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는 “귀신과 관계되는 일은 본디 제이의적인 것이다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귀신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굳이 이해하려들 필요가 없고, 우선 일상의 긴요 한 곳에 나아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76) 귀신론은 몸으로 ‘사(事)’를 익히는 소학 단계의 담론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理)’를 궁구하는 대학단계의 담론이다. 송명이학을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대별하고 양자를 대립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은 양자는 공부론적으로는 달라도 본체론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본체론으로 말하면 ‘이(理)의 체(體)’가 무(無)이고 허(虛)가 된다.77)
결국 대순사상의 지계관은 음양오행에서 음양오행의 중심을 의미하는 ‘토’의 중요성으로 나타난다.78). 노이무공과 천지성공은 토로서의 구천의 역할을 표현하는 다른 이론이다. 인신강세 이전을 노이무공으로 인신강세 이후를 천지성공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동학의 지관은 땅의 생명사상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해되기도 한다. 동학이 생명사상으로 재조명되면서 땅에 대한 동학의 강조도 재조명된다. 오늘날 한국의 유기농 농법도 동학사상의 땅 중심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동학사상에서 땅에 대한 하늘만큼의 중요성은 강조되지 않는다. 여기서 동학은 대순사상의 『전경』에 따라 초기동학까지만 언급하므로 초기동학만 간주하기로 한다. 『전경』에 동학으로 주로 언급되는 것은 동학가사와 수운가사다.
천지성공은 천지가 역할을 분담해서 일을 이룬다는 개념으로 동학사상과 달리 신명을 강조하는 대순사상에 나타나는 용어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지관에서도 땅은 ‘천지’라는 용어와 같이 표면적으로는 하늘과 동격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천원지방은 하늘이 둥글다는 지동설로 밝혀진 천동설의 잘못된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지위원 지도지위방(天道之謂圓 地道之謂方)”의 준말로 시간을 나타내는 “주(宙)”의 1차원적 성격, 공간을 나타내는 “우(宇)”의 2차원적 성격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주역의 하늘은 “건”이라 하는데 이 “마를 건(乾)”은 “새 을(乙)” 작용을 하는 시간의 마른 속성을 나타낸다.
대순사상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을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바꾸는 천지공사를 통해 전통적인 지관을 실체화한다. 이에 땅도 따라서 천문과 같이 재정렬된다. 대순사상은 삼신산79)에서 출발하고 부모산인 회문산과 모악산이 정비되고 산왕과 해왕의 혈자리가 정렬된다.80) 천지 음양합덕의 결과인 지상천국은 삼계가 상관적으로 작용하는 대순사상의 지계관을 대표하는 용어이다.
불연기연의 동학적 지인관계가 포태된 이후 양생되는 것은 삼신산과 부모산을 다시 비정한 대순사상의 지계공사의 재활성화에 기인한 바 크다. 대순사상에서 삼계착란은 지인관계에서 지기불통(地氣不通)에 따른 세계 전쟁과 물질문명의 인류교만으로 나타난다. 대순사상에서 세계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된 지기(地氣)의 부조화는 지기통일공사로 통일된다. 마테오 리치의 동서양 신명 교류 개통 이후 지하 문명신의 천상교류와 인세에 대한 시혜로 근대 문명은 개척되었다. 그러나 근대 문명은 인류의 교만과 물질문명의 치우침으로 천하진멸 위기로 귀결되었다.81) 이에 지계공사로 물질문명에 대한 도술문명으로 지상신선의 지인관계를 대순사상은 구축하고자 한다.
최수운은 일본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원수이며, 따라서 멸해야 하는 복수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82) 반면, 증산은 오히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고 무고한 인명이 많이 살해되었고, 오히려 조선에게 모 심는 법을 가르침으로 인해 원한을 맺었으므로 이를 풀어주기 위해서83) 조선을 일본에 맡기는 공사를 보았다. 또한 증산은 일본에 대적하지 말고 순종할 것을 말하면서,84) 앞으로 일본은 패망하여 품삯도 못 받고 돌아갈 것이라고85) 예언하였다. 기존의 많은 연구에서 증산이 서양 세력에서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에게 잠시 조선을 맡기는 공사를 본 것은 증산이 일시적으로 일제의 동아시아 맹주론을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고 보기도 한다.86)
인간관의 자생적 근대성 비교
인내천(人乃天)과 신인조화(神人調化)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은 초기동학에서 수운이 한 표현은 아니지만 내유신령, 외유기화라는 동학사상의 천인·지인 관계 중 초월적 측면을 배제하고 내재적 측면을 극대화하여 서구적 근대성에 부합되도록 한 개념으로 평가받고 있다.87) 천도교 이후 수운의 사상을 해석한 천도교에서 “인내천”동학사상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문구로 사용되고 있다. “인내천(人乃天)”이 동학사상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용어로 지칭된 것은 “인내천(人乃天)”이 내포하고 있는 평등사상 때문이었다. 백정과 여자, 어린이까지도 하늘이 될 수 있다는 “인내천”은 “천자”만이 하늘이 될 수 있는 전 근대 사회에서 신명세계를 제외한 인간세계에서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는 매우 앞선 사상이었다.
“인내천”사상이 많은 호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학사상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대순사상에서는 “해원”으로 보았다. 대순사상에서 평등사상은 혁명과 같이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해원과 그에 따른 상생으로 오는 점진적인 것이었다.
또한 대순사상은 “인간이 하늘”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대순사상에서 하늘은 기존의 천지로 나뉜 하늘뿐 아니라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구천으로서의 하늘도 의미한다. 하늘의 은혜를 강조하는 대순사상에서 인간은 하늘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인신강세가 이루어진 대순사상에서 인간의 지위는 동학사상과 다른 방법으로 지위가 격상된다. 초기동학인 수운의 사상도 “오심즉여심”이었지 “인내천”은 아니었다. 대순사상은 오히려 천지의 은혜를 망각한 인간과 근대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천지를 존중할 것을 주장한다.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88)
위 예문에서 일의 시작과 끝은 천지에 있는 것이지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결국 대순사상은 인내천이 지향하는 평등 세상을 이루려면 천지에 대한 보은과 그를 위한 인간의 해원이 우선 되어야 하며 변혁이 아니라 해원이 진정한 근대성임을 보여주고 있다.89)
따라서 변혁을 위한 인내천에 대하여 대순사상이 제시하는 것은 신과 인간의 조화, 곧 신인조화다. 여기에서 조화(調化)는 조화(調和)의 조(調)와 조화(造化)의 화(化)를 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로 기존 사전에는 없는 대순사상에만 나타나는 단어이다. 조화(調化)는 조화(調和)의 조화(造化)의 장점만을 모은 결합이라 할 수 있다.90)
동학사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대순사상의 신명과 인간과의 관계는 동학사상과 대순사상 인간관의 자생적 근대성 차이에서 차이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동학사상은 근대성 문제의 원인을 각자위심이라는 인간의 문제로 보았지만 대순사상에서 근대성 문제의 원인은 천지신명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대순사상의 관점은 구천의 관점을 반영한다. 대순사상에서 인내천과 같이 인간을 하늘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교만이며 어리석음이다. 인간이 천지의 은혜를 모르거나 천지에 반하는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없다.91) 이에 대순사상은 천지의 은혜를 알게 해 준 요임금을 매우 모범적 인간의 표본으로 간주한다.
