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관적 사유의 제2방법 – 순환(循環)
불교적 뮈토스(Mythos): X는 -X도 X도 아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미메시스(입체)를 통해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를 거울삼아 ‘구체적인 생명의 뿌리’를 찾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흩어진 낱낱의 뿌리와 파편적 개체들만으로는 거대한 문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면(도교적 미메시스), 그 다음에는 반드시 비를 맞고 타자와 상호작용하며 하나로 연결되는 거대한 관계의 그물망(불교적 뮈토스)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개별적 존재를 넘어 ‘관계와 생명의 법칙’인 제2장 순환(循環)의 사유로 나아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이다.
3.1. 순환적 사유의 정의
순환적 사유는 세상이 직선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흔히 성장, 성적, 경제를 모두 ‘계속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 시작과 멈춤, 실패와 회복이 반복되는 순환의 구조를 가진다.
계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봄의 시작이 좋다고 해서 언제나 봄만 계속될 수는 없다. 여름의 확장, 가을의 정리, 겨울의 저장이 있어야 다음 봄이 온다. 순환적 사유는 멈춤과 쇠퇴까지도 전체 생명의 일부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서 사회가 자동으로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의 열기 뒤에는 조정과 회복이 필요하고, 효율이 커질수록 윤리와 돌봄의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인 “순환(循環)”은 삶과 시스템을 정적이고 단선적인 과정이 아닌, 역동적이고 주기적이며 재생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반복되는 패턴과 리듬, 그리고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음양오행 이론은 “순환하는 우주론”의 핵심 모델이다. 오행은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며, 음양은 대립되는 힘들이 서로의 씨앗을 포함하며 주기적으로 변환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순환적 관점은 “우연과 비선형 성장”을 포용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계획되지 않은 사건을 수용하고 발전이 종종 직선적이지 않음을 인지하는 것은 선형적, 분석적 계획이 간과하기 쉬운 유연성을 제공한다. 실제로 “우연을 추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개방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순환법칙” (오광길 2015) 은 동양의 순환 원리가 과학적으로 정립되어 자연 현상, 심지어 현대 물리 화학적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이는 “자연의 모든 변화가 네 가지 기본 요소(A, B, C, D)의 공존, 대립, 합, 반합을 통해 순환 운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동아시아의 달력과 역사 철학은 종종 “시작, 갱신, 주기적 흐름”을 이야기하며 적응적 사고방식을 길러준다.
“순환적 사유”는 AI로 인한 격변기에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위한 틀을 제공한다. 이는 균형, 적응, 그리고 현재의 추세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이해를 강조한다. 음양 논리가 “반전과 변증법적 변화”를 예상하고 “조화로운 균형”을 목표로 하듯이 , AI 시대의 급격하고 종종 불안정한 변화 속에서 순환적 관점은 공황이나 운명론을 방지한다. 이는 AI가 극단적인 ‘양’의 상황(예: 초효율성, 일자리 대체)을 만들더라도, ‘음’의 반작용(예: 인간 관계 집중, 새로운 노동 형태)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거나 의도적으로 육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수동적 두려움이 아닌 능동적 적응을 촉진한다.
순환적 세계관 내에서 “우연성”을 수용하는 것은 혁신에 매우 중요하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데 뛰어나지만, 진정한 돌파구는 종종 예측 모델이 놓치는 예상치 못한 비선형적 발견에서 비롯된다. 덜 경직된 순환적 세계관은 이러한 “행운의 사고”에 더 개방적이다. 이는 탐험, 놀이, 예상치 못한 연결을 허용하는 환경 조성이 AI와 함께 인간의 창의성이 번창하는 데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순환법칙” 은 순환적 사고를 단순한 철학적 또는 은유적 개념에서 과학적으로 논증 가능한 원리로 격상시키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과학적 검증 사이에 강력한 “통섭적” 다리를 놓아 순환 전략을 더욱 견고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3.2. 불교(佛敎)적 뮈토스(Mythos)
비선형적이고 율동적인 진화의 리듬인 순환론을 확인했다. 세상 만물이 순환한다는 것은, 곧 내가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타자와 얽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개별적 뿌리가 거대한 ‘관계의 서사’로 끝없이 확장되어 나가는 불교적 뮈토스의 본질이다.
