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천으로서의 제5원소의 속성이 극대화된 지수화풍의 천관·지관·인간관과 땅으로서의 토의 속성이 극대화된 음양오행의 천관·지관·인간관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다행히 마테오 리치 시절에는 보유론(補儒論)을 빌미로 하여 두 천관·지관·인간관은 협력관계를 이었으나 마테오 리치 이후는 보유론 논쟁으로 두 천관·지관·인간관은 서로 배척하여 대립의 관계로 치달아 결국 동양은 잉카나 마야제국처럼 서양에 의해 문명이 소멸하는 위기에 봉착한다. 동양은 유교의 전헌을 넘지 못했고 서양은 동양을 용납할 수 없었다.
특히 태극의 “리(理)”가 자립적 존재인가의 문제가 두 천관의 핵심문제로 대두되었다. 실체로 변화를 설명하는 서양의 형상적 천관에서 만물은 창조된 것이므로 태극의 “리”는 자립적 존재가 될 수 없으나 천지개벽으로 천지의 운영을 맡은 동양의 동화적 천관에서 태극의 “리”는 자립적이어서 두 천관은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리(理)”가 자립적 존재(subsrantia)인가 우연적 존재(accidentia)인가를 구분하여 “리(理)”가 자립할수 없다는 서양의 실체론적 입장을 밝히고자 하는 『천주실의』의 마테오리 리치 주장에42) 리(理)와 사물(事物)이 완전히 연결되어있는 만큼 리(理가) 있으면 사물(事物)이 있고 사물(事物)이 있게 되면 리(理)가 있다는 동양의 속성적인 논리로 성리학자인 신후담은 『서학변』에서 답변43)하는 것이다.
서양에 대해 호의적이던 일반 민중 또한 서양의 지배가 본격화되는 베이징 조약이후 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에 대해 입장이 부정적으로 전환한다. 서양의 힘에 눌린 동양은 이제 서양의 힘에 대응할 수 있는 통과의례의 리미널리티와 새로운 천관·지관·인간관의 재활성화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일관도(一貫道), 태평천국의 난, 신해혁명과 같은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에서도 메이지유신, 천리교(天理敎)와 같은 신종교 운동이 새로 생기거나 확산되었다.
음양오행의 천관·지관·인간관 붕괴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곳은 동양 3국 중 유교화가 가장 진행된 한국이었다. 한국은 서학이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서학중원론을 더 발전시켜 서학을 동양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적 서학중원론은 정약용과 최한기를 거친 후 동학사상에 이르러 전환의 임계점을 만난다.44) 동학사상은 지수화풍의 인격신과 음양오행의 이법신 사이의 조화를 시천주(侍天主)라는 리미널리티를 통해 제시한다.
동양의 경우 천계·지계·인간계의 창조주가 숨는 대신 서양과 달리 천계·지계·인간계가 『주역』과 같은 천지인 및 음양으로 구분되어 자율적이고 일관적인 신명체계를 이룬다. 서학에서는 유일신으로 인해 천계·지계·인간계의 다른 신이 사라지다면 도교에서는 『주역』의 영향으로 천계·지계·인간계의 신이 음양이라는 자율적이고 일관적인 체계로 작용한다. 이는 무위이화, 천지귀신45)이라는 동학의 조화사상으로 연결된다.
서학중원론이 조선에 도입된 후 리치의 음양오행 비판에 대해 음양오행론적 반론이 제기된다. 서명응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 대해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음양오행론으로 반박한다. 한편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마테오 리치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여 성리학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는 동양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동학 이전에 상관적 사유에 대한 동서양의 논쟁은 당시 학계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었다. “동학”은 “서학”에 대한 동양 학문의 고유한 방법론을 강조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탄생하였다.
당시 동양인에게 동아시아의 자생적 근대성 확립은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였다. 아편전쟁으로 서양의 힘을 실감한 동양은 자생적 근대성 수립에 실패하면 아시아 또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문명 상실의 지경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서양인보다 열심히 살아온 동양인에게 서양의 충격은 물질적인 위협도 컸지만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의욕상실의 정신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제국주의 시대 동양인은 물질적 위협 뿐 아니라 정체성마저 상실하는 정신적 위기를 맞이하여 서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동양의 신비주의에 의존했다. 동양적 합리성인 상관적 사유에 의한 자생적 근대성 수립은 갈수록 동아시아의 생존에 핵심문제가 되고 있었다. 동학은 무거운 과제를 안고 성립되었다. 음양오행이라는 상관적 사유에 기반한 동학의 개념이 정립되자 ‘무극대도’, ‘천지귀신’, ‘상원갑’, ‘다시 개벽’과 같은 개념들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천관의 상극화
음양오행과 지수화풍의 천관·지관·인간관이 충돌하면서 천관의 상극화가 심화된다. 음양오행, 지수화풍 두 사상은 이상적 천관·지관·인간관도 동일하지만 상극화 양상도 유사하다. 지수화풍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죄에 의해, 음양오행의 세계관에서는 불완전한 세계구조에 의해 이상적 세계는 각각 수화풍 삼재(三災), 음양난잡(陰陽亂雜)으로 상극화 된다. 마테오 리치 이후 전개돤 동서교류로 인해 동서양은 서로 다른 이유로 신을 부정하는 천관의 상극화가 진행된다.
마테오 리치 이후 전개된 동서양 신인 관계의 혼란은 인간 사후의 영혼불멸설 부분에서 시작되었다.46) 마테오 리치 이후 동양에서는 4대(代)가 지나면 기(氣)가 사라지므로 영혼도 사라진다는 이기론이 의심받고 서양에서는 신의 세계가 절대신 한 분과 천사 몇 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의심받았다.47) 마테오 리치 이후 동양은 음양오행과 천지신명이 부정되고 서양에서는 동양과 같이 수많은 이법신 혹은 기계로 이루어진 무신론적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사유방식의 차이는 일찍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천주실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자세히 드러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지수화풍의 세계관은 근대의 기계적 과학관보다 마테오 리치가 비판한 음양오행의 천관·지관·인간관과 더 유사해 보이지만 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실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프랑수아 줄리앙이 지적한 것처럼48) 지수화풍의 세계관은 근대의 기계적 과학관과 더 가까웠다. 실제 리치는 동양의 음양오행적 천관·지관·인간관과 상관적 사유의 과학이라는 공통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음양오행적 천관·지관·인간관은 변화를 설명할 때 실체로 설명하지 않고49) 속성으로 설명하는 비과학적 설명이라고 비판한다.
보유론 논쟁에서 보듯이 천주교는 마테오 리치가 전해준 동양의 세계관을 부정하였으나 세속사회에서는 오히려 환영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으로 대표되는 데카르트를 효시로 서양은 기존의 신관을 표백시키고50) 신(神) 없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 반면 도덕에 있어서는 율법보다는 복음을 강조하는 이론이 확대된다.51) 즉 캘빈의 구원예정설은 신 없는 사회에서의 공감으로 변화된다. 근대성은 새로운 리미널리티로 집중된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신관의 변화는 긍정적 변화로 해석되어 왔지만 근대의 문제가 극대화된 오늘날은 반성의 계기가 되고 새로운 대안적 근대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상극화된 신존인비(神尊人卑)의 천인관계에서 인간은 해탈이나 탈속 혹은 죽음으로 천계·지계·인간계를 떠나야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존재가 된다. 상극화된 천관에서는 신명 또한 구속되어 각자 자기 경계를 맡아 자기분야와 자기 영역 안에 갇힌 비겁(否劫)속의 존재가 된다. 인간은 이에 각자 땅 기운의 영향 속에 다른 문명을 일으켜 서로 분쟁하게 된다. 또한 상극화된 하늘에서 우로(雨露)의 부조화로 인간은 수화풍 삼재의 고통에서 살아가게 된다. 상극은 상극을 낳아 천지와 인간은 참혹하게 착란하고 진멸지경으로 전환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된다.
동학사상의 시천주(侍天主) 천관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동학사상의 시천주(侍天主) 천관(天觀)
성리학의 이법천(理法天)이 동아시아, 특히 조선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자 동학은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천외천, 곧 무극의 하늘이라는 새로운 천관으로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동학은 서학의 학문을 천관으로 포용하고자 한다. 이는 몽고와 이슬람에 의한 서양의 침입이 서구 근대성의 배경이 된 것과 유사하다. 동학이 새롭게 제시한 천관은 성리학의 이법천과 달리 하늘 위의 하늘, 곧 천외천(天外天)과의 직접 소통이었다. 시천주의 천은 천외천으로서의 천 개념이다.
동학사상은 기존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주목받지 못한 천외천의 개념을 강조하여 천관·지관·인간관의 자생적 근대성을 도모한다. 다중적 근대성이론에서 근대성은 동학사상과 같이 기존의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소외된 부분을 재활성화하여 성-속의 순위를 바꾸어 속이 성을 수용할수 있도록 전환하는 통섭과 리미널리티에서 발생한다. 동학사상은 천외천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일상 세속에서 성을 경험하는 성-속의 순위 재배치를 추구하고 수심정기를 통해 기존의 중첩된 문제를 해결하는 리미널리티를 시도한다.
수운은 기존 성리학의 ‘하늘’과 다른 ‘하늘 위 하늘’과의 직접 소통을 시천주(侍天主)라고 표현한다. 수운은 평생 ‘하늘 위 하늘’과의 직접 소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온다. 40여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 노력해 온 수운은 마침내 경신년에 이르러 천사문답(天師問答)에 이른다.52) 동학사상의 천관은 상제와의 만남인 천사문답으로 성립한다. 수운은 1860년(경신) 음력 4월 5일에 상제의 첫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不意四月 心寒身戰 疾不得執症 言不得難狀之際 有何仙語 忽入耳中 驚起探問則 曰勿懼勿恐 世人 謂我上帝 汝不知上帝耶 問其所然 曰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曰然則 西道以敎人乎 曰不然 吾有靈符 其名 仙藥 其形 太極 又形 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증할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 물은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53)
수운의 천사문답은 6개월여간 지속되고 1년여 동안 고민한 후 수운은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에 이를 상세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이돈화는 수운의 수행을 천사문답과 내부강화로 나눈다. 그러나 『용담유사』와 『동경대전』 이후에 쓰여진 『도원기서』에는 그 이후 수운이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상제와 여러차례 소통하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54)
동학사상이 근대종교, 나아가 동서고금의 종교사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창시자의 종교경험이 매우 자세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일단 동학사상과 같이 창시자의 종교체험으로 종교가 시작하는 것은 이슬람교가 거의 유일하고 다른 종교는 불교와 같이 창시자의 수도 경험 등으로 시작되어 종교체험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55) 또 이슬람교 또한 경험이 매우 간단하게 표현된다. 동학사상이 유서 깊은 유교사회였던 한국사회에서 단기간에 많은 지지자가 생긴 것은 이 상세한 천사문답이 신뢰를 일으킨 바 크다.
6개월여의 천사문답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화 내용을 수운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동학은 성립된다. 수운은 「논학문」에서 먼저 서학과의 차별성을 동학의 인식론적 배경으로 강조한다. 수운은 자신이 만난 상제가 동서양의 하늘을 통합한 하늘 위의 하늘임을 알리고 특히 서학의 하늘보다 위의 하늘임을 주장한다. 수운은 이를 “학(學)”의 성격에서 규명한다. “논학문”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서양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전 세계의 문명 중 유일하게 한국의 동학만이 인식론적 주제인 “학문”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동서양의 차이가 인지구조라는 근원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는 동양에 대한 주장은 동학의 「논학문」에서 최초로 나타난다.
『동경대전』「논학문」에서 수운은 서양은 분석적이라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신을 믿는 듯하나 믿지 않기 때문에 결국 허무에 빠진다는 내용을 언급한다. 먼저 수운은 동학과 서학의 차이를 “운즉일 도즉동 이즉비(“運則一 道則同 理則非)” 라는 말로 명시한다.
日與西道 無異者乎
문 서도와 다름이 없습니까?
日洋學 如斯而有異 如呪而無實 然而運則一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답: 양학은 이와 비슷하지만 다름이 있고,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다.
그러나 운수인즉 하나이며 도인즉 같으나 이치인즉 다르다.56)
위 예문에서 수운은 동양과 서양의 학문은 목표는 같지만 방법론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이에 대한 선행연구를 배영순은 정리한 바 있다. 배영순은 기존 선행연구들은 동학에서 말하는 운(運),도(道),이(理)의 차이가 자세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그 차이를 상술하고 있다. 배영순은 시천주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에서 '시천주' 는 천(天)에, '조화정'은 지(地)에 그리고 '영세불망만사지'는 인(人)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며 시천주를 천지인의 상관적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
배영순은 다시 시천주를 운(運), 도(道), 이(理)에 적용시켜 도(道)는 '시천주(侍天主)', 운(運)은 '조화정(조화定)'이며 이(理)는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로 배당한다. 결국 동학과 서학의 차이는 천지는 같고 하나이되 천주를 모시는 인간의 이치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배영순은 동학에서 동서양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하늘(道)은 같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땅은 기운(運)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57)
동학과 서학 이치의 차이는 동학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曰何爲其然也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내가 받는 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상을 교화한다." 저마다 그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로잡아 그 타고난 천성(天性)에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히 교화가 이루어진다. 이에 대하여 서학(西學)을 믿는 서양 사람들은 그 말에 올바른 차례가 없고 그 글엔 뚜렷한 조리가 없다. 그리고 도무지 하느님을 위하는 실속이 없고 다만 제 이익을 위하는 방도만을 빌 뿐이다. 그러므로 몸이 영기(氣)와 합일하는 놀라운 경지도 없고 하느님의 참된 가르침도 없어 형식만 있고 실속은 없다. 하느님을 생각하는 듯하나 하느님을 참으로 위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 도는 거의 내용이 비어 있고 그 종교는 하느님을 위하지 않는다. 어찌 다름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58)
위 예문은『동경대전』가운데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위 예문에서 비판의 대상을 천주교나 천주교 신도로 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 예문에서 비판의 대상을 서양인 일반, 서양 학문 전체로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59)
위 예문에서 배영순은 동학이 지목하는 동학과 서학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화지신(氣化之神)“이라고 한다. 여기서 기화(氣化)라는 것은 하늘의 기운이 몸에 응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학은 천주를 향하여 빌기만 할 뿐 스스로 기화(氣化)할 수 있는 주문(呪文)이 없고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수련이 없다는 것이다. 수운은 서학에서 사제와 일반신도가 수직적으로 엄격히 구분되는 것을 비판했듯이 기화가 없는 서학을 같은 논리로 여기서 비판한다.
수운이 사실 동학의 창도에서 가장 자부하고 있는 바도 수심정기(守心正氣)였고 이는 서학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유학(儒學)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고 한다.60) 동학과 서학의 차이가 수련 방법의 유무라는 수운의 견해는 동서양 학문에 대한 탁견이었다. 동서양의 영성을 통합했다는 저명한 초월심리학자 켄 윌버(Ken Wilber, 1949- )도 독일의 관념론같은 체계적인 철학마저도 수양론이 없다는 것이 서양 사상 최대의 약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61) 켄 윌버는 현대 사상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양의 인식론적 접근을 수양론적 접근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다.62)
동학사상에 나타난 상제의 출현은 정통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괴력난신에 속하는 이례적이고 이단적인 모습이었다. 수운의 천사문답이 더 이례적으로 보였던 것은 수운의 가계는 한국 성리학의 정통계열에 속했기 때문이다. 서얼보다 못한 재가녀의 자식으로 수운의 출생은 불우했지만 수운의 부친 근암 최옥(近菴 崔鋈, 1762-1840)의 학적 계보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사제 계보 중 정통 계보에 속하였다. 유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상제의 출현은 이례적 상황이었으나 의외로 당시 상제와 대화한 수운의 천사문답은 계층을 막론하고 인정되었다. 동학사상은 유불선의 많은 전통에 힘입어 이를 극복하게 된다.