상제께서 정미년 섣달 스무사흘에 신 경수를 그의 집에서 찾으시니라.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일월무사 치만물 강산유도 수백행(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가르치고 오주(五呪)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92)
위 예문에서 요임금의 가장 큰 공헌은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를 인류에게 전해준 것, 곧 천지의 은혜를 인간이 알게 해 준데 있다고 한다. 인내천에 대해 대순사상은 오히려 인간과 신의 조화 곧 신인의도(神人依導)를 인간의 가장 큰 과제로 제시한다,93)
동학사상에서 천주와 상제는 언급되지만, 신명(神明), 신도(神道)에 대한 표현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삼재(三才)에도 적용되어 동학사상에는 신명계를 전제로 하는 삼계라는 표현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이 유교의 전헌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신도를 통하여 동학사상이 제시했던 인도의 한계를 초월한다.
대순사상은 인내천이라는 인류의 교만에 대하여 삼계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간은 하늘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구천이 묵은 하늘을 새 하늘로 바꾼다. 강증산을 신앙하는 종단 중에서도 대순사상은 ‘대순(大巡)’이라는 용어가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준말이라는 점에서 특히 삼계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사상이다.
대순사상을 삼계를 중심으로 설명한다면 상제에 의해 조화된 삼계가 인간의 원한으로 인해 삼계 착란에 이르게 되고 나아가 삼계진멸의 진경에 이르자 신성· 불·보살의 호소로 상제는 삼계 대순으로 삼계를 진단한 후 삼계공사로 삼계개벽을 이루는 일련의 과정이 삼계대순이고 이에 수반된 사상이 대순사상이 된다.
신명에 의해 운행되는 대순진리회의 삼계는 수많은 신명에 의해 운행된다. 대순사상에서 삼계가 신명에 의해 운행되는 것은 신명은 진리에 지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 광찬과 신 원일이 상제를 모시고 있던 정미년 정월 어느 날 상제께서는 그들에게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 하시면서 벽에 글을 다음과 같이 써 붙이셨도다.94)
위 예문에서 ‘진리에 지극하다’는 것은 신명의 역할과 경계에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혼백을 같이 가진 인간처럼 다양성을 구비한 대신 한 역할에만 충실할 수 없는 인간과 달리 대순사상에서 신명은 혼백 중 하나만 가진 존재이므로 한 역할에 충실할 수 있어 천지의 운행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삼계를 운행하는 신명과 인간의 조화가 새로운 천지운행에 있어 핵심이 된다.
천지의 운행 뿐 아니라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오늘날 과학기술과도 연관되어 있을 만큼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순사상의 삼계관에서 천계는 천상계, 명부가 포함되며 지계는 지하계가 포함되며 이 중 천상계와 지하계는 오늘날 과학문명의 기원이 되고 명부는 천지 성경신에 대한 인간의 보은이 평가되기도 한다.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95)
위 예문은 첫째, 천상의 신과 지하의 신이 교류함으로써 천지가 운행되고 인간계도 변화된다는 대순사상의 신인조화를 보여준다. 둘째 대순사상에서 천계는 천상의 신이 있는 천상계가 포함되고 지계는 지하신이 포함됨을 보여준다. 셋째, 천상신과 지하신의 교류가 인간계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천상과 지하의 경계가 인간계에 있었던 인물에 의해 변화될 수도 있다는 삼계의 교류를 보여준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96)
위 예문은 첫째, 천지와 인간은 상호 성장되고 성장시키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둘째 명부는 천지신명이 인간을 평가하는 곳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상호성장은 상극에 의해 지배된 인간 사물에 의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원한만 커져 버렸고 이것이 삼계 혼란의 원인임을 보여준다. 셋째 위 예문은 명부가 천계에 속하며 명부가 삼계의 일이 종합되는 곳임을 보여준다.
우주의 운행을 넘어 과학기술과 명부에서의 인간 운명에까지도 천지의 신명에 의해 결정되는 대순사상의 삼계관은 인간계의 일에 천지가 우선되며 이는 만사의 결정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97),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98)
위 두 구절에서 첫째 구절은 대순사상의 삼계관에서 천지가 일의 순서에 있어 인간에 비해 우선순위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자식이 부모보다 훌륭해졌다 해도 부모의 은혜로 인한 것이어서 부모가 우선이듯 천지와 인간과의 관계도 유사함을 보여준다. 둘째 구절은 나아가 천지보다 인간이 더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는 이미 천지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본 대순사상의 인계관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순사상의 삼계관은 최고신인 구천의 상제와 상제에 의해 조화된 천지인의 삼계로 구성된다. 대순사상에서 삼계관은 상제를 대신하여 천지가 만물을 화육하되 상제는 관감만천한다. 관망을 뜻하는 관감만천(觀鑑萬天)99)이 숨은 신과 공통되는 부분은 있으나 천지라는 매개체를 구체적으로 개입시킨다는 점이 다르다.
천지 또한 삼라만상을 화육할 때 각 부분을 맡는 무한한 신명에게 일을 맡긴다. 천지는 승강하면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천지는 음양이므로 천은 기획하고 지(地)는 시행한다.100) 따라서 건정곤순(乾定坤順)에 보이듯 천상문명은 기획하고101) 지하신은 본떠 만들어 인세에 베푼다.102) 천지는 성경신으로103) 진리에 지극하게104) 인간을 화육한다. 지극한 성경신을 통한 천지의 화육으로 생과 수명과 복록을 받은 인간은105) 천지와 같이 성경신으로 보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으로 천지와 겨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천지를 배신하고 천지신명이 없다하고 천지를 개발, 정복한다. 이에 천지 또한 사람을 죽이려고만 하는 삼계혼란의 시대가 되어106) 신성·불·보살의 호소에 의해 상제가 인세를 대순하게 되고 먼저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린 바107) 이에 동학사상이 출현한다. 비록 천명과 신교를 수운이 받았으나 수운이 유교의 한계를 넘지 못하여108) 상제가 삼계로 인간의 몸을 빌어 직접 탄강하니109) 이는 구천의 인신강세라는 대순사상 인계관의 배경이 된다.
대순사상에서 신명으로 가득한 삼계의 존재와 역할이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짐이 명확히 밝혀졌지만 동서양 또한 고대로부터 대순사상과 같이 신명으로 가득하고 인간계에 개입하는 천계, 지계를 상정해왔다. 대순사상의 삼계관은 오히려 근대 이전의 동서양 우주관과 공통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에 대순사상의 삼계관 또한 천지인과 신명계를 포함하므로 동서고금의 천계, 지계, 인계에 대한 관념 또한 삼계라는 개념으로 통칭하여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대순사상의 삼계관은 근대가 폐기한 고대 동서양의 우주관을 근대과학과 통합한 재활성화의 우주관과 가깝다.
위와 같은 대순사상의 인간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동학사상이 서양의 존재론적 삼계관에서 생성론적 삼계관으로의 리미널리티를 이루었다면 대순사상은 신인의도를 통해 생성론적 삼계관에 내재된 신명과 인간의 관계를 재활성화했다.