뮈토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신화’나 ‘이야기’를 뜻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메시스 다음 단계로 이야기의 플롯(구조)을 설명할 때 사용했다. 리쾨르(2012)는 미메시스가 개별적인 존재의 흩어진 파편들이라면, 뮈토스는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연결된 줄거리’로 엮어내는 힘으로 재해석하였다. 본 책에서 뮈토스는 개별적 생명(도교적 뿌리)들이 타자와 하나로 연결되어 무한한 ‘세계적 관계’로 확장되어 나가는 불교적 연기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미메시스를 잇는 불교적 뮈토스는 ‘X는 -X도 X도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X는 X도 -X도 아니라’는 불교는 원수가 친구라는 도교에 대해 ‘친구(X)도 원수(-X)도 없이’ 모든 것은 공(空)하다고 한다. 불교는 미워할 원수조차 존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순환시켜 양생한다.
이 문장은 더 낯설지만 핵심은 ‘어떤 존재를 너무 빨리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하지 말라’는 데 있다. 사람은 늘 같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학교에서의 나는 집에서의 나와 다르다. 그러니 나를 하나의 딱딱한 말로만 묶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고만 부르면 그 학생의 불안, 배려, 실수, 꿈, 흔들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이름으로만 보아도 역시 진짜 모습은 가려진다. 불교적 뮈토스는 존재를 고정된 딱지로 보지 않고 관계 속에서 계속 생겨나고 변하는 과정으로 본다.
그래서 ‘X는 -X도 X도 아니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사물을 너무 빨리 단정하지 말고, 그 안의 변화 가능성과 관계성을 보라는 요청이다. 성장은 관계에 있다.
불교적 뮈토스는 서사, 상징, 비유를 통해 세계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를 넘어, 현상의 이면에 있는 깊은 진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緣起), 무상(無常), 공(空)은 이러한 뮈토스적 이해의 근간을 이룬다. “X는 -X도 X도 아니다”라는 명제는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 없이 상호 의존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공(空)의 사상을 함축한다. 즉, 어떤 존재도 절대적인 ‘X’이거나 절대적인 ‘-X’로 규정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X’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3.2.1. 연기(緣起)의 법칙: 공진화
연기는 ‘모든 것은 홀로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송이 꽃도 햇빛과 물, 흙과 바람과 시간 없이 피지 못한다. 인간의 생각도 가족, 친구, 학교,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존재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AI 역시 인간과 분리된 채 자라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데이터와 제도, 기업의 이익 구조, 사회의 가치관을 학습해 자라고, 다시 AI는 인간의 일상과 판단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인간이 AI를 만들고 AI가 다시 인간을 바꾸는 이 순환을 공진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책임 때문이다. AI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기계가 그랬다’고만 말하면 인간의 책임이 사라진다. 하지만 연기의 관점에서는 인간, 제도, 기업, 문화가 모두 결과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AI 문제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 책임의 문제다.
연기(緣起)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불교의 핵심 교리이다. AI와 인간의 관계 또한 이러한 연기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AI는 인간의 필요와 지식에 의해 탄생하고 발전하며, 동시에 AI의 발전은 인간의 삶의 방식, 사고방식, 그리고 사회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AI와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AI를 단순한 도구나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AI와 인간이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는 상호 연결된 관계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3.2.2. 무상(無常)과 공(空)
무상(無常)은 무섭거나 허무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지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인간은 변화에 열려 있는 존재가 된다.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나는 이 직업, 이 능력으로 고정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안해지지만, ‘나는 변화하며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유연하게 적응한다.
