식이 좋은 예다. 공부만 있고 휴식이 없으면 집중력은 무너지고, 휴식만 있고 공부가 없으면 성장은 멈춘다. 공부가 X라면 휴식은 -X일 수 있지만, 둘은 서로를 망치는 적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짝이다.

따라서 ‘X는 -X이고, -X는 X이다’는 ‘완전히 같은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며, 한쪽 안에 다른 한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늘 들어 있다는 뜻이다. 도교의 지혜는 바로 이런 상보성을 읽어 내는 데 있다.

AI와 인간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다. AI가 분석과 계산에서 강하다면 인간은 의미 판단과 책임, 배려, 맥락 이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둘은 경쟁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도교적 미메시스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연의 순리와 변화의 원리를 체득하고 이를 삶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X는 -X이고, -X는 X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될 수 있는 상보성의 원리이다. 이는 음과 양처럼 대립되는 것들이 실제로는 서로를 규정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며, 끊임없이 서로 전환하는 관계임을 통찰하는 것이다. 밝음이 있기에 어둠이 의미를 갖고,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드러나듯, AI와 인간의 관계 또한 이러한 상보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2.2.1. 인공지능과 인간: 상보적 관계

AI 시대에 인간과 AI를 단순한 대립 관계로 보는 것은 도교적 지혜에 부합하지 않는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방하고 특정 영역에서 능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인간의 가치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고유의 영역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AI가 ‘X’라면 인간은 ‘-X’가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AI가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영역에서 강점을 보인다면(X), 인간은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영역(-X)에서 그 가치를 더욱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의 직관과 통찰(-X)은 AI의 데이터 처리 능력(X)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즉, AI의 발전은 인간 능력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이 AI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일찌기 AI와 인간의 관계를 기계(X)와 유기체(-X)로 비교한 바 있다. AI가 출현하기 이미 100여년전에도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현상학이나 생철학, 베르그송은 AI와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인간의 신체가 유기체러서 인간 고우의 특징임을 알아낸 바 있다.(김형효 1991)

2.2.2. 무위(無爲)의 리더십: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다. 강이 스스로 흘러 바다에 닿듯, 자연의 방향에 거스르지 않는 행위가 무위다.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흐르고, 그 흐름이 모이면 거대한 힘이 된다. AI를 다루는 리더십도 이와 같다. 통제와 명령으로만 AI를 이끌려 하면 오히려 AI의 가능성을 막는다. 인간이 방향과 가치를 설정하고, AI가 그 안에서 최선을 찾도록 공간을 주는 것이 무위의 AI 리더십이다.

시간은 무위의 대표적 상징이다. 주역이 원형이정을 핵심으로 하는 것은 원형이정, 곧 봄여름가을겨울로 대표되는 시간의 힘이다. 시간은 이솝우화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시합에서 바람과 달리 자연스럽게 옷을 벗기는 태양과 같다. 인간의 신체는 시간을 미메시스(모방)할수 있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저명한 AI 개발자들은 문제 학생들을 오히려 신뢰하고 교육법을 바꿔 문제 학생들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유능한 교사에 인간을 비유하기도 한다. 저명한 AI 개발자들은AI의 기능을 신과 같이 믿어주되 신과 같은 능력이 있지만 인간이 없으면 현실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AI를 간주한다.

AI를 거울로 삼는다는 것은 AI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결과에서 인간 자신을 읽는 연습을 뜻한다. AI 시스템이 특정 집단에 편향된 판단을 내릴 때, 그 편향은 AI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AI에게 학습을 시킨 인간 사회의 편향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AI의 작동 방식을 점검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떤 편견과 불공정을 내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듯, AI를 통해 인간 문명의 민낯을 보고 고쳐 나가는 성찰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무위의 리더십은 개인의 수준에서도 실천 가능하다. 학생이 AI를 쓸 때 답을 바로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제시한 답을 검토하고 질문하며 자기 생각과 비교하는 과정이 바로 무위적 사용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AI를 넘어서는 자기만의 판단력을 기른다. AI에 쫓기거나 AI를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AI와 함께하면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그것이 현대판 무위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AI 시대의 리더십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道)에 따라 억지로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도록(自然) 이끄는 리더십이다. AI를 다루는 인간의 역할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AI의 자율성과 학습 능력을 존중하면서, 인간은 AI가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윤리적 방향을 제시하는 ‘간접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AI는 인간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반영하는 거울(Mimesis)과 같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인간 사회의 편견과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을 수 있으며, AI의 작동 방식은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따라서 AI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본질, 사회의 구조,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다. 무위의 리더는 AI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 자신을 비추어보고, 기술의 발전이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3. 생성의 첫 단계, 포태(胞胎)