불연기연(不然其然)과 성사재인(成事在人)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인간관의 결론적인 차이는 성사재인이다. 대순사상의 성사재인은 일의 성공 여부에 대한 결정이 과거 하늘에 있던 것을 이제는 인간으로 바꾼다 의미이다. 동학사상의 천외천 출현과 대순사상의 구천 인신강세의 차이는 최종적으로 성사재인으로 나타난다.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110)
위 예문에서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된다”는 표현은 선천의 성사재천(成事在天)을 의미하다. 신명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 동학사상에서 싸움이 결정되는 것은 기운이지만, 대순사상의 경우 싸움을 결정하는 것은 신명이 된다. 대순사상에서 인간 싸움을 결정하는 신명이라는 원리도 상제의 인신강세 이후 인간과 신명의 위치가 바뀐다.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 또 너희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할 것이요 내가 놓아주어야 죽느니라.111)
위 예문에서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라”는 표현은 구천의 인신강세 이후 결정권의 위치가 신명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신강세 이후 모사(謀事)와 성사(成事)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구천의 인신강세로 인간의 궁극적 가치가 비로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이라는 음양을 다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가 구천의 인신강세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신강세 이전에 천하사가 천지신명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인신강세 이후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사재인의 의미가 된다.
상제께서 박 공우가 아내와 다투고 구릿골을 찾아왔기에 별안간 꾸짖으시기를 “나는 독하면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하면 천하의 선을 다 가졌노라. 네가 어찌 내 앞에 있으면서 그런 참되지 못한 행위를 하느뇨.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을 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하셨도다.112)
위 예문에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라는 표현은 구천의 인신강세 이후 인간은 성사(成事)를 하는 운수자리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된다. 구천의 인신강세로 인간과 신명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신명은 비겁(否劫)에 빠지고 인류는 재겁(災劫)에 빠졌기 때문이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인간관을 비교하면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에 비해 상관적 사유의 확대로 프랙탈 사유가 강화된다는 점이다. 대순사상에서 인간은 양, 신명은 음의 역할을 한다113) 신인조화 또한 음양합덕의 원리로 이루어진다.
성사(成事)와 모사(謀事)는 조리(調理)와 기화(氣化)의 음양오행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리와 기화의 관계가 선천과 달리 후천에서는 반대가 된다. 동학사상에서는 목화금수를 조리하는 토의 존재가 신명이 된다.
성사재인(成事在人)의 관계에서 조리와 기화는 인간의 조리와 신명의 기화로 나타난다. 이는 오행에서 토와 목화금수의 관계와 유사하다. 특히 대순사상에서 인간의 조리와 신명의 기화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원으로서의 순환이다.
토와 같은 인간의 조리와 목화금수의 신명의 기화는 동서양의 전통에도 있어왔다. 동양의 전통사상에서도 목화금수와 같이 사방을 나타내는 존재는 사신도(四神圖)라는 형태의 동물로 신을 표현해왔다. 서양에서도 신은 동물로 표현되어 왔다. 서양의 사신도에 해당하는 지수화풍은 바슐라르에 의해 인간 상상력의 기본 콤플렉스로 간주되었다.114)
바슐라르를 이은 질베르 뒤랑은 상상력의 끝은 인간의 상징이 신(神)이 되어 만나는 것이며 인간의 상징은 동물이 되고 마침내 신이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였으나 한국의 심정문화에서는 특히 신이 인간이 되고자 한다고 한다.115)
공자가 도교의 은자들에게 전했다는 선천 역학의 이기론은 성리학의 후천 역학 이기론과 달리 태극과 음양오행이 이기의 성격을 모두 가지므로 유불선과 서교를 모두 수용한다. 그러나 소강절의 이기론마저 선천의 음양 자체의 왜곡과 근대 과학에 대한 설명력 부족으로 마테오 리치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동양의 신인관계는 무너졌다.116)
대순사상에서는 인계관의 리미널리티 속성 또한 강화된다. 인류의 교만과 물질주의는 반성되고117) 인간 최초의 원이 해원된다. 인간의 살을 상징적으로 떼어주고118) 말점도에서 귀양을 가며119) 백의장군 백의장상 도수로 재활성화가 확대된다.120)
대순사상의 인계관에서 인간의 지위상승은 동학보다 명확히 표현된다. 신명계를 도입하지 못한 동학사상은 신인조화가 ‘불연기연(不然其然)’으로 표현된다. ‘불연기연(不然其然)’은 인간으로서 이해가 어려운 불연(不然) 이란 부분도 언젠가는 수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기연(其然)이 된다는 뜻이다. 대순사상에서는 동학에서 많은 불연(不然)이었던 부분이 기연(其然)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몸속에 갇힌 신이기에 내부의 신을 깨워 외부의 신과 소통할 수 있다. 몸을 통해 새로운 신명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된다.121) 내부의 신을 찾아야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천지를 성공시키는 인간이 가는 길을 갈 수 있다. 따라서 대순사상에서 개벽은 천지가 성공하는 것으로 이는 도통군자의 배출 이후에 가능한 인존의 도통진경 세계다.
대순사상에서 신인조화는 인간을 통해 천지가 성공하는 개벽의 원리가 된다. 신인조화가 가능한 이유를 대순사상에서는 금화교역(金火交易), 토극수(土克水)라는 음양오행의 원리로 설명한다. 비겁에 빠진 신명, 재겁에 빠진 인간이라는 용어에서와 같이 대순사상에서 천계와 지계에 해당하는 신명과 인간은 속성과 실체로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양상으로 나타난다.122) 천지가 기반하고 있는 천지신명 또한 신명이기에 신명은 디지털같이 진리에 지극하되 한 방향만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정밀하지는 못하되 변화에 신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123) 천원지방처럼 속성은 원과 같이 양방향, 실체는 네모 방과 같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두 속성을 합치면 신인조화가 되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상반되는 실체와 속성 두 요소를 통합하는 원리를 김지하는 “흰그늘의 미학”으로 표현한 바 김익두는 이를 리미널리티로 해석한 바 있다.124)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은 상관적 사유의 리미널리티와 재활성화를 강조한다.
동학사상에서 천인관계는 도교적 발전이 재활성화되지 못하였지만, 대순사상에서는 구체적으로 재활성화된다. 대순사상은 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종교단체 중 유일하게 최고신의 신격위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로 존칭하고 있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 천지관계의 자생적 근대성 비교
천지귀신(天地鬼神)과 천지성경신(天地誠敬信)
천지귀신과 천지성경신은 각각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에서 처음 출현하는 두 사상의천지 관계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천지귀신과 천지성경신 또한 천외천의 출현을 강조하는 동학사상과 구천의 인신강세를 강조하는 대순사상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두 개념이다. 먼저 동학사상에서 천지가 초월천의 음양이치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의 천지귀신의 경우 ‘귀신’은 동학사상의 천외천을 의미하고 신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편 천지의 성경신에 의해 천지가 운행되고 천지가 화육되어 인간의 복록과 수명도 결정돠다는 대순사상의 천지성경신은 신명의 성경신을 강조한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 모두 하늘 위의 하늘, 곧 초월천을 강조하므로 여기서 천지는 전통적인 동양사상의 음양으로서의 천지개념과는 다르다. 하늘을 초월천으로 간주하면 상대가 되는 땅은 천지 모두에 해당된다. 천지귀신(天地鬼神)과 천지성경신(天地誠敬信)은 모두 초월신과 초월신에 대한 천지신명의 태도를 의미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대순사상에서 삼계는 먼저 신명과 공존하며 신명의 성경신에 의해 운행된다.
