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맺는 말
화폐는 인간 자유의 보고이자 또한 자유의 멍에로 순환 이외에는 풀리지 않는 난해한 존재이다.597) 그러나 현대는 자본주의시대로 재물을 가장 존중하는 시대라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학은 은폐시키는 시대이다. 신고전파를 벗어난 경제학에는 사회의 작용기제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은 순환의 비밀이 명확히 밝혀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이라고 간주되고 배우는 수요와 공급곡선이라는 매우 편중된 신고전파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으로는 화폐 순환의 비밀과 유불선과의 관련이 은폐된다.
자유에의 획득을 시작으로 출발한 근대는 오늘날 자유의 의미가 퇴색하고 경제동기가 실종되어 경제윤리 실종, 경제이념 붕괴 나아가 피부에까지 느껴지는 심각한 환경위기에까지 이르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환경문제는 경제문제가 모두 중층적으로 집약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세계를 양분한 경제 이념의 문제도 이제 환경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인간의 궁극적 경제 동기는 자유에 있다. 그러나 자유는 순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자유는 건전한 사회계약에 기반하고 사회계약은 공동체의 공리에 공동체의 공리는 공동체의 존재자체에 기반한다. 따라서 자유를 위해서는 공도에를 추구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와 공동체에 배타적인 자유지상주의는 정의, 공익, 공동체라는 경제의 세 가지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여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현재 공동체를 상실한 인류는 자유지상주의의 자유가 상품화되어 인간은 경제동기를 상실하고 있다.
대순사상에서는 유불선을 순환시켜 오늘날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대순사상에서는 공산주의와 같이 공동체의 형성으로 만족하거나 자본주의와 같이 자유를 위한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순환지리에 따라 공동체를 형성한 다음 다시 자유에의 길을 갈 것을 요청한다. 러셀역설처럼 만물은 순환하므로 결코 어느 하나에 정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순환을 거치고 성숙된 자유야 말로 인간의 궁극적 경제동기가 될 수 있다. 실제 대순사상에서는 예의와 녹을 둘 다 중시하며598) 성웅을 겸하여 군사위가 한 갈래가 되어야 한다599)하여 경제와 윤리 두 가지를 종합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서 성(聖)과 예(禮)를 윤리 웅(雄)과 록(綠)을 경제라 할 수 있다.
경제와 윤리를 통합하는 대순 사상은 가장 뛰어난 환경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순환적 경제관을 제시한다. 대순 사상은 우선 도박자본주의에 빠져 오늘날 자유를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현대인을 음양합덕이라는 도교적 진리로 도박자본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도박자본주의를 벗어난 사람은 불교적인 경제윤리를 생각하게 되고 다음은 유교적인 경제이념, 마침내 서교적인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 대순 사상은 순환적 경제관으로 경제동기에 대해서는 음양합덕에 기반한 대대적 자유지상주의 재부관, 경제윤리에 대해서는 신인조화에 기반한 회귀적 사회계약주의 분배관, 경제이념에 대해서는 해원상생에 기반한 중화적 공리주의 노동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유행적 공동체주의 재화관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실제로 대순사상이 기반하고 있는 한국은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 가운데서도 불가능할 것이라던 일본 경제를 추월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류문화가 세계적 붐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18세기까지도 중국에 이은 실제적인 세계 2위권의 경제력을 유지했다고 한다.600) 세계는 과연 한국 경제와 문화의 비밀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아시아 최강이던 일본 경제와 문화를 추월한 한국경제와 문화의 비밀은 과거 아시아 경제와 문화의 성장을 분석하던 유교자본주의나 보살자본주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리만사태 이후 인류의 경제문제는 갈수록 악화일로에 있지만 유독 한국경제는 세계적 불황 가운데 호황을 가고 있다. 한국의 유별난 경제 발전은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하나의 새로운 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순의 순환론적인 사상처럼 한국의 사상은 유불선 삼합의 순환론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601) 한국 사상에서 유독 순환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최근 동북공정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고유한 기마문화에서 한 답을 찾을 수 있다.602)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함께 부각된 한국의 기마문화는 한국사상이 가지고 있는 순환적인 사상의 환경적 기원을 설명해 준다.603) 역사상 달리는 말에서 움직이는 호랑이를 잡으며 사냥한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의 기마문화는 몽고 원나라 기마문화의 기반이 되었다고도 한다.