수운의 천사문답이 폭넓게 수용된 배경에 대해 최근의 연구는 동학 발생 당시 새롭게 유입되고 있던 중국 도교의 영향을 지목한다. 특히 조선 후기 난단도교(鸞壇道敎)의 영향이 부각되었다. 이는 오늘날 덜 알려진 중국 도교의 전래에 의한 것으로 청나라의 혼란으로 많은 청나라의 도사들이 조선으로 들어와 당시 조선에는 “무상단(無相壇)”이라는 최초의 도교집단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고종 황제도 도교 경전을 국가적 사업으로 발간할 정도였다. 수운의 천사문답이 상제와의 천사문답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난단도교의 전래로 당시 변화하고 있던 조선사회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63)
동학의 성립에 미친 도교의 영향은 주문수련과 동학가사에도 나타난다. 유교사회에서 동학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입되고 있던 도교의 영향이라고 한다. 동학사상은 당시 동아시아 전통의 문명이 집약된 도교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동학가사”의 경우도 신명과의 접함으로 인한 강필로 해석될 수 있다.64) 증산 또한 강절의 지식, 이태백, 두보의 시, 소진·장의의 언변이라는 동아시아 지성의 세가지 정수 곧 세 기운이 밝혔다고 한다.65) 실제 수운은 훗날 증산에 의해 도교와 관계되는 후천 선도의 종장(宗長)으로 임명된다. 이는 동학이 도교의 정수를 계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증산은 이를 천지의 작용(天地之用)인 12운성(運星)으로는 포태(胞胎), 그리고 구체적 형태로는 “조화”로 나타내었다.66)
동양사상에서 천관은 수련의 방법과 연관된다. 수련의 방법에서 천관은 집약되는 부분이 있다. 동학 수련의 가장 큰 특징은 주문수련이었다. 정통 성리학의 입장에서도 이는 예외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주문(呪文)은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정역’ 사례나 시조 낭송의 사례와 같이 유교에서도 일부 도입되고 있었다. “주문”은 불교의 경우 이미 염불로 널리 활용되기도 했지만 조선의 유교 주류 사회에서는 이례적이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이례성으로 인해 동학은 더 널리 퍼지게 되었다.67) 주문수련의 경우 오늘날 서양의 영성수련에도 이용되고 있는 동서고금의 보편적 수련방법이었지만 한국의 경우 동학에 의해서 비로소 일반 대중의 자기 수련에 도입되고 후에 신종교에서 널리 사용되었다.68)
유교의 경우도 동학의 성립에 많은 역할을 했다. 동학은 실제 증산에 의해 유교의 전헌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69) 먼저 동학은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는 대표 주문 시천주의 사례에서 내용에서 보듯이 성리학에서도 강조되는 기(氣)의 역할을 강조한다.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70)과 같이 동학은 “이(理)”보다 “기(氣)”를 강조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동학은 상제를 제외하고는 도교의 신명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유교적 차원의 “기”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교적 신명이 강조되지 않는 수운의 상제관 또한 유교적 천관의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안유경은 동학이 “기”를 강조하지만 동학의 성립 배경에는 퇴계로부터 이루어지는 이(理)의 확립에서 다산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동학이 한국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퇴계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71)
전체적으로 보면 수운의 동학 이해에서 상제관 등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유교의 전헌 안에 있고 술수 등 형이학적인 부분에서는 도교가 적극 수용되었다.72) 실제 동학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술수”의 힘도 컸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에서도 동학농민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큰 힘 중 하나가 술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는 유교의 전헌 안에 있고 형이하학적인 술수 측면에서는 도교의 술수에 능했다는 것은 동학의 유교적 전헌을 오히려 더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황현(黃玹, 1855-1910))의 『오하기문(梧下記文)』에 나타나듯 동학은 실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입하는데 그 가입 목적은 매우 다양했다.73) 증산은 실제 같은 동학 참여자라도 신분해방을 위해 노력한 전명숙(全明淑, 1855-1895)을 높이 평가하고 많은 동학 참여자들이 겉으로는 보국안민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왕후장상을 꿈 꾼 사람들로 간파한다.74) 왕후장상을 노리고 동학에 참여한 사람은 술수에 능한 동학에서 충분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윤이흠은 따라서 동학은 일반인에게 『정감록』의 사상이 보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후 신종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75)
동학의 성립에 대해 불교가 미친 영향은 간접적이었다. 불교의 영향은 수운이 피신한 곳이 은적암이었고 동학의 주문이 염불과 유사하다는 관계 정도에 있다. 동학농민운동이 처음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선운사 미륵상의 배 안에 있던 이서구(李書求, 1754-1825)가 쓴 책을 접주 손화중(孫華仲, 1861-1895)이 빼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연법과 같은 전생과 조상에 대한 믿음은 동학에서 강조되지 않아 대순사상과 같은 해원사상도 동학사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불선 뿐 아니라 동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음양사상이다. 음양사상 또한 넓은 범주의 도교에 포함될 수 있지만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동학은 유교의 주역사상에 나타난 천지관 같이 “천지가 귀신이고 귀신이 천지”라는 유교적 음양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하늘 밖의 하늘을 강조하는데서 동학은 시작하여 서학과 유불선을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려 하였지만 신명과 같은 개념을 도입하지 못한 동학사상은 아직 유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신명을 강조하는 대순사상의 음양관과는 다소 다른 성격이었다.
유불선과 같은 사상적 배경 뿐 아니라 동학이 성립한 것은 당시 외세에 대한 공포와 그 반작용인 민족감정의 영향으로 수운과 증산의 사상에 개항기 서구 침략에 대한 대항의식이 나타난다고 한다.76)
내 또한 동방에서 태어나 동방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天道)이나 학은 동학(東學)이다77)
동학은 일본에 대한 대항에서 나아가 서양에 대한 대항으로 확대한다. 동학 이후 “동”이란 개념은 중국에 대한 한국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서양에 대한 동양을 나타내는 의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리학”과 같이 사회운동으로서의 “학”이라는 개념으로 출발한 동학은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내면화하게 된다고 한다.78)
동학 성립 당시 동학 지도자들의 국제정세 인식은 중국에 국한된 범위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동학가사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크게 나타나는데 이 또한 세계를 중국 중심으로 해석한 유교의 전헌에 가깝다.
결국 수운의 동학 이해는 수운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깊은 학문 그리고 순수한 마음이라는 바탕 위에, 정감록의 민족주의 영향, 신분제 철폐에 대한 의지,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 등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전개되는 동학농민운동 또한 이러한 성립배경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동학은 대순사상에 비해 이치를 강조하지 않고 기운을 강조하며 이를 김지하는 동학사상에 비해 대순사상은 일상을 강조한다고 한다.
동학사상의 천관은 결국 천외천인 초월천을 강조하고, 천지로 구분되는 내재천을 강조하지 않는 서양 천관과 달리, 천지로 구분되는 내재천을 강조하고, 천외천인 초월천을 강조하지 않는 동서 천관의 대립 양상 속에 그 해결책으로 출현한다. 동학사상의 천관이 가지는 자생적 근대성은 이 해결책에서 성과 속을 재편하고 동서고금의 천관을 포함하며 초월한다. 동학사상의 천관은 동양 유불선의 장점을 최대한 수용하려 하고 서양 천관의 우수성도 포용하고자 한다. 동학사상의 천관이 가지는 이 이중성은 일찍이 김경재 등에 의해 범재신관으로 불리어진 바 있다.79) 그러나 기존 범재신관은 근대성과의 연결을 통하여 그 발생 배경이 충분히 드러내지 않은 점이 있다.
근대성은 서양에서는 과학의 문제였지만 동양인에게는 인종 청소를 당하느냐 아니냐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오늘날 근대성 문제는 학술적 차원의 논의를 하지만 당시에 근대성은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오늘날 근대성은 동양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절멸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어렵게 성립된 동학사상의 천관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시천주(侍天主) 천관의 리미널리티 양상
동학은 자생적 근대성이 필요한 시기에 ‘무극대도(無極大道)’라는 개념을 새로운 천관으로 우선 제시한다. ‘무극대도’는 하늘위의 하늘, 곧 태초의 우주와 연관된다. 이는 서양의 근대성이 이슬람과 몽고의 침입이라는 동서 충돌의 상황에서 원자론이라는 새로운 천관까지 발전한 것에 비교될 수 있다. 천외천을 통하여 동서양의 천관을 포함하고 초월하는 동학의 천관은 동서양의 천관에 나타난 계통발생을 개체발생으로 반복한다. 이는 성과 속의 경계를 재배치하여 이룩되는 리미널리티의 자생적 근대성을 보여준다.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신령한 기운이 접하고 안으로 말씀이 가르침으로 내리는데, 보려 해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아 마음이 오히려 괴이하고 의아해지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吾心卽汝心].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고,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나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자연한 이치 아님이 없으므로 한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신령한 기운을 받는[降靈] 법을 짓고, 한편으로는 천주를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절차와 도법이 오직 스물 한 자[주문]를 가지고 될 따름이었다.”80)
위 예문은 수운이 무극대도를 받는 때를 서술한 부분이다. 무극대도’가 무엇이며 왜 동학을 ‘무극대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위 예문 『동경대전』「논학문」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동학을 무극대도라고 표현한 부분은 『용담유사』에서도 여러 번 출현하지만81) ‘위 예문이 상세하다.
무극이란 음양이 구분되기 이전의 상태인 태극보다도 이전의 상태를 말하므로 태초의 우주와 연관된다. 천관의 측면에서 본다면 하늘 밖의 하늘, 천외천(天外天)에 해당한다. 따라서 무극대도라는 것은 태극의 이치를 밝혔다는 기존의 성리학이나 천주를 밝혔다는 서학이나 우주의 실체를 깨닫는다는 불교를 뛰어 넘는 하늘 밖의 하늘의 도를 의미한다. 이에 위 예문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에서와 같이 무극대도는 ’무궁무궁한 도‘가 된다.
무극대도가 ‘무궁무궁한 도’가 되는 이유를 위 예문에서는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吾心卽汝心].”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나의 마음인 오심(吾心)”은 “하늘 위의 하늘” 곧 천외천의 마음이고 , “너의 마음인 여심(汝心)” 은 수운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는 천외천 곧 무극의 마음이 곧 인간의 마음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천지인의 기원이 되는 천외천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과 같다는 말로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가 무극과 마음이 통하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므로 “무극대도”가 되게 된다.
기존의 무극과 동학의 ‘무극대도’가 천관과 관련하여 가장 다른 점은 천사문답, 강필과 같이 인간과 직접 소통하는 ‘무극’ 곧 상제가 처음 출현한 점이다. 심지어 수운은 초기 천사문답에서 상제의 의도를 계속 의심하고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켜 오히려 상제의 신임을 얻는다. 인간과 직접 소통하는 무극이라는 동학의 천관은 동양의 동화적 천관과 서양의 형상적 천관을 충돌 없이 조화하는 천관으로 나타난다.
동양의 경우를 보면 ‘무극대도’는 먼저 그 명칭에서 동양의 대표적인 상관적 사유인 무극-태극-음양오행의 전통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동양의 동화적 천관과 부합된다. ‘만고 없는 무극대도’라는 표현은 상관적 사유가 완성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82) 나아가 ‘무극대도’라는 표현은 무극대도가 동양에서 종교로 전개된 유불선의 상관적 사유를 동학사상이 계승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 유불선은 천지인이 합일되는 상관적 사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동학의 대표적인 시천주 사상은 절대적 존재를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유불선이 초월천으로 성숙되는 형태라는 선행연구들이 있어 왔다.83)
다음 서양의 형상적 천관의 경우는 동학의 ‘무위이화’ 개념에서 나타난다. 동학에서 처음 사용되는 “무위이화”는 도교의 “무위자연”과 서학의 “조화”를 연결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무위이화는 음양조화라는 천계·지계·인간계 내 조화를 창조주와 삼계를 연결하는 천외천의 조화까지 연결하는 의의가 있다. 동학은 조화에서 창조의 개념을 강조하는 조생자(造生者)로서의 인격신적인 천외천 개념을 재활성화한다. 수운은 주문을 해석하면서 ‘조화(造化)’란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의미하고 ‘정(定)’이란 ‘합기덕(合其德), 정기심(定其心)’을 의미하다고 풀었다.84)
동학사상의 천관과 동양 천관과의 차별점은 시천주에 나오는 “조화”개념이라고 한다. 조화는 동학사상의 핵심 주제어로 동양의 천관을 넘어 동서양 천관을 연결하는 핵심 주제어였다85).
조화는 동서양의 전통적 사상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첫째 어원적으로는 창조와 진화의 준말이다, 이는 됨과 생성, 보존과 창조, 음양의 원리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둘째, 실제 종교용어에서는 음양의 조화, 음양오행 조화신장 등으로 나타난다. 대순사상에서는 동학사상의 ‘작란’과 대순사상의 ‘치란’도 다 조화라고 하고86) 서학의 창조주에 해당하는 조화주의 원래 이름이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었다고 한다.87)
서양의 경우 “조화(Harmony)”는 “평화”를 의미하는 성경의 주제어였다. 성경에서 조화는 “질서”와 “평화를 의미하는 하늘의 상징이었다. 서학과 동양의 도교에서도 조화는 천, 지, 인의 속성으로 강조되었다, 그러나 서학의 조화는 분석적 사유의 조화이고 도교의 조화는 상관적 사유의 서로 다른 조화였다. 조화와 같은 상반되는 요소의 새로운 조합을 인류학에서는 경계를 뜻하는 리미널리티로 이해해 왔지만88) 동학사상은 새로운 상관적 사유의 조화 개념으로 두 조화를 연결한다. 동학사상의 조화는 ‘시천주’, ‘무위이화’, ‘천지귀신’, ‘내유신령 외유기화’ 등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이 4가지 조화는 기존 도교와 서학의 조화가 연결된 개념으로 천관이지만 초월천의 입장에서는 천지의 성격에 해당되므로 지관에 해당되기도 한다.
먼저 “조화”는 ‘무위이화’의 형태로 동학사상에서는 나타난다.89) ‘무위이화’를 살펴보면 수운은 동학의 핵심을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총결한다고 한다.90) 수운은 동학을 ‘무위이화’라고 하고 무위이화는 신령한 지기의 조화작용 전체를 말하며91)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며 본성을 따르고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조화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그가 공경한 천주는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기화(氣化)의 신령(神靈)이며 그가 영접한 신은 무위이화의 조화를 통해 작용하며 세계의 모든 곳에 편재한다고 한다. 그는 “기(氣)라는 것은 허령창창(虛靈蒼蒼)하여 모든 일에 관여하며 모든 일에 명령하는 혼원(渾元)한 하나의 기(氣)”92)라고 한다.
동학이 무위이화를 통해 동양과 서양을 연결한 것은 전통과 근대의 이중대립을 리미널리티로 중재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실제 『시경』에 드러나는 동양 전통의 창조주로서의 상제는 『성경』「시편」 창조주와 5가지 인격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93) 이 중 창조주로서의 속성이 드러난 문구는 중국 고전에서는 『설문해자』94)와 『시경』95)을 통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고 한다.
인격적 천령과의 접신 후에도 수운은 도교와 연결하여 천주의 가르침을 비인격적인 자연의 조화와 운동 원리로 설명한다. 수운의 체험이 앙학(洋學, 서학)과 어떻게 다른지 묻자 그는 천운(天運)도 같고 천도(天道)도 같지만 그 이치[理]가 다르다고 부연했다. 수운이 언급한 이치의 차이는 배움의 방법, 즉 학(學)의 차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96)
수운의 천사문답은 또 역으로 하늘이 수운을 선택한 이유도 짐작하게 해 준다. 수운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처럼 현실적인 성공을 제안하는 상제의 건의를 다 거절하고 심지어 기존 유불선을 통한 성공마저 거절한다.97) 동학의 시천주라는 개념은 이러한 상제와의 진솔한 대화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신임관계는 동학농민운동시 동학농민운동 참여자는 총알도 막을 수 있다는 신념까지 확대된다.
수운의 천사문답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점은 하늘이 스스로를 나타날 인물로 수운과 같은 가장 문제적 인물을 택했다는 점이다. 하늘은 기존의 기득권도 아니고 하층도 아닌 매우 중간적인 존재인 수운에게 나타났다.
수운은 당시 그 시대가 배출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였다.98) 수운은 가장 정통적인 성리학 종통에 있는 가장 탁월한 학자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서자보다 낮은 재가녀의 후손이라는 지위에 있어야 했고 그마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까지 화재로 타버리자 수운은 전국을 유랑하며 생계를 유지해야했다. 결국 수운은 유랑마저도 녹록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다. 하늘이 나타난 분이 수운과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신뢰를 가졌다. 불운한 수운이었지만 수운 또한 아버지 못지않은 비범함이 있었고 술수에도 능하다는 의미의 ‘복술’이란 호도 있었다.
동학사상의 조화개념이 서양과 다른 점은 상관적 사유의 조화라는 점이다. 동학의 시천주사상이 보여주는 상관적 사유가 전통의 연속과 변화라는 점이 유불선 사상의 전통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는 선행연구와 더불어 인식론적 측면에서의 선행연구도 활발하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상관적 사유의 인식론적 측면의 연속과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선행연구가 있어 먼저 선행연구 분석을 통해 그 개요를 살펴볼 수 있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상관적 사유에 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려면 다시 상관적 사유의 정의에 대해서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상관적 사유는 부분과 부분이 상호 연관된다는 뜻의 상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상관적 사유지만 부분이 부분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국 전체에서 부분이 연결되는 것은 결국 전체와 부분을 통일적으로 보는 유기체이론이나 전체의 관점에서 부분을 살펴보는 홀리스틱이론 혹은 전식적(全息的)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상관적 사유란 확대되어 정의한다면 유기체적 사유나 전식적(全息的) 사유를 포함한다.
동양의 사유인 상관적 사유를 전식론(全息論)이나 유기체론까지 확대한다면 동학에 대한 상관적 인식관점의 선행연구는 국내외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연구로 확대된다. 앞서 해외 사례를 살펴보았으므로 국내의 경우를 본다면 좁은 범위에서 국내에 상관적 사유를 번역 소개한 이창일의 연구를 들 수 있다. 동학사상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았지만 이창일의 연구는 동양사상에 대한 연구는 우선적으로 상관적 사유로 접근해야 된다는 서양의 동양사상 연구의 주요 방법론을 국내에 소개하고 동학사상에 큰 영향을 준 소강절의 철학을 상관적 사유의 방법론으로 분석했다.99)
동학이 ‘개벽’이라는 용어를 통해 동아시아 전통과 단절된 사상을 주장하는 듯 보이지만 동학사상에 나타난 동학의 정의는 ‘동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글 「논학문」에서 보듯이 동학은 상관적 사유의 대표적인 이론인 음양오행에 바탕하는 학문임을 정의하고 있다. 실제 상관적 사유에 대한 이론가들에게 대표적인 상관적 사유의 이론가로 지목된 신유학의 음양오행 이론가 소강절은 동학사상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지목받고 있다.100) 동학사상의 ‘다시 개벽’이란 용어 또한 소강절의 영향 속에 있던101) 조선시대 후기 지식인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용어였다.102)
전식론(全息論)이나 유기체론까지 확대한다면 동학사상에 나타난 상관적 사유에 대한 국내의 선구적 연구는 김상일에 의해 진행되었다. 김상일은 동학을 ‘신서학’이라 정의하고 동학을 화이트헤드 과정사상의 선구적인 동양버전으로 해석한다.103) 이후 김상일은 동양사상을 “한철학”이라 명명하며 동양사상을 프랙탈 과학까지 확대하여 고금의 서양 사상 전반과 비교하여 동학의 상관적 사유에 나타난 특징을 이론적으로 전개한다.