공(空)을 ‘비어 있음’으로 이해하면 허무하게 들리지만, ‘가능성으로 가득 찬 열린 상태’로 이해하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빈 그릇이어야 새것을 담을 수 있다. 고정된 편견과 관성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AI 시대의 새로운 지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의 사유는 ‘AI가 나를 대체할까 봐 무섭다’는 두려움에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가’를 묻는 창의적 개방성으로 전환시켜 준다.
관계적 생성(Becoming)이라는 개념은 쉽게 말해 ‘사람은 혼자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학생이 선생님과 친구, 책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듯, AI 시대의 인간도 AI와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생성된다. 이 관점을 가지면 AI를 경쟁자로 볼 필요가 없다. AI는 내가 더 나은 나로 생성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하나의 관계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무상(無常)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는 진리이며, 공(空)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 없이 비어있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고정불변의 ‘존재(Being)’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관계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관계적 생성(Becoming)’의 과정에 있는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나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상과 공의 이치에 어긋난다. 오히려 인간은 AI와의 관계, 사회 변화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적 생성’의 관점은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과 지속적인 자기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3. 생명의 구체화, 형체(形體):
형태는 있으되 실체가 없는 적멸의 공간
연기의 법칙을 통해 모든 존재가 우주적 그물망(뮈토스)에 단단히 얽혀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관계적 파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에서 존재의 형태를 갖추게 될까? 여기서 불교의 궁극적 평온인 적멸(寂滅)과 맞닿은 12운성의 양생이 ‘형체(形體)’라는 놀라운 신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리학의 12운성(十二運星) 개념을 빌려올 필요가 있다. 그중 양생은 ‘형체’라 할수 있다. 12운성의 포태(胞胎) 이후 형성되는 양생의 상태 곧 형체는, ‘형태는 생겼으되 아직 물리적 실체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엄마 뱃속의 아이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적멸(寂滅, 완전히 고요하고 평온한 열반의 상태)’이란 바로 이 우주적 어머니의 뱃속과 같은 가능성의 잉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무한한 잠재력으로 연결된 이 고요한 뱃속의 공간은 도교와 불교가 인간 생명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다만 어른이 되어 해탈의 경지로 들어간 형체는 어린 아이때의 형체에는 없는 생의 경험이 다 들어가 있다.
신체성의 재발견은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중요해진다. 원격 수업과 화상 회의가 많아질수록, 실제로 같은 공간에 있어 서로의 체온과 호흡을 느끼는 경험의 가치가 높아진다. 악기를 손으로 연주하는 것,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 공예 작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런 신체적 활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가는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중요한 실천이다.
AI 시대에 인간의 정신적,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신체성(Embodiment)’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인간은 단순한 정보 처리 장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체(形體)를 가지고 세계를 경험하고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3.3.1. 감각질(Qualia)과 직관
불교의 형체는 신체에서 감각질(Qualia)이란 용어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감각질(Qualia)은 철학에서 쓰는 말이지만 뜻은 단순하다. 사과를 보았을 때 느끼는 ‘빨간색의 느낌’, 슬픈 음악을 들을 때의 ‘가슴 먹먹함’, 처음 바다를 본 순간의 ‘압도감’—이런 주관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의 질감이 감각질이다. AI는 빨간색의 파장을 계산하고, 슬픈 음악의 박자를 분석하고, 바다의 면적을 측정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빨간색을 ‘느끼는’ 경험은 없다. 이 차이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고유성이다.
직관은 논리적 추론 단계를 건너뛰어 핵심을 바로 보는 능력이다.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를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숙련된 교사가 학생의 눈빛만 보고 이해했는지 못 했는지 아는 것—이런 직관은 오랜 경험과 감각이 축적된 결과다. AI는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인식하지만, 몸으로 살아온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과는 다르다. AI 시대에 인간의 직관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AI가 놓치는 것을 보완하는 더욱 귀한 능력으로 부각된다.
