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의 가치

Ⅳ.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의 가치

1. 음양합덕과 경제동기의 회복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이라는 대순사상의 순환적 경제관은 각각 경제동기의 회복, 경제윤리의 재생, 경제이념의 조화, 환경위기의 극복이라는 경제문제에 실제적으로 각각 적용된다. 음양합덕에 기반하는 대대적(待對的) 자유지상주의 재부관은 경제동기의 회복, 신인조화에 기반한 회귀적(回歸的) 사회계약주의 분배관은 경제윤리의 재생, 해원상생에 기반한 공리주의적 노동관은 경제이념의 조화, 도통진경에 기반한 유행적(流行的) 공동체주의 재화관은 환경위기의 극복에 기여한다.

먼저 음양합덕에 기반하는 대대적(待對的) 자유지상주의 재부관을 경제동기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대대적(待對的) 자유지상주의 재부관은 오늘날 도교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자유지상주의가 뜻하지 않게 초래한 경제동기 상실을 순환의 힘으로 회복시킨다.

최초 자유의 확대라는 경제동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립했던 도교는 유교의 힘에 눌려 순환론에 치우쳐 있던 중 서양에 전파되어 서교의 적극적 박애정신과 결합하여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자유지상주의로 발전, 인류의 경제동기를 크게 진작한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가 진작시킨 인류의 경제 동기는 서교가 가지고 있는 순환성의 부족으로 오히려 크게 후퇴되고 물질적 욕망은 비대하고 정신적 동기는 허약한 도박자본주의로 전락한다. 상극적인 자유지상주의가 초래하는 정신적 상처로 인해 인류는 자유의 확대라는 경제동기를 상실하고 상류층에서는 카지노자본주의, 일반인은 로또자본주의에 매몰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도박과 같은 우연에 운명을 맡기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아무런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경제동기 위기에 대하여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오직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자유만을 자유로 규정한 자유지상주의와 달리 경제의 순환성에 입각하여 제도의 기초구조 개혁이라는 자유의 원초적인 힘의 부활을 현대 경제동기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첫째, 도교 자본주의의 순환적 경제동기회복사상을 먼저 강조하고 둘째, 자유지상주의의 경제동기 회복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며 셋째,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의 경제동기 위기의 대안으로 음양합덕을 제시하고 넷째, 음양합덕 사상으로 변화된 자유지상주의인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도교 자본주의의 순환적 경제동기회복사상을 강조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재부는 순환의 결과이므로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한 재부에 대한 욕망은 대대성(待對性)에 의해 매우 강조된다.580)

나의 일은 남이 죽을 때 잘 살자는 일이요 남이 잘 살 때에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니라.(『전경』교법1장6절)

위 글은 자유의 확대라는 경제동기의 회복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고 그 욕망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에도 더욱 강조되는 중요한 덕목이 됨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간으로서 현실적인 삶과 영화와 복록이라는 자유의 확대를 추구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581) 동양의 고전적인 “도인”이라는 관념 때문에 대순의 재부관을 흔히들 재부관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대순 사상의 재부관은 순환을 전제하는 한 자유지상주의 재부관보다 더 긍정적이다.

다음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자유지상주의 경제동기 회복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교육은 경제 순환을 위한 핵심관건이므로 순환을 포기하고 관리 봉록 등 현실적 이익에 치우치는 공리 위주의 교육을 매우 비판한다.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도다. (『전경』교운1장 17절)

위 글은 자유지상주의는 자유를 강조하여 유교에 눌려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도교자본주의를 받아 들여 확대 발전시키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자유의 기반인 사회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자유를 강조하여 오히려 자유의 기반인 사회를 무너뜨려 기본적인 자유마저 무너뜨려 경제동기를 매우 피폐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유의 본질인 사회제도 개혁을 기능으로 하는 학교를 관리 봉록이라는 개인적 목적으로 운용함에 따라 전체 경제 순환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의 경제동기 위기에 대하여 제시하는 대안을 살펴보면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윤리와 재리 중 재리를 우선하는 자유지상주의와 반대로 윤리를 우선 제시하는 음양합덕을 보여준다. 음양합덕이란 태극에서 위에 있는 불과 아래에 있는 물에서 아래 위 순서를 바꿔 물을 위에 있게 하고 불을 아래 있게 해서 힘의 균형을 회복시켜 자동적으로 순환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582) 근본인 윤리가 물이고 재리가 불이라면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불(재리)을 물(윤리)위에 놓는 자유지상주의와 달리 물(윤리)을 불(위)에 놓는 지천태괘를 실천한다.