동양에서 조화가 가진 용어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용어는 시천주이다. 동양의 무극대도와 서양의 무위이화로 나타나는 동학의 천관은 시천주로 종합된다. 시천주는 특히 동학사상의 천관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시천주조화정”이라는 동학의 대표 주문에서 나타나듯이 시천주는 조화의 근본이다, 동학과 성리학의 공통점을 연구해 온 연구자들은 동학의 시천주의 조화가 내용적으로는 성리학적 의미의 조화와 유사하며 동학의 다른 구절 “기화”, “무위이화”를 총괄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동학의 「논학문」에서 ‘시(侍)는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지인, 각지불이(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라고 한다.104) 이는 “시천주”의 뜻이 신령한 마음과 기화하는 몸을 지니는 것임을 온 세상 사람이 깨달아서 그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 곧 창조적으로 진화[造化]하는 본체[體] 곧 “지기”로 다 같이 귀일(歸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천주가 곧 동귀일체이며 “조화”라고 한다.105)
시천주가 곧 내재적 초월이라는 점에서 동학사상은 기존의 유교 및 도교와 수양의 방법을 공유한다.106) 다만 동학사상은 유교와 달리 이법을 도교와 같이 실체화하였고 도교와 달리 창조주라는 인격신이 등장한다. “시천주”를 통한 동학사상의 조화에서는 유교나 도교와 달리 “숨은 신”이 등장한다. 조화에서 진화의 측면만 강조되어 온 도교 전통보다 동학사상에서눈 동서융합의 측면에서 창조의 측면이 강조된 것이다
“시천주”가 서학과 공유하는 공통점은 인격신의 등장뿐 아니라 인격신과의 만남 장면이다. 이에 대해 서학과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연구자는 수운의 천사문답은 사도 바울의 경험과 유사하다고 한다. 과거 한국인의 종교체험에서 하느님을 수운과 같이 직접 만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이점에서 동학의 천주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평가한다. 단 수운은 동양의 자기 성찰 방법인 내면적 초월을 한국의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으로 조화했다고 설명한다.107)
동학사상의 천관에 나타난 자생적 근대성은 천외천과 인간 마음의 소통, 여기서 성과 속의 재배치, 곧 탈경계의 리미널리티의 출현이다. 이는 정치·사회 사상으로는 상놈을 양반으로 만드는 신분 상승의 의미도 되고 천지인의 관계에서 홀대받던 땅과 인간의 지위상승도 된다. 천외천의 출현을 통하여 동서양의 천관을 포월하는 동학의 천관은 동서양의 천관에 나타난 계통발생을 개체발생으로 반복하며 리미널리티를 통한 자생적 근대성을 보여준다.
조화정(造化定) 지관(地觀)의 자생적 근대성
서양의 질료적(質料的) 지관
천관이 천외천인 초월천을 강조하는가 혹은 천지로 구분된 내재천을 강조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지관(地觀)도 달라진다. 초월천의 입장에서 지(地)는 천지로 구분된 천지를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 되고 천지를 음양의 내재천으로 간주하지 않는 서양의 실체위주의 존재론적 우주관에서는 천지. 특히 땅은 형상이 실현되는 질료적인 존재로 된다.
서양의 질료적인 지관은 천외천인 초월천을 이데아로 간주하는가, 유일신으로 간주하는가, 혹은 유물론적 이성으로 간주하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천외천인 초월천을 유물론적 이성으로 간주하는 오늘날 질료적인 서양의 지관은 원자론적 세계관이 되었다.
만물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졌다는 근대의 원자론적 세계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마테오 리치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양도 지수화풍의 존재론적인 상관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108) 다만 서양의 지수화풍이라는 상관적 세계관이 동양의 음양오행의 상관적 사유와 다른 점은 마테오 리치와 같은 예수회 신부들이 이야기했듯이 지수화풍은 실체로 된 상관적 사유이고 음양오행은 속성으로 이루어진 상관적 사유라는 점이었다.109) 원자론적 세계관은 지수화풍의 실체론적 속성을 분석적 방법으로 극대화시킨 이론이었다.
“만물의 근원은 물 ”이라는 탈레스의 세계관은 만물을 “물”이라는 실체로 설명하는 실체론적 상관적 사유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후 엠페토클레스의 4원소설이 확대되고 4원소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수용되어 향후 마테오 리치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지수화풍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와110)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에서도 적용되어 4원소의 가운데 있는 제5원소가 다른 4원소의 균형을 이루는 체계이다.111)
지수화풍을 엠페토클레스가 도입하긴 했으나 지수화풍은 그 이전 이미 유럽-인도어족의 공통된 세계관으로 전해져 온 바 고대 인도 브라만의 우주관에도 지수화풍은 나타나며 이를 계승한 불교의 세계관도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지수화풍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쳐 중국의 수화풍 삼재론이 되기도 했다. 불교의 천계관이 나타나는 『아비달마구사론』의 세계관에서 세계는 지수화풍의 바퀴 위에 떠 있는 존재로 나타나고 그 위에 “철위산”이라고 불리는 “금강산”이 우주의 중심을 방위하며 그 중심 위에 수미산이 28천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112) 이 지수화풍의 천계관은 중국 도교의 삼재관과 결합하여 36천이 되며 후대 대순사상의 천계관에도 나타난다.113)
지수화풍을 서양의 상관적 천관·지관·인간관 이론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지수화풍에 내재한 상관적 원리 때문이다. 인도-유럽어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3기능 체계로 이는 뒤메질이 밝힌 바 있다. 뒤메질은 인도-유럽 신화의 3기능 체계가 유럽의 천관·지관·인간관으로 발전하는 배경은 3기능 체계와 지수화풍이 상승과 하강이라는 동일한 원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임을 밝힌 바 있다.114)
뒤메질은 인도-유럽어족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에서는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상층부의 종교기능, 중층부의 군사-정치기능, 하층부의 생산-미학 기능이 나타난다고 한다. 뒤메질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트로이 전쟁에 나타나는 세 여신 헤라(종교)-아테네(정치)-아프로디테(생산)의 삼기능이 인도신화의 미트라-바루나-아리야만 구조와 같음을 밝힌 바 있다.115) 3기능 체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불교적 삼계와도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지수화풍과 3기능 체계는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여 동서양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의 천지인 삼재에도 그 영향이 나타난다. 천지인 삼재를 근거로 하는 동양의 삼계 곧 천계, 지계, 인계는 서양의 3기능 체계와 공간적 구분은 유사하지만 “실체”보다는 “속성”을 강조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같은 “수(水)”, “화(火)”지만 지수화풍의 “수(水)”“화(火)”와 음양오행의 “수(水)”,“화(火)”가 다른 것은 실체와 속성의 차이가 된다. 따라서 두 체계를 비교하면 “수(水)”“화(火)”의 기능은 서로 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늘 밖의 하늘 곧 초월천의 형상이 실현된다는 의미로서의 서양의 질료적 지관은 근대 물질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물질에 치우친 서양의 질료적 지관은 신우주의 신명체계를 송두리째 붕괴시켜 천하를 오히려 진멸지경으로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어 근대성 위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동양의 응축적(凝縮的) 지관
서양의 질료적 지관이 하늘위의 하늘, 곧 초월적 천의 속성에 따라 이데아, 유일신,유물론적 형상에 따른 질료적 지관으로 다르게 나타난 것과 달리 동양의 응축적 지관은 초월천과 천지로 구분된 내재천, 그리고 천지신명의 역할에 따라 세가지로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천을 초월천으로 보는 경우 지는 천지를 모두 포함하고 초월천인 상제에 대해 땅 개념으로서의 천지는 신명으로 상제의 천지화육의 뜻을 역할을 분담해서 실행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때 하늘은 동화, 땅은 응축의 역할을 하게 되어 땅은 천지의 기를 형체, 혹은 그릇(器)으로 실현하는 존재가 된다. 이를 역학에서는 건곤으로 표현해 왔다. 역할이 분담됨에 따라 하늘의 신은 동화하는 역할, 땅의 신은 응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하는 신명이 임명되는 것은 하늘에서 조정하므로 전통적으로 하늘의 신은 천신(天神), 땅의 신은 지기(地示), 사람의 경우는 인귀(人鬼)로 서술되어 왔다.116)
오늘날 천지인 삼재와 음양오행은 공통적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속성“을 ”실체“보다 강조한다. 음양, 삼재, 오행은 천과 지의 관계를 각각 다른 관점에서 표현한다. 음양의 경우 다시 구분되는데 서양과 같이 형상적인 초월천과 내재적인 천지를 포함하는 질료적 땅 개념으로서의 음양이 있는가 하면 동양과 같이 내재천을 강조하는 동화의 천과 응축의 땅으로 구분된다. 반면 삼재는 이 동서양의 천관을 모두 통합하는 점이 있다. 곧 초월천, 내재천, 내재지가 3개가 모여 삼태극 삼재를 이룬다. 오행은 이 음양과 삼재가 만나 삼재관이 음양으로, 음양이 삼재관으로 확대된 개념이 된다. 세 사상의 기원을 추적하면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세 사상이 만난 것으로 나타난다. 지수화풍과 음양오행이 어느 쪽에서 영향을 주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호 관계 속에서 음양, 오행, 삼재 사상이 생겨났고 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합하여 나타난다.117)
동양의 천, 지, 인은 계통발생이 개체발생을 반복하므로 천지의 관계를 설명하는 건건곤순(乾健坤順)은 땅의 응축이 하늘의 동화를 포함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곤도(坤道)는 『역전((易傳)』에 상세하게 나타난다.
지극하도다! 坤元이여! 만물이 坤元에 바탕하여 생겨난다. 이로써 순히 天道를 이으니, 坤의 만물을 싣는 두터운 덕이 끝이 없으며, 머금으며 넓으며 빛나며 커서 만물이 다 형통한다.118)
위 예문에서 땅은 곤의 작용으로 하늘이 동화한 기운을 응축하는 그릇과 형체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이영란의 리미널리티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천(1)이 지(1+2)의 리미널리티로 발전하는 것이다.119)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신화에서 천계, 지계, 인계의 구분이 나타나는 것은 요순시대 최고 문명민족이었던 공공족으로부터이다.120) 유물과 기록으로는 전국시대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대순사상에서 나타나는 지하 문명신처럼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 민족인 공공족은 신화에서 지하신으로 나타난다.121) 지하에 문명신이 나타나는 것은 천지를 상관적으로 바라보는 상관적 사유에 기인한다.
내재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땅은 초월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땅보다 훨씬 생명과 관계되고 비중이 증대된다. 풍수지리와 제사는 전통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생태학에서 땅은 오늘날 하늘만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자생적 지리학이라 할 수 있는 풍수지리학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지관이었고 이는 음양오행에서는 음양오행의 중심을 의미하는 토의 중요성으로 나타났다. 천관·지관·인간관에 있어 상관적 사유가 중요한 것은 상관적 사유가 상생의 근거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땅의 중요성은 상생적 천관·지관·인간관의 주요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능력은 더 있었지만 지위는 낮았던 땅의 지위상승, 곧 정음정양(正陰正陽)이 인간의 해원(解冤), 곧 상생(相生)을 위해서도 핵심이 된다, 동학사상의 ‘다시 개벽’과 대순사상의 ‘삼계개벽’의 큰 차이도 상생에 있다. 대순사상의 삼계개벽은 상생을 이야기하고 상생을 위해 해원을 이야기한다. 해원은 신명을 통해 가능하고 상생은 음양의 지위 균형이 이루어진 후 해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지관에서 땅의 중요성은 천지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용어에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천원지방은 하늘이 둥글다는 지동설로 밝혀진 천동설의 잘못된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지위원 지도지위방(天道之謂圓 地道之謂方)"의 준말로 시간을 나타내는 "주"의 1차원적 성격, 공간을 나타내는 "우"의 2차원적 성격을 말한다 할 수 있다.122) 주역의 하늘은 "건"이라 하는데 이 "마를 건"은 "새 을(乙)"작용을 하는 시간의 마른 속성을 나타낸다.
삼천양지(三天兩地)는 하늘은 3의 원리, 땅은 2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주역의 핵심개념이다. 주역은 자연을 상징하는 천지인을 아버지-어머니-아들이라는 가족관계로 이해해 왔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하는 천지의 속성을 대비시키는 명제를 풍부하게 만들어냈다. 삼천양지(參天兩地), 천원지방(天圓地方), 천장지구(天長地久), 천도지덕(天道地德)은 모두 아버지-천은 삼(參)-원(圓)-장(長)-도(道)을 의미하고 어머니-지(地)는 양(兩)-방(方)-구(久)-덕(德)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천지인과 정신분석학의 복잡계적 해석은 오이디푸스 콤플랙스(Oedipus Complex와 거의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복잡계적 이해로써 삼수분화(三數分化) 체계는 프랙탈 미학의 하나로 볼 수 있고 삼수분화체계가 가진 대칭성은 그리스 미학의 기본명제였다.
전통사상에서 땅은 천지인과의 상관관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통사상은 자생적 근대성보다는 신학이나 신화로 이해되어 오다가 대종교 등을 통하여 자생적 근대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123) 삼수분화체계는 만물을 천지인이라는 3가지 구성물의 복잡계적 확대로 보는 체계이다. 삼수분화체계는 서양에서는 칸트의 3원체계, 프로이트의 아버지-어머니-아들, 성부-성자-성신, 동양에서는 천지인체계로 각각 만물의 공통적인 내면 구조로 인식되어 왔다.124) 삼수분화체계는 오이디푸스구조가 가진 대칭성이라는 관점에서 동서양이 공통된다. 삼수분화체계는 인문-사회-자연과학을 통합적으로 조명한다.
정재서는 중국의 신화학은 앙띠-오이디푸스의 신화학으로 서양의 신화학과는 구분된다고 한다.125) 기독교 신학에서도 아버지 역할뿐 아니라 땅과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학으로 천지인신학이 등장하고 있다. 생태 신학등에서 땅과 인간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을 기존의 신학과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단군신화와 한국 고유의 삼수분화적 세계관인 천지인 사상에 나타난다.126) 다만 천지인 신학 또한 도교적인 신명관이 없는 기독교신학이므로 땅의 신이 어머니와 같은 신이라는 주장까지는 하지 못한다.127) 허호익은 천지인 신학과 관련된 신학 연구자로 윤성범128), 김광식129), 박종천130), 유동식131) , 이정용132), 이은선133), 서남동134) 등을 거론한다.135) 김흡영은 유사한 논리로 기존의 신학을 아버지를 강조하는 로고스 중심의 신학,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프랙시스 신학, 그리고 바람직한 신학으로 제3자를 강조하는 우주-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도-신학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한다.136) 이은선은 여성학자로서 한국적 신학의 특징을 황필호와 함께 천지인의 가종(加宗)으로 해석하기도 한다.137)
태극을 창조와 보존의 원리로서의 복잡계 과학적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음양의 개념은 동양철학을 존재론적으로 연구해온 중국철학자 모종삼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서양철학이 '실체'(實體)의 관념을 통하여 인격신(人格神. personal God)을 이해하지만, 중국철학에서는 작용(作用. function)의 개념을 통하여 천도(天道)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한 작용의 관점에서 존재를 볼 때 건원은 창조성 원칙이고, 곤원은 이른바 보존의 원칙이 된다고 한다.138) 대순사상은 태극이 원에서 기원한다고 하므로 모종삼이 태극을 원운동의 작용으로 본 것과 일치하며 만물을 복잡계적 원운동으로 보았으므로 태극을 복잡계의 기본원리로 보았다 할 수 있다. 원운동에서 대칭성, 비대칭성, 초대칭성이 생긴다 할 수 있다.
하늘 밖의 하늘에서 형상의 질료로서 땅을 바라보는 서양과 달리 초월천의 천지화육의 실천이 응축되는 곳으로서의 동양 지관은 서양과 달리 땅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풍수지리와 같이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성리학이 초월천을 배제함에 따라 동양의 땅은 내재천의 짝으로만 전락하여 동양의 상관적 사유는 고착화되었다. 서양의 실체적 사유는 상극의 기조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음에 따라 두 지관은 근대에 이르러 충돌하게 된다.
동서양 지관(地觀)의 충돌과 상극화(相克化)
지관(地觀)의 충돌
땅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던 동양인에게 땅을 질료로 대하는 서양인은 매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호 균형을 이루던 두 세력은 마테오 리치 이후 급격히 서양으로 기울어졌다. 지관과 관련한 동서양의 충돌은 크게 두 단계로 나타났다. 첫째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 나타난 초월천에 입각한 질료적 지관이 주는 세계관적 충돌과 둘째는 보유론(補儒論) 논쟁 이후 동양에서 물러난 서양이 다시 무기를 들고 나타난 물질적 충돌이었다.
먼저 세계관적 충돌을 살펴보면 서양의 질료적 지관에 전제된 존재론적 세계관과 동양의 지관에 내재한 응축적 지관의 충돌이었다. 동양의 이기론이 동양사상 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 가장 가까운 사상이었지만139) 마테오 리치의 비판에 무너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수화풍 4원소설과 4원인설이 당시 과학수준에서 신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140) 당시 과학수준에서는 실체를 따로 인정하지 않는 음양오행과 이기론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따르면 논리적이지 않은 이론이 된 것이다.