天地誠敬信125)
생(生)과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은 천지(天地)의 은혜(恩惠)이니 성(誠)ㆍ경(敬)ㆍ신(信)으로써 천지(天地) 보은(報恩)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다하고,126)
위 두 구절은 인간의 생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天地)를 운행하는 여러 신명들의 성경신(誠敬信)에 의해 베풀어진 은혜이므로 인간 또한 천지를 본받아 성경신(誠敬信)으로 보은을 해야 천지의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으로서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대순진리회 신조 중 삼요체가 성경신이 되는 배경이 된다.127)
초월신의 최초 출현이라는 의의를 강조하는 동학사상에 비해 구천의 인신강세를 강조하는 대순사상은 천지의 다른 부분을 강조한다. 먼저 동학사상의 천지귀신이란 초월천의 지기(至氣)의 기화작용(氣化作用)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동학사상이 출현하기 전 성리학에서도 천지를 귀신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성리학에서 나타난 천지가 귀신이라는 것은 음양 작용의 실체적 설명이었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성리학에서 나아가 초월천을 강조한다. 천지가 귀신이라는 의미는 음양의 작용이 아니고 초월천의 기화작용임을 강조하여 성리학에 새로운 근대적 전기를 마련했다.128)
천지역시(天地亦是) 귀신(鬼神)이오 귀신역시(鬼神亦是) 음양(陰陽)인줄
이같이 몰랐으니 경전(經傳)살펴 무엇하며
도(道)와 덕(德)을 몰랐으니 현인군자(賢人君子) 어찌알리 129)
위 예문에서 ‘귀신’과 ‘도덕’은 초월천의 의미가 되며 ‘경전’과 ‘현인군자(賢人君子)’는 동학이 극복하고자 하는 하늘 아래 하늘의 도를 말한다. 동학사상은 초월천을 통해 성리학을 뛰어넘는 근대성을 추구했지만, 신명 개념까지 수용하지 못해 유교의 전헌을 넘지 못하게 된다.
귀신 개념을 초월천의 의미로만 수용하고 초월천의 명령을 듣는 신명 개념을 수용하지 못한 동학사상은 신명 개념의 부재로 성공적인 근대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에 대순사상은 신명 개념을 수용하여 천지를 귀신이라고 표현한 동학사상에 대하여 천지를 성경신으로 표현한다.
성경신이란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진 상관적 사유의 동양사상에서 초월천과 인간의 관계를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이다. 동학사상 또한 동학사상 자체를 ‘성경신 사상’ 이라고 표현한다.
吾道博而約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誠敬信三字130)
성경신은 중용의 성(誠) 사상에서 점차 경(敬), 신(信)으로 확대하여 동학사상에서 성경신을 함께 일컫는 용어로 나타났다. 동학사상에서 성경신을 함께 일컫는 것은 정기신과 같이 성경신에 내포한 각각의 천지인의 요소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誠)은 오늘날 서양 연구자들에게는 창조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131)
그러나 같은 “성경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만 “성경신”개념은 동학사상과 대순사상, 나아가 유교사상까지도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유교사상부터 성(誠)이 강조된 것은 하늘과 인간이 연결되는 부분이 성(誠)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한 정성을 하면 하늘과 일치하듯이 성(誠)은 하늘과 인간의 주요 통로, 인간 활연관통의 주요 방법이었기에 성(誠)은 유교사상에서 가장 중시되었다. 유교로 서학을 접한 이벽과 같은 초기 서학 사상가도 성(誠)을 유교와 서교의 연결고리로 간주하였다. 동학사상은 유교 전통이 사라진 것을 재활성화하는 측면에서 성(誠)을 강조하지만 유교와 다른 것은 천지의 천이 아니고 천지를 만든 초월천에 대한 성(誠)이라는 점이다. 반면 대순사상은 나아가 이 성(誠)이 구천에 의해 지어진 천지에도 적용되어 대순사상의 성(誠) 개념은 구천, 신명, 인간의 삼각구도 속에 나타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인간이 성(誠)으로 보은하는 것이 대순사상에서는 구천과 천지 양자에 다 해당한다.
또 귀신 개념 또한 대순사상과 동학사상, 나아가 유학사상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천지성경신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듯이 대순사상의 귀신 혹은 신명개념은 신명개념에 성경신이 연결되지만 동학사상이나 유교사상에는 성경신이 연결되지 않는다. 대순사상에서는 유교사상이나 동학사상에 명시되지 않았던 천지신명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실펴 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철학적 입장에서 흩어지는 기로 설명되는 귀신 개념은 제사의 대상이 되는 귀신의 영원성을 보장해 주지 못하였고, 제사의 의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원성을 보강한 종교적 귀신 개념은 기의 유한성을 전제로 하는 성리학설에 무리없이 부합되는 이론이 아니었다.
성리학의 자연철학적 입장에서 해석된 귀신은 이와 기의 합으로서 본체와 현상, 유와 무의 사이를 오고가는 존재이다. 그와 같은 귀신의 개념을 인간의 일에 적용하면, 그것은 원초적인 무에서 탄생으로 이르는 과정, 그리고 죽음에서부터 원초적인 무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게 된다. 이기론에서 귀신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실체가 아니라, 자연 속의 여러 사물과 현상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그 중간 과정으로서, 이(理)와 기(氣)로 이루어진 자연을 그 변화 운행의 측면에서 파악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기(氣)요 그 은미하게 내재해 있는 것은 이(理)니 이를 총괄하여 귀신이라 한다.”132)고 하였다.