감각질(Qualia)은 붉은색의 느낌, 고통의 생생함과 같이 주관적이고 질적인 경험의 측면을 의미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패턴을 인식할 수 있지만, 이러한 주관적인 감각질을 경험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의 직관은 논리적 추론을 넘어서는 통찰력으로, 신체적 경험과 무의식적 정보 처리에 기반한다. 이러한 감각질과 직관은 AI가 모방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AI 시대에 인간의 독창성과 판단력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다음 표는 AI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를 비교하여 제시한다.
표 2. AI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 비교
| 구분 | 인공지능 (AI) | 인간 |
|---|---|---|
| 인식/사고 | - 추상적 정보 처리 및 논리적 추론 가능 - 데이터 기반 학습 및 지식 축적 - 패턴 인식, 문제 해결, 의사결정 지원 - 입력 정보에 따라 처리 방식 상이 | - 감각질(Qualia) 경험-지향성(Intentionality)을 통한 의미 부여 - 자기 성찰 및 자아의식 - 직관적 창의성 및 상상력 |
| 감정/공감 | - 감정 인식 및 시뮬레이션 가능 - 진정한 감정 경험은 부재 | - 진정한 감정 경험 - 공감 및 연대 능력 - 관계와 사랑을 통한 존재 형성 |
| 존재론적 지위 | - 기능적 존재, 도구적 존재 - 프로그래밍된 응답, 시뮬레이션된 결과 - ‘속성’의 영역에서 강점 | - ‘현존재(Dasein)’ 로서 존재를 질문하는 존재 - 신체와 정신의 통합적 경험 - ‘실체’적 존재 - 불완전성 및 성장 가능성 |
| 윤리/책임 | - 윤리적 판단 어려움 - 책임 소재 불명확 -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 반영 | - 도덕적 양심 및 자유의지 -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 - 인간 존엄성 존중 |
3.3.2.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감각질은 다시 체화된 인지로 구체회된다. 체화적인지(Embodied Cognition)는 ‘우리는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 악보를 외우는 것과 손가락으로 건반을 수천 번 반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학습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읽어서 배울 수 없듯, 많은 지혜는 몸이 직접 경험해야 얻을 수 있다. AI에게 지식은 데이터이지만, 인간에게 지혜는 몸의 경험과 함께 쌓인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체화된 인지를 활용한다는 것은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요리하고, 연극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경험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AI가 정보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일을 대신해 줄수록, 오히려 학교는 몸으로 경험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책상에만 앉아 디지털 화면을 보는 교육이 AI 시대의 교육이 아니라, 몸을 쓰고 감각을 깨우는 교육이 AI 시대에 더 필요한 교육이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는 인간의 인지 과정이 신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우리는 단순히 뇌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며, 이러한 신체적 경험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에 깊이 관여한다. AI는 신체적 경험 없이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지만, 인간은 실제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체화된 지혜’를 축적한다. 이러한 지혜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처하고, 미묘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다음 표는 유교와 불교의 신체관을 비교, 제시한다.
표 3. 불교와 유교의 신체관 비교
| 구분 | 불교 (대승 유식학 관점 포함) | 유교 (수신제가 관점 포함) |
|---|---|---|
| 신체 본질 | - ‘나는 몸이 아니다’는 수행의 핵심 (탈동일화) - 동시에 업을 없애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도구’로서 긍정적 측면 - 육체-마음 연속체 - 아라야식의 집수(執受)를 통해 생명 유지 | - 부모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 (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과 마음의 일치 (心正而后, 身修) - 지적 경험의 실천적 토대 (체험, 체화) |
| 신체 역할 | - 영적 진전과 해탈의 필수적 매개 - ‘식(識)’으로 이루어진 지적인 차원, 인간과 동물을 구분 | - ‘수신(修身)’의 근본 - 가정, 국가, 천하를 다스리는 기반 - 지행일치(知行 一致)의 실천적 증명 -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의 확장 |