서양의 지수화풍과 비교해 볼 때 음양오행에서 토와 목화금수의 관계는 동서양이 명확히 차이 나는 부분이다.141) 서양의 지수화풍 또한 동양의 음양오행의 토와 같은 역할의 제5원소 에테르를 가지고 있었다.142) 다만 서양의 제5원소는 유일신과 같이 지수화풍과는 별개의 존재였지만 음양오행의 토는 별개의 존재이면서도 목화금수와 운행을 함께하는 내재적 존재라는 점이 달랐다. 소강절의 음양오행적 신인관계는 초월적인 서양의 신인관계와 내재적인 동양의 신인관계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기에 향후 재조명된다.
마테오 리치는 음양오행을 비판할 때 지수화풍과 같이 음양오행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143) 4원인설은 마테오 리치가 살던 17세기까지도 우주를 설명하는 서양의 가장 합리적인 이론으로 간주되어왔다. 마테오 리치는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자이기도 했지만144) 음양오행을 비판한 것은 원자론의 입장이 아니고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음양오행과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지수화풍 이론이었던 것이다.145)
불교 이후 존재론적 자연관을 처음 접한 당대 동양 지식인에게 지수화풍이 비록 상관적 사유였지만 세계관의 붕괴에 이를 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학의 동양수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제사의 문제였다. 서양은 전례논쟁이 교황청의 입장 문제였지만 새로 나타난 동양의 서학 신자들은 목숨을 걸고 서학을 믿게 되어야 했다. 세계관의 충돌은 서학의 금지에 의해 동양의 승리로 나타나는 듯 보였다
다음 물질적 충돌은 수운이 동학을 창도하는 시점을 전후하여 급속히 나타난다. 베이징조약 등 서양에 대한 중국의 패배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루쉰(鲁迅, 1881-1936)의 『아큐정전』에 잘 나타나듯 충격에 바진 중국인은 서양의 지배로 인종청소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정신승리와 같은 정신분열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은 전국시대 주나라의 봉건체제가 무너지듯 또, 한번 천이 붕괴되는 경험에 봉착했다. 소련이 달나라에 로켓을 보내자 전 미국인이 러시아 핵의 위협에 떨어야 하는 상황과 같았다. 수운은 방랑생활을 통해 일찍 서양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용담유사』에는 당시의 충돌을 잘 묘사하는 부분이 나타난다. 이에 자생적 근대성은 동양에서 매우 절실한 문제로 다가왔다.
천지관계의 상극화
천관과 지관의 변화는 전통적인 천지관계도 변화시켰다. 먼저 서양의 경우 마테오 리치의 동양문화 소개는 초월적 천관, 지관으로 이루어진 서양 문명에 동양의 내재적 천관, 지관이 도입되어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나타난다. 당초 천지의 속성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음양오행은 서양으로 건너가 실체적 관계를 설명하는 자연과학에 적용되어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서양에는 마테오 리치 이후 질량, 원소, 부피, 중력, 속도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과 다른 새로운 과학 개념이 도입되고146) 과학기술에 신속히 적용되며 사회는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화 되어 갔다.
내재천이 과학기술에 도입되어 물질문명은 발전했지만 오히려 서양의 경우는 제5원소와 지수화풍으로 대표되던 천지관계가 유일신과 만물이라는 상극관계로 전락된다. 연이어 또 지수화풍의 상관적 속성마저 사라진 원자론적 세계관으로 천지관계가 더욱 상극화된다. 근대과학은 객관성을 명분으로 지수화풍의 속성을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제거했지만 상극의 측면에서 보면 객관성은 명분으로도 볼 수 있다.
천지관계의 경우 지수화풍의 천지관계 상극화는 유일신에 대한 천존지비로 나타난다. 서양의 지수화풍의 개념에서 천은 제5원소 지는 지수화풍에 해당된다. 지수화풍이 출현할 당시는 ‘제5원소’란 영화에도 나왔듯이 제5원소는 기존 지수화풍을 연결시켜 주는 중심요소였다. 이 제5원소가 물질과 재리(財利)라는 이성으로 대체된 것이다.
서양의 제5원소는 동양의 ‘토’ 개념과 역할이 유사한데 서양이 다른 것은 동양과 달리 제5원소가 초월적인 입체라는 점이다. 서양은 제5원소라는 개념으로 입체를 인정해서 동양보다 발전한다. 다만 문제는 서양은 이 제5원소가 다시 평면으로 내재화되는 것을 연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입체에 머무르게 하여 고착되었다는 점이다. 제5원소가 기독교와 결합죄면서 제5원소는 오히려 초월성으로 고착된다.
서양의 경우 지수화풍의 상극화는 입자론으로 나타난다. 신명의 지위에서 박탈된 지수화풍은 이제 원자와 분자같은 부품으로 전락되어 인간의 지배하에 놓인다. 하늘과 땅의 관계는 절지통천(絶地通天)되어 더 이상 상호관계가 단절되고, 인간은 지배하려 하고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천지는 생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자연의 보복을 하는 존재가 된다.
서양의 초월천을 거부한 동양의 천지관계는 또한 급속도로 고착화된다. 초월천이 배제된 천지관계는 리미널리티의 요소가 누락되어 고착화된다. 천원지방, 천문지리 등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고전적 천지관계147)는 천존지비. 양존음비의 천지관계로 상극화되어 간다.
동양의 전통적 천지관계인 음양오행의 천지관계 또한 신명이 땅에 봉안된 지존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억음존양과 양존음비의 세계관으로 배제된다. 일음일양지위도, 천도지덕, 천원지방이라는 개념과 같이 천지관계는 수평적인 대응관계였지만 역사가 진행될수록 천존지비의 관계가 공식화된다. 동양에도 신봉어천(神奉於天), 신봉어지(神奉於地)라는 개념에 따라 지존의 시대라는 것은 알았지만 땅에 봉안된 지존의 신명은 명당이라는 기복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동양의 경우 천존지비라는 상극화가 진행되는 것은 지수화풍의 경우와 반대로 토의 내재화에 따른 상제 개념의 망각에 기인한다. 음양오행의 천관·지관·인간관 경우에 상극화된 천지관계는 토의 실체화로 나타난다. 당초 하늘과 땅을 동시에 의미했던 음양오행의 토 개념은 상극화가 되며 천의 개념이 퇴색되고 지의 개념으로 전락한다. 제5원소가 유일신으로 극단화된 서양과는 정반대의 상극화가 음양오행의 천지관계에서 전개된다. 포박자에 나타나는 토극수(土克水)와 같이148) 음양오행에서 토는 오행의 음양과 같은 핵심요소이다. 이 토극수의 물질화는 대순사상에 가서야 재활성화로 전환된다.
동학사상의 조화정(造化定) 지관(地觀)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동학사상의 조화정(造化定) 지관(地觀)
초월천에 대한 동학사상의 강조에 따라 지관(地觀)에서도 동학사상은 기존의 지관과 다른 지관을 보여준다. 천을 하늘 위의 하늘 곧 초월천으로 가정하면 땅은 기존의 천지, 곧 초월천의 조화대상, 무위이화, 기화의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동학사상의 지관에는 땅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조화, 무위이화 기화 등의 개념이 강조된다.
동학사상의 천관이 천사문답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동학사상의 지관은 천사문답 이후 수운의 숙고와 경험이 수반되면서 서서히 형성되어 간다. 수운의 많은 경험과 지식이 천사문답과 융합되어 지관으로 성립되어 가는 것이다.
실제 동학사상의 성립에는 서양의 근대성이라는 서양의 영향도 있었지만, 동양 사상의 내재적 발전도 영향을 미쳤다. 동학의 자생적 근대성이 성립되는 데 있어 동학사상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이 이와 같았다면 내부적으로는 중국 근세에 성립된 난단도교 등의 유입이 있었다. 천관뿐 아니라 지관 형성에도 도교의 영향이 강조되어 연구된 바가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통신도교(通神道敎)의 유입과 내단도교(內丹道敎)의 유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에 도입된 기존 도교는 북창 정렴(北窓 鄭磏, 1506-1549)의 『용호비결(龍虎秘訣)』이나 권극중(權克中, 1585-1659)의 『주역참동계주해(周易參同契註解)』에서 보듯이 수련 위주의 내단도교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관운장에 대한 신앙이 도입되고 중국에서 금서(禁書)화된 『옥추보경』이 무속 등에 널리 보급되면서 조선에서도 내단 도교에 대비되는 통신도교와 난단도교, 곧 주문과 부적으로 신과 직접 소통하는 도교가 널리 보급된다. 신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통신도교와 부적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난단도교는 명칭은 다르지만 내단도교와 비교해서 신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기적으로 내단도교가 통신도교보다 앞서 들어왔다. 내단도교가 양반에게 주로 전해졌다면 통신도교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 위주의 조선사회에 두 도교의 도입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지식인 사회에는 서학만큼의 영향력이 컸다. 중국 또한 청나라의 혼란기에 많은 도사들이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한다.
새로 유입된 도교는 서학과 관련하여 조선에서는 새로운 발전을 보였다. 당시 조선은 구한말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의 기록에 나타나듯이 모든 희망을 잃고 노동의욕이 고갈되어 대부분의 백성이 일을 포기한 상태였다. 한국의 대표적 천주교 유적지인 ‘천주교해미국제성지’에는 ‘야소무덤’과 같은 일반 백성으로 순교한 사람들의 무덤이 많이 있다. 당시 일반 백성은 보장만 된다면 죽음이 삶보다 나은 때였으므로 난단도교의 통신 도교나 서학의 천주 신앙이 일반 백성에게 큰 호응을 주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성리학 중심의 전통적 가치체계가 위기를 맞고 조선사회 전체가 정체성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조선의 경우 『천주실의』와 서학중원론이 동시에 수용되면서 정체성 논란이 일어난다. 1798년 면천 군수로 재직 중이던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천주교도를 설득하여 관대하게 풀어 주는 사례에서 보듯이 당시 성리학의 지식인들은 서학과 동학의 방법론적 차이를 숙지하고 서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에 새로 유입된 도교는 서학에 대한 대응으로 시선을 끌었다. 난단도교의 유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문과 영부라는 동학의 의례를 일부 양반 계층들이 큰 거부감 없이 수용한 이유도 설명해 준다. 동학 당시에도 일부 양반을 중심으로 난단도교와 관련된 수행을 독자적으로 하는 단체들도 후대의 동학이나 대순의 종단사에 나타난다. 결국 동학은 동서양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가운데 서양 근대성이 폐해가 노출되고 위기에 빠진 동양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제시된 사상이다.
동학사상 성립의 배경이 서양 근대성의 동양적 기원과 난단도교의 유입, 서학의 유행이라면 상관적 사유라는 측면에서 동학사상의 개념적 성립은 크게 동학, 무극대도, 천지귀신, 상원갑의 다시 개벽과 같은 순으로 나타난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동학의 성립에 대한 선행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개념적 성립의 순서에 대해서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동학사상의 개요 파악이 어려운 감이 있다. 두 사상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개념의 역사는 특히 중요하다.
위 개념 성립 순서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먼저 ’동학‘의 경우 선행연구는 크게 두 가지 입장에서 수운이 “동학” 용어를 채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149) 첫째는 동학을 서학에 대립하는 뜻으로150), 둘째는 동학을 동서양 학문을 통합한 입장으로 대표된다고 한다.151)
동학의 지관 성립 배경에 도교의 영향이 컸지만, 실제적인 지관 성립은 천사문답 후 수운 1년여의 고민 끝에 동학사상의 전개와 함께 성립된다. 자생적 근대성 확립과 관련하여 살펴본 동학사상의 전개는 크게 4단계로 나타난다. 첫째 천사문답이 사라지고 은적암에서 집필하는 단계, 둘째 시석을 피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단계, 셋째 수운 사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는 단계, 넷째 동학농민혁명의 실패 이후 천도교로 이행하는 단계이다.
동학사상의 성립은 1860년 4월 5일의 신비체험에서 은적암에 이르기까지가 동학사상의 성립이었다면 은적암 이후로부터 천도교의 설립까지가 동학사상의 전개라 할 수 있다. 동학가사는 1864년 대구 감영에 이르기까지의 천사문답과 수운의 집필, 그리고 유실된 자료에 대한 최시형과 동학도들의 기억으로 성립된다. 대순사상에서도 또한 이 기간에 천명과 신교를 수운이 받고 있었다고 한다.152) 수운은 경신년 9월 15일 스스로 천주의 말씀을 자득한 후 천사문답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153) 수운이 상제로부터 포덕할 것을 권유받고 “동학”을 천명하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결국 이후의 동학은 수운의 사유가 많이 반영되었다.
『전경』에서는 이후에 전개되는 수운의 동학사상 이해가 처음에는 강절의 지식, 이백·두보의 시, 소진·장의의 언변이라는 세 기운이 들어있는 훌륭한 이해였지만 아쉽게 유교의 전헌을 넘지는 못해 부득이 천명과 신교를 거둔다고 한다.154) 실제 계해(1863)년 10월 28일 수운은 자신의 생일연에서 꿈을 꾼 후 수운은 화살을 피하는 방법만 천사문답을 통해 듣게 되었다.155) 최시형과 헤어지면서 수운은 화살을 피하는 방법마저도 알 수 없게 되어 상제의 보필이 끊어졌다고 한다. 수운은 1863년 12월 20일에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에 의해 경주에서 체포된다. 실제로 이때 수운은 본인의 체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시형이 최수운을 만나고 문답한 내용을 적은 『도원기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느덧 10월 28일이 되어 40세 탄신을 맞게 되었다. "선생은 원래 연회를 베푸는 것을 마음으로 거북스럽게 여겼으나" (신사를 비롯한) 제자들이 은밀하게 준비하여 영덕접에서 큰 잔치를 마련하였다. 잔칫상을 받은 스승은 수저를 들면서 "세상에서 나를 천황씨라 하리라"고 하였다. 천황씨란 문화 전시대에서 문화 시대를 연 최초의 임금을 말한다. 대신사는 자신이 새 세상을 다시 열었다는 의미에서 천황씨임을 자처한 것으로 해석된다. 잔치 상을 물리고 난 대신사는 제자들에게 <흥비가>를 일일이 강(講)을 받고 나서 며칠 전에 꾼 이상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에 태양의 살기가 비치더니 불로 변해 내 허벅지 위에 사람 인(人) 자를 오래도록 그리었다. 깨어나서 허벅지를 살펴보니 보라색 흔적이 한 점 남아 3일 동안이나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상제의 가르침이 없었다." 156)
천황씨에 대한 언급은 대순사상에서는 금산사와 연관하여 나타난다.157) 천황씨라 이른다는 말을 한 날로부터 천사문답이 끊어졌다는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수운은 또한 동학 수련을 하면 3년 안에 통한다는 호언을 했다고도 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유교의 전헌과 관련된다.
은적암에서부터 수운은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는데 『용담유사』와 『동경대전』 곳곳에는 수운의 기록 작업이 천사문답과 같이 비몽사몽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학가사에 세 기운이 밝혔다”는 『전경』 구절처럼158) 『용담유사』와 『동경대전』 또한 천명과 신교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 된다. 동학사상 연구자들은 1860년부터 1864년까지의 동학을 초기동학이라고 한다. 대순사상에서 주장하는 동학사상과 관련되는 대순사상은 초기동학까지이다.
식민지 국가 대부분의 자생적 사상이 소수 그룹의 사상으로 그치는 데 반해 동학사상은 일반 대중의 신종교 운동으로까지 전개된다, 동학의 성립 시기는 국제정세에 어두운 백성들에게 위태한 상황이어서 동학은 의지할 데 없는 백성을 모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동학사상은 당시 가장 수탈이 심한 고부에서 농민운동으로 발전한다. 당시 동학의 접주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고 교조신원운동이 발생하여 동학교세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자,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활성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동학사상의 지관은 서학은 “기화지신”이 없이 상제를 믿는다고 비판한 수운의 언급과 같이 수운의 계속되는 수행의 결과 체득된다. 초월천의 입장에서 천지가 모두 지에 해당하듯 인간의 수행 또한 조화, 기화의 영역이 되므로 동학사상의 지관은 수운의 계속되는 수행에 의해 성립된다.
주어진 땅을 지관으로 간주하던 동양의 지관에서 수행으로 검증되는 지관으로의 변화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임금만이 땅의 기운을 받고 땅에게 제사지낼 수 있던 유교 사회에서 일반 백성이 수련을 통해 초월천과 소통할 수 있다는 지관은 성과 속의 경계가 재편되는 자생적 근대의 단초가 된다.
조화정(造化定) 지관(地觀)의 리미널리티 양상
서양 근대성의 지관과 동학사상의 지관은 서로 반대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서양 근대성의 지관은 초월천에 움직이는 천동설에서 내재천에 의해 움직이는 지동설로부터 시작된다. 지동설에서는 초월천의 뜻보다 내재천의 작용이 우선된다.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고 땅이 돈다는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르며 기존의 가치를 다 전도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159) 과거 신의 섭리에 따라 정해졌다고 믿는 가치들은 다 의심을 받았다. 지동설은 사회학적으로는 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근대성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동학사상 또한 천주에 의해 주재되는 땅은 과거 천존지비의 부수적인 자연이 아니라 천주와 같이 모셔야 되는 생명의 존재로 나타난다.
또한, 동학사상에서는 땅이 초월천의 작용으로 해석된다. 초월천이 새롭게 강조되는 동학사상에서는 기존 동양사상의 땅의 개념에서 초월천의 조화, 기화, 무위이화 작용 전체로 확대된다. 따라서 기존 동양 사상의 지관에 비해 동학사상의 지관에는 생명사상이 두드러진다. 이에 동학은 생명사상과 환경사상으로 후대에 주목받은 바 있다.