귀신이라는 것은 이나 기와 같이 근원적 존재의 차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기가 함께 묶여져서 자연 속에 실재하며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주재력(主宰力)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귀신을 기(氣) 한 가지로만 이해하면 그것은 철저히 물질적인 것으로만 인식될 것이며, 반대로 이(理)로만 간주하면 원리적, 추상적 존재에 머물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귀신이 스스로 주재력을 갖는 신묘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 기 두 가지 요소를 다 가져야만 된다. 단, 귀신을 설명할 때 그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이기가 함께 있는 것이 병존(竝存)인지 합일(合一)인지의 문제가 후대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의 주제가 되었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몸도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탄생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기, 그리고 그 시점에 주위를 떠돌던 기가 합쳐져서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를 형성함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죽음은 그 과정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던 한 인간의 생명이 다하게 되면 그 몸을 이루고 있던 기가 자연 속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 기가 흩어짐은 사람이 죽는 순간 곧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온갖 정성을 모아 부단히 시행해 왔던 갖가지 제사가 허구나 관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논리는 바로 이것을 근거로 설명된다. 제사의 대상이 되는 죽은 사람의 귀신, 즉 인귀(人鬼)라고 하는 것은 비록 소멸의 과정에 있는 유한한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소멸에 이르기 전까지는 실재하는 존재로서 제사를 흠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기(理氣)의 역할을 구분하여 작위(作爲)의 능력을 기에만 부여하고 이에는 원리적인 성격만을 갖도록 한 성리학의 이기이원론의 전제에 비추어 볼 때 일부 성리학자들은 영혼불멸설이 무리한 이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미 있게 파악해야 할 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생각한 이(理)라고 하는 실체는 단순히 무정의(無情意)· 무조작(無造作)의 자연적, 윤리적 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영원성을 담보해 주는 영명(靈明)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는 점이라고 한다.133)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천지·지인관계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는 서양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다. 자생적 근대성을 최초로 주장한 동학의 경우 동학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서학에 대립하는 입장을 강조한다면 대순사상은 대순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포용하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순사상은 자생적 근대성과 관련하여 서양 근대성의 동양적 기원을 제시한다. 자생적 근대성과 관련된 동학사상의 성립에 대한 최근까지의 연구들을 개괄한다면 동학사상은 서양 근대성의 동양적 기원에서 출발하여 역으로 서학과 함께 동양에 재수입되고 다시 동양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난단도교와 같은 중국 근세 도교가 기존의 성리학과 종합되면서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는 상제의 계시의 형태로 성립한다.134)
도기장존(道氣長存)과 상생(相生)
상생 개념은 대순사상과 동학사상의 땅에 대한 관념 중 가장 대표적 차이가 나타나는 용어인다. 상생이란 개념이 해원상생과 같이 추상적 개념과 연결되어 사용되는 것은 증산사상 가운데서도 대순사상에 처음 나타난다. 음양오행에서 사용되던 상생이 추상적인 개념과 더불어 대순사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조리와 기화에서 보듯이 토에 의한 목화금수의 중재라는 구천과 신명의 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음양오행 개념이 동학사상에도 나타나고 동중서 이후 2000여 년 동안 동양에서 과학의 표준으로 기능했지만 음양오행의 핵심 개념이 해원상생과 같이 사용되는 것은 삼계와 삼재, 선천과 후천같이 구천의 관점에서 바라본 음양오행의 이론적 도출이다. 대순사상에서 음양오행은 음양합덕, 삼재확립, 오행구비라는 「무극도 취지서」에 나타나듯이 오행은 음양, 삼재와 더불어 구천이 삼계를 운행하는 원리이다.
대순사상에서는 하도, 낙서라는 음양오행의 배치 방법에 따라 구천이 음양오행을 운행하며 이에 따라 생장염장의 무위이화가 발생한다. 신명은 구천의 의도에 따라 무한중첩되며 천지신명의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 구천에 의해 제시된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에 의한 세계관이다.
여기에 상극과 상생은 음양오행의 운행원리를 넘어 삼라만상의 핵심원리로 격상된다. 전통적인 상극과 상생은 자생적 근대성에 일용사물에 적용되며 일용사물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135)
동학사상에도 음양오행은 출현하지만, 상극과 상생은 강조되지 않는다. 상극과 상생은 인신강세 후 천지공사로 구천이 음양오행을 조리하는 가운데 중요성이 강조된다.136) 음양오행은 동학사상에서 강조하는 무극뿐 아니라 태극의 중요성으로도 나타난다.
태극은 음양에서 삼재 오행으로 전개되어 결국 음양오행이 되고 음양오행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가운데 중심인 토(土)가 된다. 동중서가 결합한 음양과 오행은 소강절이 재발굴한 하도낙서를 통해 비로소 완전히 결합된다. 소강절은 공자가 전설적으로 도교 사상가들에게 전했다는 복희의 하도낙서와 팔괘도를 공개하며 음양오행과 팔괘를 통일했다.137) 하도낙서로 통일된 소강절의 음양오행 해석에 따르면 우주는 음양오행의 무한한 반복이며 음양오행은 가운데 토(土)를 중심으로 목화금수가 상극상생으로 운동하는 움직임이다. 음양오행이 끝없는 변화를 의미한다면 태극과 같이 음양오행이 끝없이 변화하도록 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곧 이(理)이고 기(氣)의 음양오행과 대응하여 원형이정이라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138) 결국 소강절 체계에서 이(理)는 오행에서 가운데 보이지 않는 토(土)이고 원형이정이며 기(氣)는 오행에서 주변에 현상하는 목화금수이고 음양오행이다.139)
음양오행에서 상극은 상생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다. 다만 상극과 상생은 균형이 중요하므로 상극에 치우쳐도 상극이 극대화될 우려가 있다. 동학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은 도기장존(道氣長存), 기화(氣化), 척왜를 강조하는 것과 같이 상극의 힘을 추구한다.
동학사상에서 도기장존(道氣長存)이란 단어는 수운이 천사문답 직전 경신년 입춘에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쓴 글 “입춘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140)
위의 글은 공부에 대한 굳은 다짐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상극과 상생이란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음을 『전경』은 밝히고 있다
최 수운의 가사에 “도기장존 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이라 하였으나 상제께서는 “진심견수 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라 하셨도다.141)
위 예문에서 수운의 도기장존(道氣長存)은 진심견수(眞心堅守)와 대비된다. 위 예문에서 도기장존(道氣長存)은 진심견수(眞心堅守)와 대비하여 힘에 대해서 힘으로 대항하는 의미가 강조된다. 힘에 대해 힘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 『전경』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142)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해서 『전경』에서도 부당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경에서는 부당한 요구를 거부 못하는 것을 나약하다고 비판한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극을 상생으로 풀어야 함을 강조한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에서 상극과 상생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은 서양과 일본과 관계되는 부분이다. 먼저 서양의 경우를 보면
東有大聖人曰東學 西有大聖人曰西學143)
위 예문에서 대순사상은 서학을 동학과 같은 성인의 반열로 간주한다. 서양에 대해 큰 경계심을 드러낸 동학사상과 달리 대순사상은 동양과 서양을 음양합덕의 상생관계로 간주한다. 마테오 리치 같은 경우는 동서양의 경계를 뚫고 천상의 문명을 땅에 전한 인물로도 나타난다. 실제 조선 후기 실학에서도 서학에 대해 양가적 태도가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적 학파인 성호 학파 학인들에게 사이에서 영향력을 펼친 기독교 사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대응을 유발하였다고 보인다. 그 첫 번째는 안정복의 경우처럼 과학으로서의 서학에서는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하되 종교 또는 철학으로서의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는 명백히 거부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고, 두번째는 그와 반대로 기독교 사상을 종교로 수용하여 그것을 신앙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간 것이다. 성호의 제자 중 신서파(信西派)로 불리우는 이벽(李檗, 1754∼1786), 권철신(權哲身, 1736∼1801), 이승훈(李承薰, 1756∼1801), 이가환(李家煥, 1742∼1801)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기독교 사상의 자극을 고대 유교의 본원적 입장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아 자연과 인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론 체계를 정립하고자 한 노력이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철학이 그 세 번째의 경우에 해당한다.144)당시 대표적인 학자였던 정약용은 상제와 이기론은 인정하되 천지신명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음양오행은 부정했다고 한다.145)
다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증산의 화천 이후 가장 먼저 실현된 천지공사는 ‘일본해원’이었다.146) “개같은 왜적놈”이라는 동학사상에 비해 대순사상은 일본은 일본 사람이니 말대접이라도 후하게 하라고 한다.147)
상제께서 어느 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 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서 역사케 하고자 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 자까지 붙여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 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 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 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하셨도다.