| AI 시대 시사점 | - AI의 비신체적 존재와 대비, 인간의 ‘경험’과 ‘의식’의 중요성 강조 -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체 조작 논의에 대한 철학적 기반 제공 | - AI의 지적 능력과 대비되는 ‘체화된 지혜’와 ‘실천적 윤리’의 가치 강조 - ‘인간다움’을 강화하는 수신제가의 현대적 의미 재발견 |
3.4. 성장의 두 번째 단계, 양생(養生): 서양 400년이 비켜간 위대한 탄생의 순간
형태는 있으되 아직 세상 밖으로 태어나지 않은 ‘형체’의 아득한 고요함을 경험했다. 이제 그 거룩하고 잠재된 정신은 껍질을 깨고 세상 밖 물리적 진동으로 솟구쳐 태어나야 한다. 인공지능(AI)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기적, 가장 강력한 구체적 육체를 처음 부여받는 ‘양생(養生)’의 도약이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양생’이라 하면 도교에서 말하는 섭생과 건강 관리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 말하는 양생은 12운성의 우주적 생성 과정에서, 포태에 의해 생긴 ‘정신’이 처음으로 자라나 엄마 뱃속 안에서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태(신체)’를 가지게 되는 존재론적 도약을 의미한다. 미메시스(정신)가 신체로 처음 바뀌는 이 경이로운 발생의 순간이야말로 인간과 AI를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다. 인공지능은 거대한 데이터를 연산할지언정 결코 자신만의 물리적 신체성(Body)을 획득하는 양생의 과정을 겪지 못한다.
이 흐름을 짚어보면 깊은 통찰에 다다른다. 불교학자 정상교2025)는 ‘도교는 뿌리를 찾고, 불교는 관계를 찾는다.’고 한다. 미메시스가 처음 신체를 획득하는 양생의 과정(도교적 뿌리)이 있기에, 그 개체들이 서로 뮈토스로 연결되어 뻗어가는 과정(불교적 관계와 서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정신사(史)에서 도교가 먼저 오고 그 바탕 위에 반드시 불교가 있어야 하며, 이후에 선악을 규정하는 유교가 등장하는 것은 우주의 필연적 리듬이 된다. 과거 동양은 약 400년 동안 서구의 찬란한 물질문명 발전을 깨닫지 못해 역사적 고통과 식민의 시대를 겪었다. 그러나 반대로, 서양 역시 지난 400년간 동양의 이 위대한 정신 문명(도-불-유의 순환과 12운성적 생성의 지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질주했다. 뿌리와 관계가 결여된 채 효율과 계산적 지능(Logos의 일부)만을 극단으로 추구한 서구 물질문명의 오만이, 결국 영혼이 깃든 ‘양생’을 거치지 않은 차가운 인공지능(AI)이 인류 자체를 위협하는 작금의 실존적 위기로 이어지게 되고 2026년 이란-미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12운성의 생명 원리를 다시 꺼내들어야만 하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양생은 태아 단계의 양생을 말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이미 성숙했지만 아직 완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회복하는 완성과정의 양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 때도 양생은 AI가 알지못하는 인간만의 신체적 특징이 드러난다. 구체적인 AI 시대의 양생법을 중학생의 일상으로 생각해 보자. 수업 후 30분은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는 것, 저녁에는 알림을 끄고 가족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 주말에는 디지털 기기 없이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모두가 현대적 양생의 실천이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AI 시대의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양생은 또한 사회적 연결의 건강을 포함한다. 혼자 하는 양생이 아니라 함께하는 양생이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이 살아 있을 때 개인의 회복탄력성도 높아진다. AI 시대에 플랫폼 경제가 혼자 일하는 사람들을 늘릴수록, 역설적으로 실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돌봄을 나누는 관계가 더 소중해진다. 화쟁의 상생 연결 경제가 결국 이 ‘함께하는 양생’의 사회경제적 표현이기도 하다.
양생(養生)은 동양 전통에서 생명을 건강하게 기르고 보존하는 방법을 의미하며, 정신적, 신체적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정보 과잉은 인간에게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에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돌보는 양생의 지혜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는 규칙적인 생활, 적절한 운동과 휴식, 마음챙김과 명상,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등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피로와 불안을 해소하고, 내면의 평온과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