실제 계속 순환하고 있는 우주는 달리는 말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것과 같아 서양과 같은 정태적인 환원주의는 적용되지 않고 상대성이론과 같이 순환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한국은 비단 대순 사상 뿐 아니라 오행의 나라라고 불리울 만큼 순환과학인 오행과 삼재로 가득 찬 나라이다.604) 순환은 서양의 과정철학(화이트헤드, 들뢰즈 등)과 심층해석학(정신분석학, 분석심리학 등)이 해결하지 못하는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말과 함께 순환을 상징하는 새 또한 우리나라의 고유한 지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605)
순환이론은 또한 공동체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순환을 강조한 한국은 가장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유교문화권인 나라가 되었다. 최근 한국의 자살율이 높아진 것은 달리는 말에서 빨리 결론을 내리는 기질이 순환의 상실로 가속화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해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가족의 복원이 매우 시급하다. 인간 정신 또한 순환이 마비될 때 정신질환이 나타난다. 인존사상에 따라 선령신을 중시하는 대순사상은 가족을 경제의 기본으로 삼고 가족을 통하여 모든 공동체 순환의 기초를 삼는다.606)
가족을 중시하는 대순의 순환적 인존사상에서는 특히 한국 가정 경제의 근원인 시루와 솥을 주목한다.607) 한국은 원효의 화쟁사상으로부터 만물을 순환적으로 통합하는 시루와 솥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608) 대순의 인존사상에서 인간은 순환의 중심이 되어 만물을 시루와 같이 숙성한다.609) 시루와 같이 만물을 숙성시킬 수 있는 존재는 정신과 육체라는 음양으로 자기언급의 피드백(feedback, 되먹임 고리)을 할 수 있는 인간 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을 통한 순환의 경제학을 시루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가운데서 만물을 순환시키는 시루경제학은 서양철학의 순환적 철학인 과정철학과 심층해석학(정신분석학, 분석심리학 등)을 능가하는 동양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대순사상을 실천하는 대순진리회는 의료, 사회복지, 장학사업 등에서 순환적 경제관을 실천하고 있다.
이 글은 대순사상의 새로운 순환적 경제관을 연구하는데 있어 기존의 경제사상을 순환이라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요약하였다. 순환적 경제관이란 유불선 각각이 부분적 순환의 경제학이라 한다면 유불선을 통합하는 경제관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은 순환주의라는 또 하나의 과학원리이고 순환적 경제관은 음양오행의 과학원리를 경제학의 분야에 적용시킨 연구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Ⅰ장에서는 기존 선행연구를 개인-공동체, 경제-윤리라는 틀 속에서 자유지상주의, 사회계약주의, 공리주의, 공동체주의라는 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Ⅱ장에서는 기존 경제 사상은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유불선과 서교(西敎)와도 서로 공통되는 부분을 가지고 있어 도교와 자유지상주의, 불교와 사회계약주의, 유교와 공리주의, 서교와 공동체주의를 서로 비교하여 공통되는 특성을 살펴보았다.
Ⅲ장에서는 대순의 순환적 경제사상과 Ⅱ장에서 나타난 유불선과 서교의 순환론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았다. 비교를 통해 저축-생산-유통-분배라는 경제 순환과정에서 대순의 순환적 경제관은 기존의 유불선과 서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새롭게 해결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Ⅲ장에서 밝혀진 대순의 순환적 경제관의 특성들이 Ⅰ장에서 도출된 경제동기의 위기, 경제윤리의 붕괴, 경제이념의 혼동, 환경위기라는 현대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됨을 밝혔다.