『전경』은 일본과의 상극보다는 백제의 패망과 그 후 임진왜란까지도 연결되는 일본의 해원이 된 이후 조선은 중국의 보은을 받아 상등국이 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자생적 근대성의 역사해석으로 제시한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천인·지인 관계의 자생적 근대성 비교
인도(人道)와 신도(神道)의 천인관계
대순사상은 ‘천명’과 ‘신교’라 하여 인간에 의한 인도(人道)와 신명에 의한 신도(神道)를 구분하고 있다.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148)
신도와 인도의 핵심적인 차이는 신명은 천지를 구성하는 요소이므로 신도는 구조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이다.149) 따라서 천지공사와 병행되는 신도는 천인관계의 재정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지나간 임진란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에 불과하고, 진묵(震默)이 당하였으면 석 달이 넘지 않고, 송 구봉(宋龜峰)이 맡았으면 여덟 달에 평란하였으리라. 이것은 다만 선ㆍ불ㆍ유의 법술이 다른 까닭이니라. 옛적에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므로 한 가지만 써도 능히 광란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되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150)
위 예문에서 “운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는 표현은 신명은 천지를 구성하는 요소이므로 신도는 구조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이 ‘천명’과 ‘신교’라는 신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신명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인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전통적으로 인도는 인위적인 도, 신도는 자연법칙과 같은 자연의 필연적인 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순사상에서도 또한 인도와 신도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을 따르고 있다.151)
동학사상에서 천외천의 출현은 획기적이었으나, 신명의 존재와 역할을 설명할 수 없었으므로 천외천과 인간의 관계는 유교적인 인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동학사상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천외천과 소통하는 인도(人道)의 길을 택했다.
하루는 종도들이 상제의 말씀을 좇아 역대의 만고 명장을 생각하면서 쓰고 있는데 경석이 상제께 “창업군주도 명장이라 하오리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그러하니라” 말씀하시니라. 경석이 황제(黃帝)로부터 탕(湯)ㆍ무(武)ㆍ태공(太公)ㆍ한고조(漢高祖) 등을 차례로 열기하고 끝으로 전 명숙을 써서 상제께 올리니 상제께서 그에게 “전 명숙을 끝에 돌린 것은 어찌된 일이뇨” 물으시니 경석이 “글을 왼쪽부터 보시면 전 명숙이 수위가 되나이다”고 답하였도다. 상제께서 그 말을 시인하시고 종도들을 향하여 “전 명숙은 만고 명장이라. 백의 한사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도다”고 일러 주셨도다.152)
위 예문에서 동학농민운동은 천인을 우대하여 양반을 만들어 주려 하였으며 ,청·일전쟁으로부터 러·일전쟁, 1·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일련의 사건에 도화선이 되었다. 동학사상은 당시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프랑스대혁명보다 진정한 원조의 근대 사상운동으로 평가되어 정읍에서 세계혁명도시 연대회의가 매년 개최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순사상에서는 천인관계에서 천외천과 직접소통하려는 동학사상의 인도(人道)보다 천지신명과 함께 소통하는 신도(神道)를 더 강조한다.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153)
위 예문에서 인간은 양, 신명은 음이고(人爲陽 神爲陰), 인간은 음양을 쓸 줄 알아야 인간이라 할 수 있으므로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154) 인간은 신명과 함께 일을 할 줄 알아야(感通神明然後 事其事) 음양을 쓸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최소조건을 갖추게 된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155)
위 예문에서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는 내용은 동학사상과 서구적 근대성은 신명과 원한이라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 크고 작은 일들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음을 밝혀준다.
대순사상에서 유교의 특징은 유지범절이라 하여 신명을 강조하지 않는 인간중심의 교리체계로 간주한다. 실제 유교는 전통적으로 경이원지(敬而遠之)라 하여 신명을 인정은 하되(敬) 가까지 하지 않는다(遠之)는 전통을 고수해 왔다.156)
삼계관의 재정립이 천인관계와 연결되는 것은 조리와 기화라는 신인관계의 재정립을 통해서이다. 구천의 인신강세 이후 조리와 기화는 이제 상극을 상생으로 바꿀수 있게 되어 신명의 조화와 인간의 해원을 사람을 통해 가능하게 한다.
천외천의 출현을 강조하는 동학사상과 구천의 인신강세를 강조하는 대순사상이 차이로 공감을 통한 인간의 모순 중재, 곧 인간이 음양을 쓰는 것은 인간의 조리와 신명의 기화를 통해서이다. 소강절은 『전경』과 같이 마음의 공감과 정의를 통해 인간이 신명을 조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급도유(心急道儒)와 도통군자(道通君子)의 지인관계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지계관(地界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대순사상의 개벽은 금강산을 통해 일만이천군자의 도통과 그 이후의 도통진경을 명시한다는 점이다. 신명을 개입하지 않는 동학사상에서 도의 실현은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회에서 도의 실현은 백성도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는 현세적 욕망이었다. 동학사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천외천 출현의 의미는 심급도유(心急道儒)로 귀결되었다.157)
심급도유는 말기 저작으로 추정되는『동경대전』「탄 도유심급(歎道儒心急)」에 나타나는 동학교도에 대한 수운의 당부를 전하는 대상을 말한다.158) 수운은 동학교도를 도유(道儒)라고 불러온바 수도의 결과가 빨리 나타나기 바라는 동학교도를 심급도유라 하여 이 시를 통해 경계하고 있다. 159)
山河大運 盡歸此道 其源極深 其理甚遠 산하대운 진귀차도 기원극심 기리심원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고아심주 내지도미 일념재자 만사여의
消除濁氣 兒養淑氣 소제탁기 아양숙기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 비도심지 유재정심 은은총명 선출자연
來頭百事 同歸一理 내두백사 동귀일리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 타인세과 물론아심 아심소혜 이시어인
如斯大道 勿誠小事 臨勳盡料 自然有助 여사대도 물성소사 임훈진료 자연유조
風雲大手 隨其器局 玄機不露 勿爲心急 풍운대수 수기기국 현기불로 물위심급
功成他日 好作仙緣 心兮本虛 應物無迹 공성타일 호작선연 심혜본허 응물무적
心修來而知德 德惟明而是道 심수래이지덕 덕유명이시도
在德不在於人 在信不在於工 재덕부재어인 재신부재어공
在近不在於遠 在誠不在於求 재근부재어원 재성부재어구
不然而其然 似遠而非遠 불연이기연 사원이비원
반면 구천의 인신강세로 신명이 도입되는 대순사상에는 현세의 지상신선과 지상천국을 실현하되 동학사상과 같이 왕후장상을 욕속부달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160) 대순사상은 멀리 후천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상에 충실했다. 후천을 생각하는 대순사상에는 동학사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금강산과 개벽 이후의 도통군자의 출현을 명시하며 도통군자의 배출을 지향하는 것이 참동학이라고 한다.161) 대순사상의 삼계관은 도통군자의 배출을 우선과제로 지향하므로 지인관계(地人關係)도 도통군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동학사상의 지인관계(地人關係)에서 도통군자와 금강산은 명시되지 않지만 인걸은 지령이라는 구절과 신선에 대한 언급으로 나타난다.