동학이 생명 사상으로 재조명되면서 땅에 대한 동학의 강조도 재조명된다. 오늘날 한국의 유기농 농법은 동학사상의 땅 중심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정작 동학사상에서 땅에 대한 언급은 강조되지 않는다. 여기서 동학은 초기 동학까지만 언급하므로 초기 동학만 간주하기로 한다. 동학으로 간주하는 것은 동학가사와 수운가사다.
천지 역시 귀신이요 귀신 역시 음양인줄 이같이 몰랐으니 현인군자 어찌 알리(『용담유사』, 도덕가).160)
위 예문은 땅에 적용되면 땅이 하늘과 음양 관계로 높아진다는 말이다. 주역의 음양은 귀신이란 표현이 강조되지 않아 땅의 중요성을 은폐했다.161) 실제 동학에서 수운이 가장 먼저 포덕한 사람은 땅을 상징하는 부인이고 여자의 권리를 소중히 하는 것을 동학 수행의 시작으로 삼았다. 동학사상의 위 예문은 지금까지 주로 전통사상의 영향으로 성리학의 지관이 표현된 것으로 연구됐다. 동학이 유교의 전헌을 못 넘은 바는 있지만 위 예문에 나타난 동학사상의 지관은 “지기”와 “무극대도”라는 개념을 통해 유추해 보면 도교와 같은 “지계(地界)”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동학이 영부(靈符)와 주문이라는 도교의 요소를 공통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많이 강조됐지만 동학에 도교의 지관(地觀)도 내포되어 있다는 점은 강조되지 않았다. 동학의 지관 개념이 신명을 적용하여 지계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지계를 수용하는 도교의 영향으로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천지가 귀신”이라는 위 표현은 성리학에서도 나타나는 개념이지만 도교를 수용하고 있는 동학사상에서는 성리학의 개념을 넘어 도교의 지계 개념까지 확대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도교의 지계 개념은 음양 개념의 무한한 확장을 내포하고 있다. 음양 개념의 무한한 확장은 다신 체계를 의미한다. 도교의 지관은 다신체계(多神體系)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다신교라 하지만 힌두교의 다신체계와 도교의 다신 체계는 음양 원리의 무한한 확장이라는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힌두교의 다신체계와는 구분된다. 힌두교의 다신체계 또한 인도-유럽전통의 3기능 체계의 무한한 확장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따라서 위 예문 “천지 역시 귀신”이라는 표현은 동학사상의 지관 또한 천관처럼 도교의 관료 체계가 내재된 신명계의 이치를 가진 서학과 다른 지관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위 예문은 동학사상의 지관이 정신이 배제된 유물론적인 서학의 무미건조한 지관과도 다르고 이법 체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성리학적 지관과도 다른 새로운 지관임을 보여준다.
또한 위 예문에 나타난 동학사상의 지관은 음양의 무한한 확장이라는 점은 도교의 지관과 공통되지만, 도교의 지관은 하늘 위의 하늘에 따른 원리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학사상과 다르다. 하늘 위의 하늘을 강조하는 동학사상의 지관은 도교사상의 지관에 비해 지관의 가변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교사상의 지관이 건곤의 원리에 따른 법칙성을 강조한다면 동학사상의 지관은 하늘 위의 하늘에 의한 가변성이 강조된다. 나아가 동학사상은 시천주와 지기라는 개념에서 땅 또한 천주의 원리에 따르는 세계이므로 시천주하는 인간에게 조응할 수 있는 조화론적 지관임을 보여준다,
땅을 하늘 위의 하늘 곧 상제의 명에 따르는 총체적인 신명의 체계로 규정한 동학사상은 나아가 땅의 중심과 주변을 재설정한다. 동학사상은 명당의 위치를 한국으로 비정함으로써 땅의 중심이 상제가 출현한 한국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명당으로 표현되고 명당은 소중화와 대중화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성리학에서도 명당은 중국이었고 한국은 소중화라는 사상이 있었지만, 동학은 한국이 명당임을 강조한다. 동학의 지관은 그 내용이 천관과 같이 매우 혁신적이었으나 그 가치가 숨겨져 있었고 그 가치는 대순사상의 지계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동학사상의 귀신론적(鬼神論的) 천지관계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양상
하늘을 모신다는 발상을 처음 제공한 동학의 천관은 동학사상에서 가장 주목받아 왔다. 동학사상 천관의 특징에 대한 선행연구는 크게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크게 나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동학사상의 천관은 “천지가 귀신이고 귀신이 천지”라는 전통적 음양론에 입각한 천지관으로 대표된다. 동학사상에서 말하는 천지와 귀신의 동일성은 유교에서 말해온 귀신과 천지의 동일성과 표현은 같지만, 천지라는 개념의 천지가 초월천인가 내재천인가 하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동학사상에서 천 개념이 천외천으로 확대됨에 따라 기존의 천지와 귀신개념도 새롭게 재배치된다. 초월천으로서의 천지와 귀신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표현은 동학사상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동학사상에서는 먼저 기존의 내재천으로서만 사용되던 귀신이라는 개념을 초월천에 처음으로 적용한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162)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위 예문에서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는 의미는 음양의 작용, 곧 천지 안의 천으로서만 알려진 귀신이라는 용어가 실제는 하늘 밖의 하늘, 곧 천외천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학사상에서 천외천으로서의 귀신은 인간의 마음에 심령을 주어 인간이 고통으로 가득한 천지를 벗어날 수 있는 존재라는 희망을 준다. 이 천외천으로서의 귀신 개념은 또한 천외천만 알고 내재천을 모르는 서학에 대한 비판으로도 사용된다.
“천상(天上)에 상제(上帝)님이 옥경대(玉京臺)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陰陽理致) 고사(姑捨)하고 허무지설(虛無之說) 아닐런가 한(漢)나라 무고사(巫蠱事)가 아동방(我東方) 전(傳)해 와서 집집이 위(爲)한 것이 명색(名色)마다 귀신(鬼神)일세 이런 지각(知覺) 구경하소 천지역시(天地亦是) 귀신(鬼神)이오 귀신역시(鬼神亦是) 음양(陰陽)인 줄 이 같이 몰랐으니 경전(經傳)살펴 무엇하며 도와 덕을 몰랐으니 賢人君子 어찌 알리.”163)
위 예문에서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陰陽理致) 고사(姑捨)하고 허무지설(虛無之說) 아닐런가 “는 천외천은 알되 천지로 구분된 내재천에 대한 개념은 없는 서학의 천관은 실제 하늘의 작용을 체험하는 내재천의 음양 이치가 없어 근거가 없는 희망 사항을 공허하게 주장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반면 동학사상은 내재천을 중시한 동양사상의 바탕 위에 동양에 부족하던 천외천의 천관을 추가하여 경전의 내용을 꿰뚫을 수 있는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서학은 이치보다 힘을 강조하여 혹세무민한 한나라 때 무고지화(巫蠱之禍)로 서학을 비유한다. 무고(巫蠱)란 주술을 위해 짚이나 나무 등으로 만든 인체 같은 조각을 말한다. 무고지화는 무고(巫蠱)를 이용한 한나라 무제의 왕자계승문제 개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을 말한다. 결국 내재천 없이 초월천만 강조하는 서학은 무고(巫蠱)와 같이 허무한 결과를 맺을 거라고 한다.
사람의 수족동정 이는 역시 귀신이오
선악간 마음용사 이는 역시 기운이요
말하고 웃는 것은 이는 역시 조화로세164)
위 예문은 천외천으로서의 귀신이 실체가 위주인 일용사물에도 작용하는 존재임을 보여주어 서양의 천관도 수용한다. 또한, 귀신 다음에 연결된 기운, 조화는 결국 귀신과 조화, 기운이 같은 작용임을 보여준다.
시천주와 비교하면 동학의 음양천지관은 주목받지 못했다. 동학사상의 음양천지관은 유교의 전헌을 답습하려는 동학사상의 일부 경향으로 인해 유교적 귀신관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동학사상이 제시하는 음양천지관은 천외천의 천지관이라는 점에서 유교의 천지-귀신관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그러나 신명 개념이 부재한 동학에서 음양-천지관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신명 개념을 포함하는 대순사상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초월천으로의 천관 변화는 천인관계와 지인관계 또한 변화시킨다. 달라진 천인관계와 지인관계를 통해 자생적 근대성은 더 두드러진다. 서양 근대성의 효시로 지목한 캘빈의 구원예정설은 천인관계의 변화로 대표된다. 구원예정설은 사제를 통한 구원을 노력에 의한 구원이라는 근대성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하며 이를 베버는 자본주의의 기원이 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라고 했다. 동학사상이 제시한 천지·천인관계는 과거 이기론에서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있던 기질지성이 부정된다. 동학사상은 동서양의 천지·천인관계 중 장점만을 취하고자 한다.
동학사상의 천지관계는 귀신론적 천지관계로 여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천지귀신의 경우 천지귀신은 도교와 서학이 동학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천지귀신은 도교와 달리 동학사상에서 천주를 의미하고 서교와 달리 내재적 초월도 의미한다. 먼저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귀신자오야(鬼神者吾也)’라고 하며 ‘귀신도 다름 아닌 하늘님’이라고 귀신을 천주로 명시한다.165) 그러나 이 귀신은 곧 다양한 방법으로 내재적 초월로 묘사된다. "나(천주)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吾心卽汝心)“,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 (天心卽人心)166) “사람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 그것 역시 귀신이오."167) 등으로 묘사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하늘은 주자(朱子, 朱熹, 1130-1200)가 천(天)과 귀신(鬼神), 상제(上帝)의 원리적 동일성을 간명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드러난 모습을 가리켜서 천(天)이라고 말하고, 주재(主宰)하는 측면을 가리켜서 제(帝, 상제)라고 말하며, 작용하는 측면을 가리켜서 귀신(鬼神)이라고 말한다.”168) 동학사상이 출현하기 전 성리학의 이법천에서도 상제관의 단초가 보였다고 한다.169)
동학사상에 나타난 귀신으로서의 천지는 전통적인 성리학에 나타난 주자의 귀신과는 달리 음양이라는 의미 외에 천주의 의미가 포함되었다. 동학사상의 귀신에는 인격신과 이법신의 의미가 동시에 나타난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천주라는 의미가 포함된 귀신으로서의 천지개념은 천존지비의 천지관계에 리미널리티의 반구조적 속성을 제공한다. 시천주를 통해 변화된 천인관계와 지인관계에 이어 시천주는 천지관계도 조화를 통해 변화시킨다. 천지로 대표되는 만물 만사가 지기로 통합된다.
귀신론적 천지관계는 천도지덕이라는 천존지비의 천지관계를 음양오행의 전통적인 평등한 천지관계로 재활성화시킨다. 이에 수운은 가장 먼저 포덕의 대상으로 부인을 택하여 성리학적인 부부관계에서는 볼 수 없던 정음정양의 부부관계를 통해 동학사상의 조화된 천지관계를 실천한다. 동학 신도는 수운의 전례를 따라 부부와 부자 등 억음존양의 음양관계로 이루어져 있던 고래의 인간관계를 정음정양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첫 번째 수행으로 삼았다.
귀신론적 천지관계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무위이화는 음양오행에 기반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지수화풍의 서양 조화(造化) 개념을 동시에 내포하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무위이화는 동학에서 내유신령 외유기화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었는데 이는 시천주에 나타난 조화 개념을 구체화하여 상술한 표현이다. 천존지비의 관계에서 본다면 신령과 기화도 존비관계에 있다. 삼계 위에 초월에 있는 천주를 시천주함으로써 존비관계가 대등한 음양관계로 바뀌는 것을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무위이화는 이에 발전하여 신령과 기화의 내외 관계로 무위자연의 조화가 마음속에서 실천된 상태를 동학사상에서는 의미한다. 무의자연이 음양오행 사상에서는 음양오행의 조화로 해석되었지만 음양오행이 상극화 함에 따라 상극화된 음양오행을 변화시키는 리미널리티 개념을 추가하기 위해 무위이화는 동학사상에서 강조되었다.
영세불망(永世不忘) 인간관(人間觀)의 자생적 근대성
서양의 성장론적(成長論的) 인간관
아래에서 위로 세계를 바라보는 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진화하는 천지 가운데 인간은 성장을 지향한다. 실체성을 지향하는 서양전통에서 인간은 이데아의 이상을 지상의 질료에 실현하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군 분투하는 인간으로부터 원죄로 인해 하늘에서 실낙원하여 지상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구원에 집중하는 인간이었다. 신이 사라진 근대에는 천지와 분리된 단독적 존재로서 서양의 인간은 분화된 세계에서 홀로 성공을 추구하는 현상학적 성장론, 곧 실존적 인간이 된다.
천지와의 밀접한 관계속에 천지의 화육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우환의식이 앞서는 동양의 인간과 달리 서양은 천지와 연관된 우환의식보다 하늘 위의 하늘과 직접 관련된 실존의식이 우선했다. 서양의 원죄사상 또한 동양의 성악설과 달리 인간이 자연에 대해 도구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서양의 성장론적 인간관은 신화학과 심리학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신화학에서 서양의 성장론은 영웅의 순환같이 개인의 성장에 집중되어 연구되어 왔다. 캠벨 같은 학자들은 세계신화 전체를 영웅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동양은 서양과 달리 같은 성장이라도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이라는 천지화육의 천지지용, 곧 천지의 성장을 우선한다.170) 서양 심리학에서는 그동안 서양의 근대적 인간관이 정신분석이나 행동주의와 같이 부정적 인간관에 치우쳤다며, 겅장론쩍 인간관으로 더 성장을 강조한다. 동양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성적 욕구의 변환으로 보는 정신분석이나 물질적 욕망으로보는 행동주의와 같은 서양의 인간관은 동양에 비해 자기 긍정적인 인간관이라고 평가한다.171)
서양의 인간관은 성장론적 인간관과 그의 반영인 최근의 포스트휴머니즘 인간관에 집중되어 표현된다. 성장론적 인간관이란 인간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기술지향적인 접근을 한 행동주의와 정신분석학에 대해 인간 욕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내면의 정신을 위주로 접근한 실존주의적 심리이론의 인간관이다. 성장론적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을 뿐이다. 성장론적 인간관은 인간의 욕구가 단계적으로 잠재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러한 욕구가 하급(下級)의 것에서 고급의 것으로 발전적으로 나타난다는 성장적 측면을 강조한 인간관(人間觀) 이론의 총칭이다. 성장론적 인간관은 성악설에 기반한 기술 중심적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고전적 인간관에 대하여 성선설에 기반한 자기실현적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인간관을 제시했다. 이러한 성장이론에 포함되는 인간관 이론으로는 194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뒷날 성장이론의 기반을 이룬 매슬로(A.H. Maslow)의 욕구단계 이론을 비롯하여, 1960년대에 제시된 맥그리거(D. McGregor)의 X이론·Y이론, 허즈버그(F. Herzberg)의 이요인 이론(二要因理論), 올포트(G. W. Allport)의 특질주의 이론, 아지리스(C. Argyris)의 미성숙·성숙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4차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은 성장론적 인간관이 말하는 자기실현 단계의 산업혁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172) 나아가 실존주의가 비로소 포스트휴먼시대에 이루어지고 한국의 신종교가 말해온 미래 전망과 일치한다고 하기도 한다.173)
기존의 성악설적인 심리학적 인간관에 대비하여 성장론적 인간관이 제시한 긍정적인 인간관은 매슬로우의 경우 특히 욕망, 성장, 세계에 대한 긍정으로 각각 나타난다. 첫째 욕망의 경우 매슬로우는 하위의 욕구들이 모두 충족된 다음에 나타나는 자기실현욕구는 자기향상(self-enhancement)을 위한 개인의 갈망이며, 잠재력으로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실현하려는 욕망이라고 하여 욕망을 긍정한다.
둘째 성장에 대해 긍정한다. 매슬로는 욕구위계에서 하위 단계의 네 욕구, 즉 생리, 안전, 귀속, 존경 등 '하위’ 욕구는 모두 무엇인가 외적 조건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결핍동기(deficiency motive)‘라고 보았다. 이러한 결핍동기의 작용은 대체로 '긴장감소모형(tension-reduction model)’을 따른다. 이에 비해 최상위의 자기실현욕구는 자기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성장동기'(growth motives)이다. 이는 "그 자체 결핍 상태에서 생겨나기보다는 존재(being) 자체에서 나오며, 긴장감소보다는 긴장 증가를 추구한다. 따라서 이를 '존재동기'(being motives)’라 하는데, 이는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선천적 충동과 연관된 원격의 목표를 추구하여, 경험을 넓힘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기쁨을 증가시킨다고 한다..174)
셋째 세계에 대한 긍정이다. 매슬로우는 당시 미국 심리학의 제1세력인 정신분석이 중시하는 인간의 정신병리적인 측면이나 제2세력인 행동주의 심리학(behaviorism)이 중시하는 기계적 측면과 환원론적, 결정론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통일적 존재(integrated being)인 인간의 주체성과 전체성이 기초한 개인의 잠재적 가능성(human potentiality)을 존중하면서 자기실현을 추구하였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인간다운 본성을 추구하고 이해하며, 인간의 성장과 행복에 기여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심리학 이론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175)
매슬로우가 주장한 인간의 긍정적 속성은 포스트휴먼이 대체할 수 있는 인간의 속성과는 매우 반대되는 속성이라고 한다. 포스트휴먼이 인간사회에 매우 충격적인 이유는 그동안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을 대표하는 속성이라고 간주한 이성, 그 중에서도 도구적 이성에 해당하는 계산능력을 기계가 인간을 앞질렀기 때문이었다.176) 그러나 인공지능을 연구할수록 인간에게는 인공지능과 정반대되는 지능이 있어 인간이 잘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잘못하고 인간이 못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잘한다는 모라벡의 역설이 나타났다.177) 이 모라벡의 역설은 비판적 포스트휴먼주의자인 설(John Searle)의 중국어 방 논증을 통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여 지능이라고 판명된 인공지능조차 포스트휴먼이 가진 지능을 인간의 지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내었다.178)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이제 인간은 인간이 기계보다 잘하는 지능에 집중해야 공진화가 가능해진 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성장지능으로 지목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의 신인관계 또한 유기체적인 인간과 기계론적인 신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성장지능을 기계와 다르게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은 오랜 세월 생존이 목표였기 때문에 인간의 지능은 특정부분에 특화된 약인공지능이 아니고 모든 분야에 걸쳐 더디지만 고르게 발전된 범인공지능의 속성이 있었기 때문이다.179) 상징과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기발전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장지능이 인간만의 지능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실로 인간은 실존주의적 존재 노력을 수만 년간 해 왔고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흉내낼 수 없는 수많은 상징을 통해 지능을 개발하고 자기실현의 동기를 가지게 된 긍정적 존재였다.180) 인간은 마침내 집단에서 개인으로 자기실현을 하게 되었다.181) 매슬로우의 4단계 성장 과정은 대순사상의 관왕과 동학사상의 포태와 비교될 수 있다.