Ⅴ장 결론에서는 대순의 순환적 경제관은 기존 과학의 환원주의방법론에 대비되는 새로운 대순 사상의 순환적인 방법론을 적용한 사례이며 향후 다양한 과학에 대순의 순환적 방법론을 적용시켰을 때 순환적 경제관과 같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음을 밝혔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한다. 사회 전체의 경제윤리는 개인 경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 글은 순환론적 경제관이 각 개인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호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과 대순 사상에서의 실천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지 않고 다음 과제로 전하고자 한다. 순환적 경제학인 시루경제학은 한국적 경제학이고 현대 한국 경제학이 풀지 못하는 개인의 경제문제와 DMZ로 양분된 인류의 마지막 경제이념분단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이 될 수 있다. 610)모든 것이 화폐화된 오늘날 화폐가 순환하면 인간과 만물의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학문의 방법론으로서 패러다임보다 더 강력한 자취를 남기는 프레임은 패러다임과 같이 개별적인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살아남는다고 한다.611) 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이 환원주의적 방법론으로 개발된 이론들과 상호 일대일 대응되는데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잡계적 과학으로 남겨진 동양 과학의 순환론으로 세계를 프랙탈(fractal, 相同性)적으로 해석, 변화시키는 대순사상의 순환적 프레임은 현대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환원주의적 과학 방법론의 사각(死角)을 메꾸어 줄 이론으로 더욱 각광받는 이론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을 살펴본 것은 유불선과 서교의 경제사상보다 뛰어난 사상이라거나 대순사상만이 순환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자살로 몰고 가고 있는 자기 해석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있어 순환적 경제론은 새로운 치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과거 어느 황제도 누려 보지 못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아무도 과거 황제보다 자신을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은 없다. 나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랭클의 말처럼 결국 사람의 행복과 생존은 자기해석, 의미발견에 달려있고 자기 해석의 프레임이 무엇이냐가 행복을 좌우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제관은 자유지상주의, 공리주의, 공동체주의, 사회계약주의의 범주를 벗어 나지 못하고 상처받고 있을 것이다. 순환은 치료의 프레임이다. 과거 우리의 시루가 피라미드처럼 쉰 음식을 찌면 쉰 음식을 다시 정상으로 치료해주었듯이 순환은 상처받은 실존에게 용기를 주는 자기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굿윌헌팅”의 주인공을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순환적 논리로 치료한 의사처럼 자신의 소유와 능력으로만 인정받는 상처받은 현대인에게는 상처를 순환시켜 줄 시루가 필요하다.612) 대순 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은 기존의 순환적 철학치료와 문학치료에 복잡계적인 순환의 원리를 알려주어 만사가 창발하는 때와 자신과 타인의 숨은 정체성을 발견해주어 영혼을 과학적으로 치유한다.
세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첨단화되자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상처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과거 인간의 사고의 틀을 정해왔던 유불선과 서교는 오늘날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은 항상 부활하듯이 복잡계 과학과 정신분석학의 출현과 더불어 유불선과 서교는 각각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원래 합쳐야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뉴튼 이론을 포함했듯이 전체로 본 유불선과 서교는 복잡계 과학과 경제사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유불선과 서교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과학적 자기해석의 길로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직선인줄만 알았던 길이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은 미운 오리새끼가 다만 백조였음을 알려주는 경제관이다.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 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 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지나간 임진란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에 불과하고, 진묵(震默)이 당하였으면 석 달이 넘지 않고, 송 구봉(宋龜峰)이 맡았으면 여덟 달에 평란하였으리라. 이것은 다만 선ㆍ불ㆍ유의 법술이 다른 까닭이니라. 옛적에는 판이 좁 고 일이 간단하므로 한 가지만 써도 능히 광란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되 오늘날은 동서가 교 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 잡지 못하리라. (『전경』예시1장7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