“온나라 양반 만들기”의 실천적 사례가 되었던 동학사상이 나아가 “온나라 왕후장상되기”까지 평등사상의 실천 강도를 극대화 하였지만 『전경』에서는 수운이 유교의 전헌을 못 넘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162)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163)
위 예문에서 ‘대도의 참뜻’은 물질에 치우치고 인류의 교만을 조장한 서양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적 근대성으로서,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의 취지를 유교를 뛰어 넘은 사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계통발생을 개체발생이 반복하듯 ‘대도의 참뜻’은 유교를 뛰어넘어 모든 이치의 장점만을 모은 새로운 진리여야 했다. 따라서 동학이 구현하지 못한 참동학은 ‘온나라왕후장상만들기’의 근대성을 뛰어넘어 ‘지상신선’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상제께서 어느 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 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희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 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셨도다.164)
위 예문에서 동학의 원래 취지는 유교적인 ‘반봉건 반외세’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계인 후천으로 가는 자생적 근대성, 곧 참 동학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세계인 후천은 지상신선과 도통군자의 세계이며 지상신선은 음양관계인 땅과 인간의 또 다른 음양합덕의 양태이다. 지상신선의 구호는 오늘날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에 나타난 자생적 근대성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한 음양오행이라는 상관적 사유를 도입하면 지상신선은 다음과 같이 땅과 인간의 음양합덕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지인 삼재 개념부터 인간은 천지와 동격으로 간주해 왔지만 인간이 왜 천지와 동격일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대순사상은 인간이 천지와 호환될 수 있어 인간이 있어야 천지가 성공할 수 있다는 천지 매개의 인간 중심성을 신인조화라고 명확하게 언급한다. 대순사상에서 인간은 천지에 비해서 규모나 기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천과 지의 두 가지 모습을 음양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지와 호환될 수 있는 인간은 유기적으로 천지와 동격의 존재가 된다. 대순사상 이전에 인간은 삼재, 삼계를 통해 인간의 지위를 형식적으로만 천지와 동급화 했다. 대순사상 출현 이전에는 실제로 천지와 비교히여 인간은 티끌같은 존재였다. 인간의 도통을 통해 인간은 천지를 매개시키고 호환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대순사상 지인관계(地人關係)의 특징이다.
대순사상은 동학으로부터 동학농민혁명을 거쳐 증산사상에 이르는 과정을 작란(作亂), 동란(動亂), 치란(治亂)이라는 조화의 과정으로 표현한 바 있다.165) 동학사상에서 시작한 “조화”라는 개념의 상관적 사유를 “리미널리티”로 해석하면 실제 상관적 사유가 집약된 삼계관 개념을 중심으로 동학과 참동학으로서의 대순사상에 나타난 근대성을 비교할 수 있다. 참동학을 주장한 대순사상은 실제 동학사상에 비해 음양합덕, 삼재확립, 오행구비라는 초기 무극도 취지서로부터 음양오행을 사상적 자생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166)
결론
동학농민운동은 오늘날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가는 근대적 운동으로 재평가되고 있고, 대순사상은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체계로 근대 이후의 세계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사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글은 동양 철학의 사유 방법으로서의 “동학(東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두 사상이 각각 천관·지관·인간관의 재구성을 통해 동아시아의 자생적(自生的) 근대성을 구축하였음을 입증하고자 한 글이다.
이 글에서 밝힌 일련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기에 처한 서양 근대성의 대안은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천관·지관·인간관이 보여주는 대안적 근대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서양 근대성 위기의 원인은 만물의 변화를 실체로만 보는 서양의 내재성에 있는 반면, 동양은 만물의 변화를 속성으로 설명하는 상관적 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탈근대성이론은 오랜 논의 끝에 동양의 합리성을 상관적 사유와 리미널리티로 설명하게 되었다. 이에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이 구축한 새로운 대안적 천관·지관·인간관은 상관적(相關的) 사유의 리미널리티(Liminality)로 설명할 수 있다.
리미널리티는 문지방, 경계의 뜻으로 통과의례에서 경계의 통과, 곧 변화를 위해 상호 대립하는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하여 상호 대립을 조화하는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 사유의 카오스적인(Chaos) 동태적 특성을 드러낸다. 반면 상관적 사유는 만물이 상호 연결되었다는 프랙탈적인(Fractal) 정태적 특성을 드러낸다. 두 가지 특성을 종합하는 상관적 사유의 리미널리티에 의해 동서양의 천지인은 서로 연결된다. 천지는 인간에게 군사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신하, 제자, 자식은 군사부의 뜻을 받들어 실현하는 존재인 것처럼, 인간은 천지로부터 은혜를 받고 은혜를 갚으며 천지와 같은 능력을 배우는 여천지동의 존재가 된다.
동학사상에서 천사문답(天使問答)이 이루어질 때 천외천(天外天)의 취지는 천지인의 삼계에 상관적 사유의 리미널리티를 재활성화시키는데 있었다. 이에 동학사상에서는 천외천의 출현에 기반한 천관·지관·인간관을 새롭게 제시한다. 동학사상이 새롭게 제시한 천관·지관·인간관은 시천주(侍天主)의 천관, 조화정(造化定)의 지관,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인간관으로 구성된다. 동학사상의 삼계는 다시 귀신론적 천지관계에 기반하여 기화론적(氣化論的) 천인관계, 왕후장상의 지인관계(地人關係)로 서로 교류한다. 그러나 동학사상의 천관·지관·인간관은 유교의 전헌을 충분히 넘지 못하여 중단된다.
이에 대순사상은 구천의 인신강세에 기반하여 신명과 원한 개념을 도입하고, 신인의도적(神人依導的) 삼계관으로 동학의 천관·지관·인간관에 나타난 유교의 전헌을 극복한다. 대순사상은 인신강세의 천계관, 천지성경신의 지계관, 성사재인의 인계관을 제시한다. 대순사상의 삼계는 여천지동(與天地同)의 원리로 상호 교류하며 지상천국의 천지관계에 바탕하여, 천지보은의 천인관계와 지상신선의 지인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천지공사와 수도로 실현한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은 공통적으로 상관적 사유의 재활성화(Revitalizatuion)를 통해 리미널리티를 이루어 자생적 근대성을 제시한다. 동학사상이 단기적인 리미널리티에 치중하여 재활성화의 진입에 기여했다면,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이 실패한 자리에서 동학사상을 재활성화하여 참동학을 제시한다. 이에 동학사상은 작란(作亂)과, 포태(胞胎)의 리미널리티라는 자생적 근대성의 속성을 가지며, 대순사상은 치란(治亂)과 관왕(官旺)의 리미널리티라는 자생적 근대성의 재활성화를 나타낸다.
대순사상이 재활성화한 동학사상의 상관적 사유는 대순사상의 천관·지관·인간관 재구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대순사상의 상관적 사유는 음양합덕, 삼재확립, 오행구비로 나타난다. 대순사상은 동학사상과 달리 천계관에서 태을주를 통해 무극, 태극을 정립하여 이법천(理法天)과 인격천의 음양합덕을 이루고 천문을 재정립한다. 또 삼신산과 부모산, 산왕(山王)과 해왕(海王)을 재정립하여 땅의 지리를 재구성한다. 이는 인간에게로 연결되어 혈통줄을 바로잡고 해원을 통해 황극신과 명부 등 신명계도 일치시킨다.
종교인류학의 리미널리티와 재활성화가 의례로만 그칠 수 있는 불완전한 통과의례라면, 정치와 교화가 합쳐진 대순사상의 통과의례는 실천까지 연결되는 통과의례로 실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대순진리회의 실체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도교의 동시성, 과정철학의 불교, 상관적 사유의 유교 등과도 조화하여 동서양 근대성이 조화되는 자생적 근대성을 이루고 있다.