서양의 성장론적 인간관은 근대 과학기술 발전을 견인하고 다양한 사회적 발전을 이룩했지만 천지를 배제한 독단적인 인간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천지의 배신으로 인류를 진멸지경에 빠지게 하였다. 욕망의 고삐는 풀렸지만, 고삐를 다시 묶을 방법이 없는 서양의 인간관은 새로운 대안적 근대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동양의 접화적(接化的) 인간관
하늘 위의 하늘을 강조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하늘 안의 하늘, 곧 내재천의 천지와 천지 사이를 연결하는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에 동양의 인간관은 상관적 사유가 두드러지는 접화적 특성이 있다. 동양의 인간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상관적 사유에 대해서는 김상일 이후 심광현 등에 의해 현대철학적인 후속 연구가 이루어졌다.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은 상관적 사유의 속성상 한중일 가운데 한국의 미학적 특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82)
심광현은 한국문화의 특징을 프랙탈로 정의하고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상세히 비교한 후 한국문화 전반에 적용하였다. 심광현은 오늘날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동양의 과학이 프랙탈 구조로 한마디로 표현되고 있다고 하며183) 한류가 세계인의 지지를 받는 것도 모든 문화가 음양오행에 기반한 세계에서 가장 프랙탈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184) 프랙탈한 특성에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이 잘 드러난다.
프랙탈 이론이란 부분을 뜻하는 프랙탈(fractal)에서 전체의 구조가 부분의 구조에 나타난다는 말로 우주가 컴퓨터와 같이 아무리 복잡해도 음양과 같은 0과 1의 반복이듯이 동일한 구조의 반복이라는 이론이다. 하늘의 음양오행 구조가 땅에도 있고 인간에도 같이 있어 인간의 음양오행 구조를 알면 땅도 알고 하늘의 원리도 알 수 있다는 동양의 음양오행이 전형적인 프랙탈 이론이다. 이를 동양에서는 이치라 표현해 왔고 인간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인간은 천지의 화육에 동참할 수 있고 동참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이다.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이 인간의 능력을 높게 본다는 점은 서양의 성장론적 인간관과 공통되지만 다른 것은 동양은 천지가 인간의 능력을 실현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반대로 인간의 능력이 천지의 선물이며 인간은 천지에 은혜를 갚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동양의 천지는 질료와 형상이 아니라 만물을 화육하는 동화와 응축이었기에 동양의 지식인은 천지의 화육 노력에 부합되지 못하고 동참하지 못한다는 우환의식이 개인의 성장이라는 실존의식보다 우선하였다.
서양의 근대화에 따라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은 동양 지식인에게마저도 전 근대적인 계몽대상으로 치부되었지만 동서양의 교류에 따라 오늘날은 다양하게 재평가되고 있다. 먼저 동양의 상관적 사유를 서양의 인지심리학의 차원에까지 확대한 연구자는 최인철이다. 최인철은 니스벳과 공동연구로 동양 사유의 상관적 인식을 인지심리학적으로 증명하여 이 분야의 학문을 만들었다. 이들에 의해 동양과 서양이 집단성과 개인성으로 대표된다는 것이 오늘날 심리학적 실험으로도 입증되었다.185)
최인철의 연구를 동양 심리학까지 실제 확대한 사람은 조긍호이다. 조긍호는 전체에서 부분을 파악하는 동양의 인지체계가 인간의 심리적 윤리관에도 영향을 미쳐 동양 특히 유교에서는 서양과 다른 유학 심리학의 체계를 만들었음을 보여주었다186) 실제 동양에서는 전문성보다는 전인적 중용을 강조해 왔다,187)
상관적 사유를 언어교육학적으로 확대한 연구자는 조옥구이다. 조옥구는 ‘하늘천 따지’부터 배우는 동양전통의 천자문 교육과 ‘영희야 철수야’부터 배우는 서양식 현대교육을 동서양의 인지체계의 차이로 설명하며 동양의 상관적 사유가 근대문명의 대안적 과학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188)
이어령 등 기존 원로학자들도 가세하여 동학의 상관적 사유를 서양의 분석적 사유에 대항하는 이론을 제시했지만 이 이론들을 종합하여 상관적 사유체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박재주이다. 박재주는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189)
위에서 아래로 사유하는 동양의 생성론적 사유에 따라, 상관적 사유에서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는 천지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천지와 접화하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천지는 천지의 중재를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하게 되어 천지에서 가장 빼어난 기를 인간에게 부여한다.
음양오행의 기가 천지 가운데 흘러들어 빼어난 것이 사람이 되고 찌꺼기는 사물이 된다. 빼어난 것 가운데 빼어난 것은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며, 빼어난 것 가운데 찌꺼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불초한 사람이 된다190)
천지의 기운이 접화되어 태어난 인간은 천지와 더불어 천지가 만물을 화육시키는 데 동참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가 된다. 천지는 성경신으로 인간을 화육하고 인간은 성경신으로 이에 보답하는 존재가 된다.191)
오직 天下에 지극히 誠을 행하는 자만이 능히 자신의 性을 다할 수 있으니, 자신의 性을 다할 수 있으면 능히 다른 사람의 性을 다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性을 다할 수 있으면 능히 사물의 性을 다할 수 있으며, 사물의 性을 다하면 天地의 化育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천지의 화육을 돕게 되면 천지와 더불어 (천지의 화육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192)
위 예문에서 접화적 인간이란 천지의 기운을 각각 받은 존재이고 이것을 성(性)이라 하며 이 성을 성으로 다하여 천지에 되돌려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상관적 사유로 동양사상을 번역해 온 에임스와 홀은 『중용』을 ‘일상사에 초점 맞추기’로 번역하며 천지의 성(誠)이란 서양의 실체적 세계관에서 해석할 때는 탈근대성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그의 과정사상에서 말하는 창조성(Creativity)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한다. 화이트헤드 또한 이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고 한다.
모든 철학 이론에서, 우연성 덕분에 실제적인 궁극자가 존재한다. […] 유기체 철학에서 이 궁극은 '창조성'이라 불린다. […]일원론 철학에서 […] 이 궁극자는 신이며 '절대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일원론 철학 구도에서 궁극자에게, 어떠한 우연성도 넘어서는 최종적으로 '탁월한 실재성이 부당하게 허용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유기체 철학은 서아시아나 유럽의 사상보다는 인도, 중국 철학 학파와 훨씬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193)
성(誠)을 창조성으로 해석할 때 천지가 인간을 생인(生人)하는 것도 창조성이고 인간이 되돌려주는 것도 창조성이 된다. 접화에는 창조성의 개념이 핵심이 된다. 동양의 접화적 인간관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무리한 발전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상관적 사유에 고착되어 상관적 사유 이전의 사유, 곧 하늘 위의 하늘을 망각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고착상태로 진입하여 마테오 리치와 같은 서양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에 서양의 충격이 있고 나서야 동양은 자생적 근대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영란의 리미널리티 이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늘(1), 땅(2, 1+2)에 이어서 인간(3, 1+2,1+2+3)은 다시 인간을 넘어 제3의 존재(1+2+3=1′)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이 변화가능성의 리미널리티 양상이 인간의 접화적 특성이 된다. 인간은 천지가 부여한 음양, 곧 혼과 백이 있어 스스로 변화할 수 있기에 우주가 벌이는 천지화육의 공연을 알아줄 수 있는 지인(知人)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은 직접 우주에서 공연을 하는 존재까지 이르러야 한다. 서양의 충격에 의한 자생적 근대성의 인간관에서 리미널리티는 이상적 인간관의 실현을 준비하게 된다.
근대 동서양 인간관의 충돌과 상극화(相克化)
인간관의 충돌
동서양의 인간관은 동서양이 교류하기 전에도 이미 문제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동서양의 인간관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각 인간관의 단점도 두드러진다. 먼저 지수화풍의 경우 제5원소가 유일신화 되면서 먼저 서양에서 지수화풍의 신명체계가 소멸된다.194) 약화한 지수화풍의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지수화풍의 신명은 박대받아 퇴출당하고 유일신과 인간 간의 계약 관계로 천인관계가 사유화된다. 인간은 유일신 앞에서 죄인으로 전락하고 회개하고 구원받아야만 되는 존재가 되어 죽어서야 극락으로 갈 수 있는 지위가 된다. 동양도 상관적 사유가 굳어지면서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심화하였다. 이는 동서양의 교류로 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법칙처럼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동서양은 서로 장점도 교류되지만, 인간관에서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서양의 초월지향적 인간관이 먼저 내재지향적 인간관으로 바뀌게 된다. 초월적 신이 없어도 윤리적인 인간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마테오 리치로부터 알게 된 서양은 더 이상 신의 구원을 바라지 않고 신의 자리는 물질이 대체하게 된다.
동서양 인간관의 충돌은 동양사상으로 근대성을 이룬 서양이 부국강병책으로 국력을 기른 후 발생한 제국주의 시기부터 발생한다. 동서양이 충돌하며 당초 제5원소로 지수화풍의 중재자였던 지수화풍의 천은 내재신으로서의 속성이 사라지고 초월신으로 나타난다. 초월적인 유일신에게 땅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배, 정복의 대상으로 제공되며 동양 또한 이에 해당된다.
동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은 표면적인 차이점과 달리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의 기원을 갖기도 한다. 대순사상에도 나타나는 36천의 경우 도교의 36천 천관에도 나타나는데 이는 불교 이전의 동서양 공통의 천관·지관·인간관 기원과 연관된다. 도교 영보경(靈寶經) 경전에서 나타나는 도교의 36천 천관은 『아비달마구사론』에 나타나는 불교의 28천 천관에서 관련된다고 한다. 불교의 천관인 28천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수직적으로 구분되고 도교의 36천은 동서남북 사방의 수평적 구분의 의미로도 구분된다고 하지만 불교의 28천 또한 도교와 같이 천문 28수와 관계된다고 한다.195) 불교의 28천이 처음 나타나는 『아비달마구사론』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간주되는 소승경전이지만 불교의 28천 이론은 불교 성립 이전인 인도-유럽의 3기능 체계(trifunctionalism)의 유산으로 간주되고 이는 더 거슬러 올라가 동서양 공통의 천문사상에서 유래된다고 한다.196)
3기능 체계란 공통된 언어를 구사하는 고대 인도와 유럽에 걸친 광활한 지역의 신화와 사회조직 모두에서 천지인과 같이 하늘과 같은 종교계급-브라만(Brahman), 인간과 같은 전사(戰士)계급-크샤트리아(Kshatriya, 찰리종, 刹利種), 땅과 같은 생산계급인 바이샤(Vaishya)-수드라(Shudras) 계열의 체계가 나타난다고 하는 이론이다. 실제 3기능체계 이론을 처음 발견한 뒤메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고대문화를 조사하였고,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타나는 트로이전쟁이나 힌두 신화에도 3기능체계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실제 그리스 신화 트로이 전쟁의 경우, 생산과 미를 상징하는 아프로디테, 종교를 상징하는 헤라, 정치를 상징하는 아테네 사이의 전쟁이었다고 한다.197) 인도의 경우도 불교에도 나타나는 미륵계열의 미트라는 바루나와 함께 종교를 관장하고 금강산 계열에 나타나는 번개의 신 바즈라는 인드라와 같이 정치를 관장한다.198) 불교 고유의 가르침이라는 『아비달마구사론』에 불교 이전의 가르침이 포함되는 까닭은 소승불교와 상충되는 대승불교의 교리가 불교에 수용되는 과정과 연관이 된다고 한다. 과학적 불교경전 해석자로 저명한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에 의하면 아소카왕 비문에 나타난 듯 두 번에 걸친 불교의 결집을 통하여 불교적인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매우 확대하였다고 한다.199) 따라서 대순사상에도 나타나는 불교 천계관의 주요 역할을 하는 금강산도 인도 고대신화인 번개의 신 바즈라(Vajra)와 3기능 체계를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불교의 3기능 체계가 시간적인 수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고대 동서양의 교류로 변화된 중국 천관·지관·인간관의 경우는 천지인이라는 공간적 배치로 삼재관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교 36천 천계관은 불교 28천 천계관을 내면에 포함하고 있다.200) 공간적 배치가 강조되는 동아시아 천관·지관·인간관의 경우 삼재 순환의 동력 또한 개인 업보의 윤회보다는 조상과 자손의 승부(勝負)로 나타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천관·지관·인간관은 신화적으로는 대표적인 문명족인 공공족이 지하 문명신으로 나타나고 그 유물로 지하신이 나타난다.201)
서학인 천주교도 천관·지관·인간관에서 유럽-인도의 3기능체계가 반영되고 있다. 흔히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기원이 되었다는 조로아스터교 또한 미륵의 기원이 되는 미트라신을 기원으로 하는 3기능체계에 기반하여 사후 천계와 명부를 강조하고 있다.202)
3기능체계로 대표되는 서양 천관·지관·인간관과 천지인으로 대표되는 동양 삼재관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두 천관·지관·인간관은 시간과 공간의 강조점 차이 외에도 삼계의 창조주를 삼계와 구분하는 방법에도 차이를 보인다. 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은 동양의 삼재관에 비해 창조주가 지속적으로 간섭하고 심지어 서학에서는 천계·지계·인간계의 신이 모두 사라지고 유일신 체계가 된다. 반면 동양 삼재관에서 창조주는 숨은 신(Deus absconditus)으로 나타난다.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에서 나타나는 상제는 동양의 숨은 신과 서양 유일신의 속성이 동시에 나타나므로203) 서학과 도교로서는 유사한 부분으로 보이게 된다.
동서양 인간관에 내재한 공통의 기원은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자생적 근대성의 인간관을 형성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상관적 사유에 매몰된 동양의 인간관도 초월천의 개입으로 변화의 계기를 이루고 서양 또한 물질화시킨 동양의 내재천을 다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천인(天人)·지인(地人) 관계의 상극화
동서양이 개별적으로 발전하면서 음양오행과 지수화풍의 천관·지관·인간관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상극화 되지만 두 사상체계는 정교화된다. 음양오행의 세계관에서 천인관계는 『시경』, 『서경』의 인격적 천인관계에서204) 탕왕·걸왕의 선악분별의 이법적 천인관계로 전환되고, 전국시대 음양, 삼재, 오행 사상이 이론적으로 결합되며205) 이후 불교의 도입과 함께 이법(理法)이 실체화된 천계, 지계, 인계의 삼계가 도교에서 완성된다.206) 『옥추보경』에서 완성되는 초월론적 신명체계도 약화되어 인간과 신의 내재적인 음양관계는 퇴색된다.
동서양의 천관·지관·인간관이 충돌하기 전 마테오 리치 이전 서양의 신인 관계를 살펴보면 서양의 신인 관계는 삼라만상의 모든 일을 주재하시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인 절대신이 있고 그 아래 유일신의 일을 특별한 경우에만 수행하는 천사가 있으며 천국과 지옥에 인간의 영혼이 있는 구조였다.207) 서양은 자연을 운행하는 천지신명이 잊혀졌지만 동양에서는 잊혀진 신명의 존재가 기억되는 장점이 있었다. 서양의 유일신은 유목문화와 밀농사의 영향에 힘입어 동양의 상제와 같이 법칙에 따라 주재하기보다는 특정한 법칙 없이 임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였고, 천사 또한 동양의 신명과 달리 특별히 특정 영역의 고유 업무를 담당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따라서 인간과 천사의 가장 큰 죄는 동양과 같이 자기 고유 영역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변하는 유일신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서양에서 유일신의 권위는 억압적이었지만 확고했다.
초월신을 전제로 하는 서양의 전통적인 천인관계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사상이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자신을 표현한 기독교는 초월자의 모델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5원소 모델로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지수화풍 우주론의 제5원소처럼 지수화풍의 순환을 초월한 위치에서 관망하는 존재이다.208)
당초 제5원소로 지수화풍의 중재자였던 지수화풍의 제5원소인 천은 내재신으로서의 속성이 사라지고 초월신으로 나타난다. 서양의 경우 근대로 오면서 지수화풍의 우주관은 실체라는 성격만 남기고 지수화풍의 상관성은 배제한다. 이에 따라 유일신화된 천존에 따라 인류의 교만도 배가된다.