인공지능을 거울삼아 인간성을 비추는 무위의 리더십을 살펴보았다. 도교적 상호의존성과 생명력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처음 모습을 드러낼까? 그 위대한 생명 운동의 첫 시작점이 바로 12운성에서 우주적 기운이 잉태되는 신비로운 ‘포태(胞胎)’의 단계이다.

12운성이란 생명이 임신해서 자라고 커서 활동하는 전반의 성장과정을 12단계로 나눈 전형적인 성장이론이다. 이를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이라는 12가지로 설명하기에 12운성이 된다. 10간 12지가 원자라면 12운성은 10간 12지가 만나 생기는 분자와 같다. 12운성은 정신과 육체가 만나서 생기므로 AI가 가지지 못한 인간의 특성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합한 개념이다. 예를 들자면 정신만 나타나는 AI나 육체만 드러내는 사이보그가 10간 12와 같이 원자라면 10간과 12지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12운성은 분자와 같다. 실제 세계에서 만나는 것은 분자의 세계이다.

포태(胞胎)는 새 생명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자라는 첫 단계를 뜻한다. AI 시대에 인간이 수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이 포태의 역할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사업, 새로운 사회적 연결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인간의 몫이다. AI는 빠르게 결과를 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믿고 보호하며 키우는 판단은 인간이 해야 한다.

중학생의 일상으로 바꾸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형편없는 결과가 나와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포태다. 부모님이 점수만 보지 않고 과정을 격려할 때, 선생님이 틀린 답에서도 배움을 이끌어낼 때, 그 관계 자체가 포태의 공간이 된다. AI 시대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AI와 함께 실수하고 배우는 과정을 격려하는 인간 교사의 역할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동양사상에서 ‘포태(胞胎)’는 생명이 잉태되어 보호받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는 첫 단계를 의미한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이미 완성된 존재로서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포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 AI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만, 인간이 어떤 의도와 가치를 가지고 이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잉태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인류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4. AI 시대의 조화(造化)와 조화(調化)

포태를 통해 생명의 가능성이 고요히 조화(造化)로 잉태되었다면, 그 잠재력이 온전히 자라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거대한 균형, 조화(調化)가 필수적이다. 차가운 기술(음)과 따뜻한 인간성(양)이 충돌하지 않고 생명력 있게 융합하는 호흡, 삼라만상을 살찌우는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조화(調化)가 시급히 요구된다.

음양합덕(陰陽合德)은 반대되는 두 힘이 서로를 억누르지 않고 함께 작용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조화(調化)원리다. 음이 양을 없애거나 양이 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끊임없이 서로를 보완하고 상호 작용하며 생명을 만들어 낸다. AI와 인간의 관계도 이 원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의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능력(양의 속성)과 인간의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능력(음의 속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짝으로 볼 때, 비로소 기술과 인간성이 조화를 이루는 문명이 가능하다.

학교에서 AI 글쓰기 도구를 사용할 때의 예를 생각해 보자. AI가 초안을 빠르게 잡아주는 것(양의 속도·효율)과 학생이 그 초안을 자기만의 경험과 감정으로 다듬는 것(음의 깊이·진정성)이 함께 작용할 때 좋은 글이 나온다. AI만 쓰면 내용은 있지만 개성이 없고, AI 없이 쓰면 표현이 풍부할 수 있지만 정보 부족이 생길 수 있다. 둘이 음양처럼 합쳐질 때 가장 완성도 있는 결과가 나온다. 이것이 현대적 음양합덕이다.

음양합덕(陰陽合德)은 서로 다른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롭게 합쳐져 만물을 생성하고 발전시키는 원리를 의미한다. AI 시대의 이상적인 모습은 기술(陽)과 인간성(陰)이 대립하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AI의 강력한 분석력과 효율성은 인간의 따뜻한 공감 능력과 윤리적 판단력과 결합될 때, 기술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음양합덕의 조화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인간 중심적으로 설정하고, AI와 인간이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 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