두 사상에 나타난 자생적 근대성을 세부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대중에게 근대성은 ‘세속화’를 의미하지만 ‘근대성’ 연구자에게 근대성은 오히려 ‘성(聖)과 속(俗)의 재배치’, 곧 리미널리티(liminality)에 의한 신성(神性)의 강화였다. 오늘날 ‘세속화’의 대표적 사례인 서구의 근대성마저도 시작은 캘빈의 구원예정설과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었다. ‘근대성’이 인류 역사상의 수많은 변화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였던 것은 근대성이 처음에는 캘빈이나 데카르트처럼 물질과 정신에 걸친 ‘성과 속’의 영구적이고 거대한 변화, 곧 신성의 강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성은 처음의 취지와는 반대로 속(俗)만을 강조하는 세속화로 바뀌어, 지상에서 신성이 사라지는 위기에까지 봉착했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은 탈근대성의 현대철학과 비교하여 동아시아의 자생적 근대성으로 학계에서 일찍이 개별적으로 많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자생적 근대성 논의는 서구 근대성과 공유하는 동양적 기원을 강조하지 않았다. 아울러 두 사상은 “동학(東學)”이라는 개념에 나타난 자생적 근대성의 형식과 원리 측면에서 서로 비교 연구되지 않았다. 이 글은 ‘성(聖)과 속(俗)의 재배치’라는 다중적 근대성 개념에 바탕하여, 상관적 사유라는 동양의 철학적 사유 방법으로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이룬 두 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을 비교하고, 두 사상의 사상적 가치를 보다 명확히 보여주고자 했다.
‘세속화’이든 ‘성속의 재배치’에 따른 ‘신성의 강화’든 근대성은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산업화, 문화적 다양화로 나타난다. 오늘날 식민지 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위 3가지를 다 이룬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생적 근대성이 있었다. 바로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으로 대표되는 천외천(天外天) 사상이다. 천외천(天外天) 사상은 제국주의 침략 전 마테오 리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변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동아시아의 천관·지관·인간관은 천지인의 속성적 특성만 강조되는 이법화(理法化)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천외천(天外天)의 인격신적 특성을 잃어 버렸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은 각각 천외천의 출현과 구천의 탄강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을 통합한 자생적 성속(聖俗)의 재배치를 답변으로 제시하였다. 상관적 사유에 기반한 천외천인 두 사상의 구천은 동서양 천·지·인의 장점을 통합할 수 있었다.
두 자생적 근대성에 대한 비교의 세부적 방법론으로 이 글은 그레이엄(A.C. Graham) 등의 상관적 사유론,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리미널리티(liminality) 이론, 앤쏘니 왈라스(Anthony Wallace)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 movement) 이론 등 세 가지 방법론을 사용했다. 세 이론을 동시에 적용하는 이유는 세 이론이 비교연구에서는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첫째, 상관적 사유론은 동양과 서양의 사유방식의 인식론적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어 자생적 근대성과 근대성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성속(聖俗)의 재배치라는 근대성에서 재배치 과정 설명에는 리미널리티 이론이 유효하고 셋째, 재배치 과정에 나타난 전통의 계승에 대한 설명은 재활성화 이론이 유용하다.
실체를 중시하는 서양사상의 천관·지관·인간관이 분화적(分化的)이라면, 속성을 중시하는 동양사상의 천관·지관·인간관은 각각 동화적(同化的), 응축적(凝縮的), 접화적(接化的) 특성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 동학사상은 초월천의 천관, 그리고 그에 따른 땅의 기화(氣化), 그리고 인내천적 인간관을 제시하여 동서양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황제로부터 기원을 잡는 동아시아 4,600여년의 문명사에서 처음 출현한 동학의 천외천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 농민운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유교의 한계를 넘지 못한 동학사상은 오히려 큰 작란(作亂)과 동란(動亂)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대순사상은 구천(九天)의 인신강세(人身降世, Incarnation)라는 전제하에 천지신명의 개념을 도입하여 동학사상이 제시한 천관·지관·인간관을 다시 재활성화했다. 대순사상은 해원상생·보은상생이라는 종교적 법리로 동학사상을 재해석하고, 일용사물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상관적 사유로, 천지와 신명이 기화론(氣化論)적으로 결합한 자생적 근대성을 구축했다.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이라는 대순사상의 원리에 따라 대순사상은 삼계(三界), 후천(後天), 상생(相生), 신도(神道), 지상천국(地上天國), 지상신선(地上神仙) 등과 같은 자생적 근대성의 천관·지관·인간관을 제시하였다.
이상의 논의에 바탕한 이 연구의 가치와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연구는 위기에 처한 오늘날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적 근대성으로서 두 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을 제시하였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 담론은 오늘날 소수 담론이지만 세계에 남아있는 유일한 동아시아 상관적 사유의 근대성 담론이다. 철학사에서 위기의 시대는 소수 담론이 주류 담론으로 바뀌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기후위기, 핵위협 등 근대성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안적 근대성의 부재로 인류 절멸을 고민하는 오늘날,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은 동서고금의 천관·지관·인간관의 장점을 상관적 사유의 리미널리티로 통합한 담론으로 일상 속에서 실천가능한 대안적 근대성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이 글은 정체된 동아시아 근대성의 성장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상관적 사유의 재활성화를 제시하였다. 지난 150여 년간 구천상제를 정점으로 하는 신도(神道)를 주장하여 서구의 근대성을 배워 온 동아시아 특히 한·중·일 삼국은 어느덧 경제면에서는 서구를 능가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서구로부터 배울게 없게 된 동아시아는 이제 새로운 성장을 위해서 자생적 근대성에서 새로운 성장의 모델을 찾게 되었다. 이에 동아시아 삼국 중 유일하게 상관적 사유에 기반하여 자생적 근대성을 구축해 온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은 동아시아에서 잃어버린 근대성을 되찾아 줄 모델을 제시해 준다. 이는 공동체 뿐 아니라 정체성 혼란에 따른 동아시아의 개개인에게도 적용 가능하여, 비교 지상주의문화의 서구적 근대성을 극복하고 자생적 근대성으로 새로운 생존 전략을 구축하게 해 줄 수 있다.
셋째, 이 글은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에 대한 동서고금의 비교사상적 이해에 일조할 수 있다. 천관·지관·인간관을 중심으로 두 사상의 자생적 근대성을 서양의 근대성과 비교하는 이 연구는 두 사상에 내재한 의의와 가치를 보다 용이하게 이해시켜 준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은 기존의 동서양 사상과 오늘날 과학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그 특성이 더 용이하게 이해된다.
아울러 이 연구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연구는 자생적 근대성에 대해 상관적 사유의 천관·지관·인간관에 치중하여 기존 근대성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 근대성은 총체적인 현상으로 상관적 사유 외에도 생태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어 왔다. 향후 자생적 근대성 또한 기존 근대성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이 연구는 천관·지관·인간관의 광범위한 연구 영역으로 인해 세부적 논의가 부족했다. 연구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요약적으로 두 사상을 비교한 이 연구는 학제간 연구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연구는 상관적 사유의 자생적 근대성이 성공적으로 구현되는 구체적인 실례에 대한 소개가 부족했다. 상관적 사유의 자생적 근대성이 실제 대안적 근대성으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적용 사례와 연구모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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