천인관계뿐 아니라 지인관계 또한 상극화된다. 서양에서 땅은 질료요, 지배의 대상이었지만 동서양의 교류 후에는 이제 내재적인 과학기술로 조작하는 조작 대상으로 전락한다. 동양의 경우 땅은 천지 관계에서 역할이 고착되어 하늘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천인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애초에는 상생적 관계였다. 서양의 경우 인간세계는 이데아가 투영된 곳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다. 동양의 경우 인간계는 신명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수련을 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천인관계, 지인관계가 상극화되면서 더 이상 인간계를 통한 천상계의 발전은 멈춰지고 천지의 화육도 중단된다. 심지어 우주 전체가 혼란이 가속화되어 진멸지경으로 진입한다. 이에 성속의 재배치 곧 근대성의 리미널리티 양상이 천인·지인관계에서 요청된다.
동학사상의 영세불망(永世不忘) 인간관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동학사상의 영세불망(永世不忘) 인간관
초월천의 개입에 의한 천관의 변화는 지관의 변화와 아울러 인간관의 변화도 초래한다. 초월천에 의해 땅의 개념이 조화와 기화의 개념으로 바뀌며 땅의 지위가 상승되어 하늘과 땅의 지위가 동일해 지듯이, 인간 또한 초월천과 ‘오심즉여심’, 곧 같은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면서 인간은 천지와 동급의 존재로 지위가 격상된다.
동학사상의 인간관도 지관과 같이 동학사상이 전개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동학사상이 전개될수록 동학사상에 대한 수운의 태도는 변해간다. 천사문답과 포덕활동, 순도(殉道)209), 그리고 순도 이후 계속 변화해 간다. 동학사상의 인간관은 수운의 순도를 전후하여 특히 변화된다.
동학의 교조 최수운이 자살에 가까운 경주 회귀를 감행한 후 예상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가 뿌린 불씨는 천신만고 끝에 최시형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최시형은 수운이 애써 남겼지만 다 사라진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을 기억을 되살리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복구해 낸다. 최시형이 복구해 낸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은 전국으로 배포되어 동학은 동학농민운동의 형태로 살아난다, 증산은 이를 치우(蚩尤)에 빗대어 동학의 작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210)
동학 농민 혁명 운동은 한국 농민 혁명 사상 유례 없는 큰 운동이 되어 성공하는 듯 했으나 일본의 개입을 가져오게 되어 오히려 가장 큰 비극의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동학에 나타난 상제의 뜻은 널리 홍포되어 희망을 남긴다.211) 살아남은 동학 신도는 새로운 신종교나 동학의 변신인 여러 운동에 다시 참여하게 된다.
동학은 신종교 중 가장 일찍이 출현한 신종교라 할 수 있다. 동학이 신종교에 있어 미친 영향은 일부 신종교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면 통일교에까지 이른다.212) 원불교, 통일교에도 동학 관련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학은 1980년대 이후 신종교의 부흥기에 가장 많은 지식인이 연구한 분야이기도 하다. 반면 신종교의 주장은 동학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동학 이후의 신종교에서 동학은 일반적으로 동학 이후의 신종교가 출현하기 위한 전주곡이었다고 주장된다. 동학과 동학 이후의 신종교의 주장은 서로 간의 공통된 교리체계를 검토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동학의 교리체계 중 특히 동학 이후의 신종교와 공통으로 가진 교리체계는 상관적 사유의 순환성이다.
동학 이후의 신종교에 동학의 영향이 논란이 된다면 동학은 기존 종교의 영향이 문제가 된다. 동학의 교리체계와 가존 종교의 관계는 동학 연구자의 주요 연구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동학과 유교, 도교, 기독교와의 친화성 문제는 많이 연구되었지만 동학 교리체계의 순환적 속성이라는 상관적 사유 측면에서 아직 많이 연구되지는 않았다.
동학은 선도와 같이 형식적으로는 부적을 쓰고 주문을 외우지만 내부적으로는 보국안민, 충효열, 성경신 등 성리학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 서교와 같은 천주라는 용어를 공유한다. 대순진리회의 동학에 대한 평가처럼 동학은 선도를 주장했으나 유교의 전헌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요약된다.213)
1980년대 이후 동학학회를 중심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동학의 순환적 교리체계는 동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삼태극체계이다214). 동학은 교단기에서 상관적 사유의 순환을 핵심교리로 하고 있는데 비해 동학의 교리체계에 나타난 고유한 천관·지관·인간관은 잘 연구된 바가 없다.
동학에서 그 동안 높게 평가 받아온 상관적 사유의 순환성은 교리체계 내부적인 평가보다는 외부적인 순환인 동학 농민운동의 평등주의라는 부분이었다.215) 동학은 동학 이후의 신종교에 나타난 순환이 동학의 영향이라고 주장하지만 동학과 공통되게 나타나는 삼태극 전통을 공유하므로 동학 이후에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상관적 사유를 동학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동경대전』의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불연기연(不然其然)은 동경대전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인간의 지위변화와 동학의 신존재증명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동경대전』은 최수운의 사상보다는 최수운에게 계시를 내린 상제의 사상에 대한 강조를 위주로 한다. 사실 해월이 수운과의 대화를 적은 『도원기서』 에는 수운은 상제로부터 지속적인 가르침을 받아왔고 상제의 가르침이 끊어진 이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최수운 이후 동학은 또한 최수운의 동학과는 불연속을 보인다. 『동경대전』 혹은 『용담유사』안에서 또한 전기와 후기를 다르게 평가하기도 한다. 동학 내부에서도 불연속을 보이는 만큼 동학과 다른 신종교는 매우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강오의 신흥종교자료는 주로 종단의 이합집산에 집중되어 교리체계의 차이보다는 교리체계의 공통성에 주목하고 있다. 동학이 동학 이후의 신종교를 동학의 영향으로 보는 것은 동학 이후의 신종교를 신앙한 인물들이 주로 동학당원이었기 때문이다. 동학당원은 동학의 실패 이후 남방불교, 원불교 등에서 활동한다.
동학 이후의 신종교가 동학의 영향이라는 동학의 주장에 대한 동학 교리적 근거는 동학이 또한 유불선 삼교를 종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학에는 불교의 영향이 거의 없고 주문과 부적은 외우지만 또한 선령신을 포함한 신명 세계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 유교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 많다.216)
동학이 상관적 사유의 순환을 강조한 것은 오히려 동학 이후의 신종교가 출현하면서 동학이 이론 체계를 재정비한 1919년 3.1운동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교리 체계 없는 종교에 대한 일본의 탄압정책으로 동학은 이돈화를 중심으로 교리체계 확립에 나섰다. 217)
영세불망(永世不忘) 인간관의 리미널리티 양상
초월천에 의해 지위가 격상된 동학 인간관의 양상은 전기와 후기를 통해 다르게 나타난다. 초기 천사문답에서 시천주를 통해 상제를 모실 수 있는 지위로 인간의 지위가 격상되는 것은 수운의 각고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보국안민을 주장했으나 속으로는 왕후장상을 품고 있었다는 『전경』의 언급처럼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환경에서는 물질에 치우치기 쉬우나 수운은 예수와 같이 하늘의 제안도 거부한다. 40여년간 만고풍상을 겪은 수운으로서 물질의 유혹은 여동빈처럼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시험과 수운의 단식투쟁 끝에 상제는 수운에게 ‘오심즉여심’이라는 인간의 지위 상승을 밝혀준다.
그러나 결국 후기에 가도 수운은 그 ‘오심즉여심’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천주를 통해 상제를 모실 수 있는 지위로 인간의 지위가 격상되었음에도 수운은 그 취지를 유교의 전헌을 넘지 못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수운은 불연(不然)과 기연(其然)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불연이요, 이해하기 쉬운 것은 기연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기연이라면, 불연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불가능하고 경험할 수 없는 세계다. 그렇다면 불연은 리(理), 도(道), 일심(一心), 천(天)과 통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연과 기연이 이분법적 대립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경험 너머의 진리를 깨닫고, 우리 앞의 사물에서 깨달음을 얻듯 경험을 통해 궁극적 실체에 다다를 수 있는 것218)이라는 정도로 ‘오심즉여심’은 이해되게 된다. 불연기연이 동학사상 연구자에게는 탁월한 인식론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대순사상의 도통진경과 비교한다면 다소 거리가 있는 이해였다.
동학사상의 영세불망적 인간관은 서학과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났다. 먼저 대표적으로 사제와 신도의 차별 철폐이다. 동학사상은 서학에서 사제와 신도의 엄밀한 구분을 비판한다. 동학사상은 서학이 유불선에 비해 인간을 평등하게 보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사제와 신도간의 계급적 차이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한다. 동학사상의 영세불망적 인간관이 인간관의 종교 사상사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점은 “시천주”의 범위에서 사제와 신도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동학사상에서는 오늘날 함석헌 등의 무교회주의처럼 신도와 사제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것이 동학 인간관의 특징인 접주제(接主制)의 의의가 된다. 서양의 종교개혁이 신부의 특권을 폐기했다면 동학사상은 목사의 특권까지 폐기한다.
서학과 구분되는 영세불망적 인간관의 두 번째 특징은 “각자위심(各自爲心)”과 “각지불이(各知不移)”의 차이이다. 서학에서 천주는 외부에 있는 표층 종교적인 특징이 우선 강조되었다면 동학사상의 시천주는 천주가 내부에 있는 심층 종교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수행의 방법 또한 서학의 경우 베버가 지적했듯 캘빈주의와 같이 구원의 증명이 속세의 성공이라는 “각자위심”으로 신앙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는 서양 근대성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구원의 증명이 내부에 있게 되므로 내부의 성찰적 윤리를 스스로 실행하는 도덕적 수행 곧 “각지불이”에 있게 된다.
서학과 대비되는 동학 인간관의 특성이 사제와 신도 차별의 철폐, 세속적 성공보다는 성찰적 윤리의 강조로 나타난다면 유불선과 대비되는 동학 인간관의 특성은 소우주적 인간의 강조로 나타난다. 후기 동학에서는 이를 “인내천”이라는 용어로까지 확대하지만 초기동학에서 인간관은 어디까지나 천지 안의 인간이다. 다만 시천주를 통해 인간은 “내유신령 외유기화“라는 수행을 통해 천주의 무위이화에 따른 천지화육에 동참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범위를 인내천까지 확대할 수 있는가의 차이에 따라 동학사상과 대순사상의 인간관은 차이가 생겨났다.219) 향후 전개 과정에서 천도교로 발전한 동학사상은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범위를 인내천까지 확대한다. 이에 인간을 천지화육에 동참하는 존재로만 규정하는 대순사상을 전근대적 사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초기 동학사상의 인간관은 실제로는 대순사상에서 더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동학사상의 인간관은 동학사상의 시천주적 인간이 함께 모여 나타나는 지상천국이라는 용어로 확대된다. 후기동학에서 지상신선은 초기동학에서 나타나는 인계와 지계의 교류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시천주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상신선이 모여 이룩하는 지상천국이라는 용어 또한 초기동학에서는 하늘과 땅의 상호 교류에 따른 하늘과 땅의 위상 변화, 곧 천존지비에서 천존지존의 관계로의 변화에 따른 지상의 지위상승을 내포하는 의미였지만, 후기동학에서는 시천주적 인간이 모여 이룩하는 자생적 근대의 세계로 묘사된다. 초기동학의 지상천국 개념은 오히려 대순사상에서 재해석된다.
동양의 내재천에서 재활성화된 동학사상의 초월천은 무위이화라는 지관뿐 아니라 인간관에도 큰 변화를 가지고 왔다. 동학사상의 인간은 초월천과 직접 소통하는 인간으로 격상된다. 이에 성-속관계는 재편되고 일반 백성은 이를 자신이 왕후장상에 이를 수 있는 지위 상승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지상천국과 지상신선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듯이 동학의 처음 취지는 유교의 전헌을 넘는 것이었지만, 그 취지는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동학사상의 인간관은 성-속의 관계를 재배치하고 일반 백성이 근대성의 리미널리티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여 자생적 근대성의 계기를 마련했다.
동학사상의 내유신령(內有神靈) 천인(天人)관계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양상
동학사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시천주와 개벽으로 간주하는 연구가 많이 있지만 두 개념을 연결시켜주는 “조화”에 대한 연구는 드물다. 시천주의 결과인 조화는 동학사상에서 기화, 지기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지기라는 개념이 새로운 개념이라고는 하나 “기 ”라는 개념의 외연에 있다고 할 때 동학사상이 기존의 서학이나 성리학과 구분되는 가장 특징적인 개념은 “조화”이며 이 조화가 인간 내면에 적용된 것이 내유신령이고 개별 일용사물의 외부에 적용된 것이 기화라 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화가 천인관계에서 보면 신령으로 나타나고, 지인관계에서 보면 기화로써 무위이화와 조화로 나타난다.
하늘 위의 하늘을 강조하는 동학사상에서 지관 또한 상제의 기화작용으로 변모되므로 따라서 하늘과 인간의 관계는 내유신령(內有神靈)의 관계로 변모한다.
시천주의 ‘조화’는 내유신령(內有神靈)으로 나타나 서학의 유일신적 천인관계의 신존인비도 극복한다. 엄격하게 구분된 서학의 유일신과 달리 시천주의 상제는 ‘오심즉여심’과 같이 폐기되었던 천인합일의 경지를 부활한다. 동학사상은 하늘 위의 하늘이 개입하였지만 서교와 달리 하늘 안의 하늘인 천지 개념도 포함했기에 일반 신도도 하늘 위의 하늘과 마음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에 동학사상은 하늘 위의 하늘과 통하였지만 서교와 달리 사제와 신도간의 위계가 없는 천인관계가 되어, 곧 사회와 개인의 관계도 변화한다.
동학사상에서는 성리학에서와 같이 양반과 상놈이 하늘로부터 품부된 기의 차별도 없었고 서교와 같이 사제와 신도의 차이도 없이 신도 또한 하늘 위의 하늘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의 지위가 격상된다. 이에 성과 속의 경계가 재배치되는 자생적 근대성의 리미널리티 양상이 동학사상의 천인관계와 지인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동학사상의 외유기화(外有氣化) 지인(地人)관계에 나타난 리미널리티 양상
“조화”라는 개념은 동학사상 당시에도 자연의 주요 특성이기도 하였지만 성리학은 범절이라는 인간사회의 특성을 주로 강조하여 조화의 자연에 나타나는 특성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인간 사회의 절도 있는 변화인 범절에 비해 자연의 조화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성과 연관되는 개념으로 동학 당시 조선 사회는 범절은 넘쳐났지만 조화와 창의성을 살려줄 수 있는 문화가 유교로 인해 억압받았다.
창조와 진화를 의미하는 조화를 억압하는 것은 성리학 뿐 아니라 당시 전통적인 조선 백성의 눈에는 서학도 마찬가지였다. 제사를 미신화하하고 사제와 신도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서학 유일신의 억압은 성리학을 능가하는 권위주의로 다가왔다. 이에 사회는 새로운 반구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봉착하여220) 이를 조화시켜 줄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하였다.
조화는 늘 서로 상반되는 모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음양의 조화, 신구의 조화와 같이 조화는 늘 상반되는 요소를 전제로 한다. 종교인류학에서 조화와 가장 가까운 개념은 리미널리티(Liminality) 개념을 들 수 있다. 문지방, 경계라는 뜻의 리멘(Lime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리미널리티는 인류학자 반 게넵이 연구한 대부분의 통과의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반되는 요소의 경계 지점을 뜻하는 단어였다, 예를 들어 결혼식과 같은 통과의례는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후의 사이에 반구조적인 일탈의 기간인 신혼여행이나 동상례와 같은 의례가 있다. 실제 일상의 통과의례가 늘 일어나는 대문에는 서양의 경우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있고 동양의 경우는 태극이 있었다. 태극과 야누스는 경계지점에서의 일탈의 허용 곧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천주가 조화 곧 리미널리티를 의미하게 된 것은 당시 상극이 극대화된 신존인비의 천인관계에 기인한 바 크다. 당시 상민은 성리학의 입장에서는 탁기가 가득한 존재였고 서학의 입장에서는 죄인이었으나 시천주로 인하여 상제를 모실 수 있는 리미널리티를 제공받았다.
시천주로부터 시작된 천인관계의 변화 곧 리미널리티의 천인관계는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전반에 확대된다. 이에 땅과 사람의 관계, 곧 땅에 기반한 사회와 인간의 관계가 변화한다. 동학은 일찍이 “믿는다”고 하지 않고 “한다”는 말로 불려졌다고 하며 리미널리티로 인해 초래되는 반구조적 사회 곧 커뮤니타스의 반구조적 행위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거쳐 거의 존중받지 못한 창조성과 “조화”가 존중되자 조선시대 가장 억압받던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처우부터 개벽된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초월적 천의 개입에 의한 천관의 변화가 초래한 땅과 인간의 지위상승은 전통적 지인관계에 반구조적 성격의 리미널리티 양상이 나타나게 하였다. 성리학에서 천지의 맑은 기를 품부 받은 양반이 성(聖)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면 탁한 기를 품부 받은 백성은 속(俗)의 영역에 위치되었지만 인간의 지위격상으로 변화가 생겼다. 이제 백성도 왕후장상이 될 수 있는 종교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자생적인 성-속의 재배치가 발생하게 된다.
지인관계를 상세히 살펴보면 혼의 성질을 닮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하늘에 비해 백의 성질을 닮아 형체를 가져 성질이 무거운 땅의 속성은 억음존양, 양존음비와 같이 동양에서도 땅은 인간에게는 구속으로 다가오는 존재였다. 천문지리라는 말과 같이 동양에서 땅은 자연과학의 이법과 같이 인간에게 물질적 법칙으로 일상을 제한하는 존재였다. 서양에서는 물론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추방된 곳이 땅이요 불교에서도 땅은 고통의 온상지였다.
동학사상이 강조한 조화는 전통적인 땅과 인간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동학사상의 시천주가 하늘을 모심으로 인해서 새 하늘을 열어 다시 개벽을 통해 동학사상은 새 지인관계를 만들었다.
동학사상은 과거 금지되었던 땅의 역할 변화를 시천주의 조화를 통해 도모한다. 동학사상에서 지인관계는 하원갑을 지난 호시절221)이 순환된다. 지인관계는 인걸은 지령으로 대표되고 명현달사가 동학신자로 입교하게 된다.222)
동학사상에서 땅은 다시 개벽에 의해 지상천국이 되고 지상신선이 될 수 있는 곳이 된다. 땅의 이치가 다른 동쪽의 학문 곧 동학을 통해 개벽된 땅에서 동학사상은 서학을 극복하는 힘도 얻게 된다. 동학은 서양에게 패배한 중국을 대신해서 서양을 극복하는 힘을 한국에게 부여하여 새 국가도 탄생하게 한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동방의 힘은 중국을 침범한 요망한 서양적을 대보단의 맹세로223) 이겨내게 한다.
천인·지인 관계의 변화는 사회에서 인간의 지위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지고 온다. 전명숙의 문초에도 나오듯이 동학농민운동의 계기는 “온나라 양반되기” 의 기획과 일치한다.224) 이는 『전경』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 225)
동학사상은 나아가 동학농민운동 참가자들이 가슴속에 등용을 꿈꾸게도 하는 평등사상을 지녀 모든 시민이 관료가 되는 것을 도모한다. 그러나 아직 참가자들의 왕후장상이 되려는 욕망이 내재되어 지상천국을 실현하기에 동학사상은 완성을 이루지 못할 욕속부달의 상태였다. 당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노동의욕의 상실이었다고한다. 수확을 해도 빼앗기는 상황에서 왕후장상이 되는 길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실제 『전경』에는 많은 동학참가자들이 실제 참가한 이유로 왕후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상제께서 十二월에 들어서 여러 공사를 마치시고 역도(逆度)를 조정하는 공사에 착수하셨도다. 경석ㆍ광찬ㆍ내성은 대흥리로 가고 원일은 신 경원의 집으로 형렬과 자현은 동곡으로 떠났도다. 상제께서 남아 있는 문 공신ㆍ황 응종ㆍ신 경수 들에게 가라사대 “경석은 성(誠) 경(敬) 신(信)이 지극하여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스스로 청하는 일이니 할 수 없도다”고 일러 주시고 또 “본래 동학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장하였음은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들을 그대로 두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 신명들의 해원 두목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十二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의 중진으로 잡혀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 총대를 하였으므로 이제부터 동학 신명들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 보냈으니 이 자리로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해원이 되리라” 하시고 종이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훗날에 보라. 금전소비가 많아질 것이며 사람도 갑오년보다 많아지리라. 풀어 두어야 후천에 아무 거리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맺으셨도다.226)
위 예문은 동학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보국안민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왕후장상을 도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외유기화의 특성을 가진 동학사상의 지인관계는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었다.
대순사상의 자생적 근대성과 치란의 재활성화
인신강세(人身降世) 천계관(天界觀)의 자생적 근대성
천계관(天界觀)으로서의 천관(天觀)
초월천의 개입에 의한 동학사상의 천관· 지관· 인간관의 변화는 대순사상에서 상제의 인신강세로 재활성화된다. 동학사상의 초월천이 인세에 출현하는 것에 그쳤다면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몸으로 직접 강세한다. 대순사상의 천계관 성립과정은 동학사상의 출현 과정을 요약적으로 설명하는 다음 구절에서 좀 더 명확히 나타난다.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1)
초월천은 동학사상에서는 최초로 인세에 출현하였으나 출현만으로 인간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마침내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한다. 그 배경은 마테오 리치에 의해 물질 중심의 서양 근대성이 천하진멸을 초래한 상황이다. 근대 동아시아의 사상 가운데 민족주의를 초월하여 서양 근대성이 가진 인류 절멸의 위기를 경고한 것은 대순사상 외에는 찾기 힘들다. 상제의 인신강세 또한 동학사상에서 초월천의 출현과 같이 천관, 지관, 인간관에 총체적인 변화를 가지고 왔다.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니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이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 있는 곳에 큰 운수를 감당키 어려운 까닭이니라.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 차 있나니라.2)
대순사상에서 초월천은 구천으로 지칭된다.3) 구천이 강세하는 것은 그동안 기능해왔던 하늘과 땅을 새로 고치기 위해서이다. 하늘과 땅을 하늘에서 고치지 않고 직접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야 인간의 입장에서 하늘과 땅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나눈 구천은 이제 인간이 되어 스스로 만든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는 존재로 전환한다.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 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 “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 하셨도다.4)
기존 종교에서 궁극적 존재로 간주되어 온 하늘이 하늘 위의 하늘 입장에서 묵은 하늘이 되는 천관의 변화가 구천의 인신강세로 드러낸다. 난세를 맞이하여 구조를 바꾸는 해법이 구천에 의해 제시되는 것이다. 구천은 여기서 동학사상과 같이 기존 하늘을 새로 갱신하는 ‘다시 개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뜯어고치는 개조의 방식으로 ‘후천개벽’을 지향한다. 천관의 근대성이 구천에 의해 드러나는 재활성화의 형태는 하늘과 땅을 뜯어 고쳐 개조하는 천지공사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늘을 뜯어 고치는 공사는 명부로부터 시작된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5)
위 예문에서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의 의미는 삼라만상의 근원이 되는 천지를 새로 바꾼다는 의미이다. 동학사상에 나타난 초월천의 출현과 대순사상에 나타난 구천의 인신강세의 차이는 초월천에 실체가 있는가 여부의 차이에 있다. 초월천이 실체를 가지는 것은 인신강세에 의해서이다. 초월천에 의해 초래된 땅과 인간의 지위상승은 실체를 가진 인신강세를 통하여 확대되어 드디어 지관과 인간관도 실체를 가지게 된다. 상제의 인신강세는 인간과 초월천이 마음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까지 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됨을 의미하고 땅 또한 상제가 출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지위격상을 이룬다.
구천이 인신강세 이후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려 하자 기존의 하늘과 땅을 운행하던 신명이 출현한다. 이에 대순사상에서는 동학사상에는 나타나지 않은 신명계로 이루어진 천계, 지계, 인간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대순사상 천관의 특징은 삼계(三界) 중 천계(天界)라는 용어로 대표된다. 대순사상에서 삼계라는 용어를 천계, 지계, 인간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고 있음을 다음 구절은 보여준다.
그 삼계공사는 곧 천ㆍ지ㆍ인의 삼계를 개벽함이요 이 개벽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 하는 일이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예전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으며 남에게서 이어받은 것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다만 상제에 의해 지어져야 되는 일이로다.6)
위 예문에서 천계, 삼계의 계(界)라는 용어는 천지인 삼재(三才)라고 할 때 재(才)와는 대비되는 용어이다. 삼재(三才)는 세 가지 큰 재목, 재료, 재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 예문에서 삼계의 계(界)는 세계(世界)의 계(界)로서 삼재와 삼계가 다른 것은 삼계는 삼재보다 신명계와 같은 복잡하고 다양한 내부 세계, 곧 시스템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신명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대순사상의 삼계는 천·지·인 사이의 역동적이고 현재적인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이 기존 삼재와는 다른 차이가 된다.
대순사상의 삼계(三界)는 천계만 의미하는 불교의 삼계와 다르다. 삼계란 용어가 동양 종교에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사용된 종교는 불교이지만 불교의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된 천계를 의미하므로 천계, 지계, 인간계를 포함하는 대순사상의 삼계와는 다르다. 대순사상의 삼계는 천지인 삼재(三才)에 있는 내부적인 시스템을 강조한 표현에 가깝다.
불교에서 삼계(三界, trailokya 또는 triloka)는 욕계(欲界, desire realm), 색계(色界, form realm), 무색계(無色界, formless realm)를 말하지만, 불교 삼계 개념은 인도 전통 삼계의 영향을 받았고 그 이전의 삼계는 동서양 공통의 천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도교에서도 천지인을 삼재(三才)라고 부르지만, 삼계를 천계, 지계, 인계라고 확정지어 표현한 경우는 대순사상이 최초이다.
천관·지관·인간관은 영어로 코스몰러지(Cosmology)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이 worldview, 우주관이 Universe theory라면 Cosmology로서의 천관·지관·인간관은 영어로 anthropocentricity 혹은 인간중심의 우주관과 가깝고 자연 중심의 우주관인 Astronomy와는 다소 다르다. 삼계관 또한 anthropocentricity에 가깝다.
대순사상 천계관의 성립에서 단계적인 변화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지만, 천지공사 이전과 이후의 천계관으로 구분되고, 천계관을 설명하는 단계에 따라 천계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대순사상 천계관의 성립은 대순사상 천계관이 나타나는 과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천계관은 수운의 천사문답부터 나타난다. 대순사상의 「예시」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7)
위 글에서 결국 홍포된 바라고 하는 것은 증산이 천명과 신교를 내렸다는 동학사상을 의미한다. 동학사상은 짧은 기간에 요원의 들불같이 퍼져 나갔지만, 증산의 사상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좀 더 뒤인 보천교와 무극도 시절이다. 따라서 대순사상은 동학사상을 증산의 사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윗글에서 알 수 있다. 『전경』「예시」 부분의 위 구절을 통해 동학사상에 나타난 “천지가 귀신이고 귀신이 음양”이라는 구절과 “상제를 귀신이라 한다”는 동학사상의 천관은 대순사상의 천계관과 같은 것으로 대순사상이 해석함을 알 수 있다.8)
“천지가 귀신이고 귀신이 음양이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동학사상의 천관이 동양의 속성적인 천관 중 귀신이라는 실체 개념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면 대순사상의 천계관에서는 실체로서의 신명 개념이 “계”라는 시스템 속에서 매우 상세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동학의 성립에 천사문답이 결정적이었다면 대순사상의 경우는 마테오 리치로부터 시작된 근대문명의 폐해가 상제 인신강세의 결정적 배경이었음을 다음 예문은 보다 상세히 보여준다.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9)
대순사상은 마테오 리치로부터 초래된 근대 문명의 위기로 신성, 불, 보살이 구천상제의 인신 강세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린 후 성과가 없어 직접 인신 강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에서 초래된 서구적 근대성이 야기한 병폐가 대순사상 천관의 성립배경이 된다.
동학사상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성-속의 재배치와 상관적 사유의 리미널리티는 대순사상의 재활성화에 의해서 성취된다. 대순사상은 이 성취를 만물의 이치를 통합하는 개벽이라고도 하고 만물이 무르익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이라고도 한다. 신명은 하늘 밖의 하늘 곧 구천10) 명에 의하여 천지로 인간을 화육하는 존재였다.11)대순사상의 천관이 개벽과 서신사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동학사상의 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명의 개념이 도입되기 때문이다.12)
대순사상이 동학사상과 달리 신명을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상제의 인신강세 때문이다. 계시의 형태로 머물러 있던 동학사상과 달리 대순사상은 상제의 인신강세로 신명이 인간의 마음에 넘나들며 개입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동학사상에서 인간은 하늘 밖의 하늘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지만 이제는 구천이 강세하는 존재로 격상된다. 이는 구천의 인신강세이고 대순사상의 천관은 이에 인신강세를 특징으로 한다. 인신강세는 따라서 동학사상에 의해 시작된 성-속 재배치와 리미널리티를 완성시킨다.
인신강세(人身降世)의 천계관(天界觀)
대순사상의 천계관 양상은 상제의 인신강세와 천계관의 세분화로 집약된다. 대순사상의 천계관은 상제가 계시는 하늘 밖의 하늘 곧 천지인 외부의 천과 상제의 사명을 받은 천지신명이 주재하는 천지인으로 구분된 천, 그리고 선령신이 계시는 또 다른 하늘 등으로 세분화 된다. 이는 종도 김송환과의 문답에서 먼저 드러난다.
하루는 김 송환(金松煥)이 상제께 여쭈기를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 상제께서 “있느니라”고 대답하시니라. 또 그가 여쭈기를 “그 위에 또 있나이까.” 상제께서 “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도다. 이와 같이 아홉 번을 대답하시고 “그만 알아두라”고 이르셨도다. 상제께서 후일에 그를 만사불성(萬事不成)이라 평하셨나니라.
위 예문에서 대순사상의 천계관은 9개 이상의 중첩된 천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순사상의 천계관이 우선 하늘 밖의 천인 구천과 상제의 명에 따라 만물을 화육하는 천지인으로 나뉜 천지인의 천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다음의 구절에 나타나다.
뇌성(雷聲)이라 함은 천령(天令)이며 인성(仁聲)인 것이다. 뇌(雷)는 음양이기(陰陽二氣)의 결합(結合)으로써 성뢰(成雷)된다. 뇌(雷)는 성(聲)의 체(體)요, 성(聲)은 뇌(雷)의 용(用)으로써 천지(天地)를 나누고 동정진퇴(動靜進退)의 변화(變化)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승강(昇降)케 하며 만물(萬物)을 생장(生長)하게 하고 생성변화(生成變化) 지배자양(支配滋養)함을 뜻함이며,13)
위 예문은 구천에 의해 천지가 생성되는 배경을 보여준다. 위 예문은 대순사상에서 신앙의 대상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의 신위 중 “뇌성”부분을 설명한 글이다. 위 예문은 첫째, “천지를 나누고”라는 부분에서 천지가 상제에 의해 뇌성으로 나누어지며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둘째,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승강(昇降)케 하며”는 천계와 지계가 서로 승강을 통해 만물을 화육하는 원리가 상제에 의해 의도된 것임을 보여준다. 셋째, “만물(萬物)을 생장(生長)하게 하고 생성변화(生成變化) 지배자양(支配滋養)”은 천지가 상제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순사상에서 천계관이 복잡하게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천지의 운행이 매우 체계적이어야하기 때문이다. 다음 구절은 대순사상의 천(天)이 상제의 명으로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을 보여준다.
상제께서 종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가라사대 “칠산(七山)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그물에 잡히며 농사도 또한 그와 같이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맺느니라. 굶어 죽는 일은 없느니라” 하셨도다.14)
위 예문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포함하여 천지의 화육이 신명에 의한 천지의 운행에 따라 결정됨을 보여준다. 하늘은 칠산 바다의 잡히는 조기의 수까지 정하고 있다. 위 예문의 삼계관은 오늘날 과학에서 우리가 사는 우주와 동일한 또 다른 우주가 존재가능하다고 하는 평행우주관과 유사하다.15)
대순사상에서 이러한 인간계의 만사를 정하는 천지 자체도 상제에 의해 조화된 것이다. 대순사상에서 천지신명이 천지의 운행을 주관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상제께서 하루는 김 형렬에게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후천 선경(後天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
고 이르시고 그에게 신안을 열어 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셨도다.16)
위 예문에서 천지신명은 회산(會散)을 통해 상제의 천명을 청령(聽令)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청령과 회산은 천지의 지극한 성경신에 의한 노력으로 가능하다. 천지는 풍우를 일으키는데도 수많은 노력이 경주된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공우에게 “천지의 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 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三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다 하느니라”고 이르셨도다.17)
위 예문에서 풍우를 일으키는데도 무한한 공력이 든다는 것은 복잡한 체계로 천계가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하늘도 묵은 하늘이 되기도 하고18) 새로 바뀌어 새 하늘이 되기도 한다.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 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 “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 하셨도다.19)
위 예문은 첫째. 상제의 의해 나누어진 하늘이 오래되면 묵은 하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삼계가 혼란하면 삼계가 서로 죽이려는 충돌의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늘도 뜯어 고쳐야 되는 바 이는 상제에 의해 의도된다.20)
대순사상에서 나타난 천관은 궁극적 존재였던 하늘이라는 기존의 천관에 대해 기존의 천관을 포월하는 천관을 보여준다. “신은 죽었다”라고 하여 기존의 천관을 전면 부정하면서 하늘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 서양의 근대적 천관과 달리 기존의 하늘을 인정하되 기존의 하늘이 낡아 새 하늘로 교체한다는 가종(加宗)의 개념으로 천관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신명의 청령과 회산이라는 기존 하늘의 개념도 폐기되지 않고 계승된다. 서양의 초월천이 동양의 신명과도 실체로써 상호 융화되는 천관으로서 대순사상은 성-속의 관계를 재배치하고 일상 속에 성이 들어옴으로써 자생적 근대성을 완성하고 자생적 탈근대성으로까지 전개된다.
인신강세(人身降世) 천계관(天界觀)에 나타난 동서양 천관(天觀)의 재활성화
인신강세(人身降世) 천계관(天界觀)에 나타난 유불선 천관(天觀)의 재활성화
인신강세로 실체화된 대순사상의 구천 천관은 동아시아 천관의 세부적 양상에 대해서도 통합적 재해석을 제시했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유불선 천관과 대순사상 천관의 차이는 유불선과 대순사상이 공유하고 있는 음양오행 원리 중 ‘토’의 해석 차이에 있다.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21)
위 예문에서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다’는 것은 대순사상의 수련 자세에서 오른손이 왼손의 위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토극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토극수는 『포박자』에서 오행의 5요소가 토와 수 2개의 요소로 압축될 수 있다는 내용을 서술한 것이다. 여기서 수는 지수화풍으로 말하면 지수화풍을 대표하고 토는 제5원소에 해당한다. 5행 또한 하도(河圖)에서는 지수화풍과 같이 제5원소가 분리되어 동시에 존재했지만 속성 중심의 상관적 사유가 상극화되는 낙서가 되면서 제5원소는 내부로 편입되고 이로써 내재신만 남고 초월신은 숨은 신으로 유명무실하게 된다. 이로부터 동양의 권력은 전제화되고 유교의 전헌이 강해진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