대학(大學)에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니 지소선후면 즉근도의(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라 하였고 또 「기 소후자에 박이요 기 소박자에 후하리 미지유야(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라 하였으니 이것을 거울로 삼고 일하라. (『전경』교법2장 51절)

모든 일은 근본을 두텁게 먼저 하고 말을 나중에 얇게 해야 하는데 근본인 윤리도덕은 얇고 나중에 하고 말(末)인 재물은 두텁게 먼저 하는 현대인과 같은 사람은 실패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전경』이 강조하는 『대학』에서는 도덕을 본(本) 재물을 말(末)이라 하여 재물을 도덕보다 우선할 경우 큰 위기에 닥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말단(末端)인 재물을 덕보다 우선하여 자기도 모르게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서양의 자유지상주의가 음양합덕 사상으로 변화된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 (『전경』교법 1장 2절)

위 글은 대순의 대대적 재부관은 사회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개인의 힘으로 사회 보장이 해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개인의 재부는 곧 그 사람의 능력으로 보는 서양의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과 달리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는 남의 필요에 의해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필요주의이며 남을 위해 일한 공덕도 재부가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울러 대대성에 의해 물질보다 윤리를 우선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도교와 자유지상주의 재부관에서 사회적 정의는 개인의 자유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도교는 유교의 인과 예를 자연이 제 기능을 상실할 때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도(道)라고 표현하였다.583) 칼빈에게 재부는 신의 구원 예정에 대한 증명이니 다른 사람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도교와 칼빈주의, 자유지상주의는 모두 최소한의 국가개입을 요청하며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사회복지를 희망한다. 자유지상주의를 위배하지 않고 사회보장을 증진시키는 딜레마는 자본주의의 핵심문제이다. 대대적 재부관에서는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개인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는 내가 잘 되려면 내가 먼저 주면 된다. 우주는 순환하므로 내가 준 재부(財富)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재부를 늘이기 위해서는 남이 주고 나면 돌려준다는 것에서 남이 주기 전에 먼저 준다는 순서 하나만을 바꾸면 될 뿐이라고 한다. 대대적 재부를 쌓기 위한 순서를 알 때 도(道)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경제동기회복이 실패한 이유는 자유지상주의적 경제동기회복이 추구하는 자유가 사회계약주의의 정의와 공리주의의 공동체 이익, 공동체주의의 공동체의 탁월성과 서로 충돌하여 자유에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584) 대대적 자유지상주의에서 내가 잘되기 위해 남을 잘 되게 하는 인간상은 사회계약주의와 공리주의, 공동체주의를 모두 아울러 경제동기를 회복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상 대대적 자유지상주의가 개인-경제의 측면에 있는 경제동기라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표로 나타낼 수 있다.

\<표4.1\> 대순사상의 대대적 재부관

| | 세부 내역 | 『전경』관련 구절 |

| ----- | :---- | ----- |

|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의 인정 | 현실의 성공이 삶의 중요한 목적이 됨. | -남이 잘 살 때에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공부 (교법1장6절) |

|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의 문제점 | -자유의 범위를 남용(음양합덕이 안 됨) -윤리보다 이익을 우선함 -인성보다 공리위주의 교육 | -학교공부가 관리봉록에 치움침 (교운1장17절) |

| 자유지상주의적 재부관의 문제점 해결방안 | -음양합덕 -내가 받고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고 받는 것으로 순서를 바꿈. | -지소선후면 즉근도의(교법2장 51절) |

| 대순의 대대적 자유지상주의 재부관 | -능력주의 VS 필요주의 -사회정의도 공덕이라는 재부가 됨 -대대성에 의해 물질보다 윤리를 우선함 |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 (교법1장2절) |

2. 신인조화와 경제윤리의 재생

신인조화에 기반하는 회귀적(回歸的) 사회계약주의 분배관을 경제윤리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회귀적(回歸的) 사회계약주의 분배관은 오늘날 보살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사회계약주의가 뜻하지 않게 초래한 경제윤리 실종을 순환의 힘으로 재생시킨다.

최초 정의의 실현이라는 경제윤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립했던 불교는 유교의 힘에 눌려 순환론에 치우쳐 있던 중 서양에 전파되어 서교의 적극적 박애정신과 결합하여 칸트주의와 같은 사회계약주의로 발전, 인류의 경제윤리를 크게 진작한다. 그러나 사회계약주의가 진작시킨 인류의 경제 윤리는 서교가 가지고 있는 순환성의 부족으로 오히려 크게 후퇴하고 윤리적 욕망은 비대하고 현실적 반영은 초라한 윤리적 허무주의로 전락한다. 융통성 없는 사회계약주의가 초래하는 정신적 피폐로 인해 인류는 정의의 확대라는 경제윤리를 상실하고 상류층에서는 극단적 상대주의, 일반인은 아노미에 매몰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불의와 타협하고 윤리적 자긍심에 상처를 입으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아무런 적극적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경제윤리 위기에 대하여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는 오직 시장에서 남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정의만을 정의로 규정한 서양의 사회계약주의와 달리 경제의 순환성에 입각하여 제도의 기초구조 개혁이라는 정의의 원초적인 힘의 부활을 현대 경제윤리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를 살펴보면 회귀적 사회계약주의는 첫째, 보살 자본주의의 순환적 경제동기회복사상을 먼저 강조하고 둘째, 사회계약주의의 경제윤리 재생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며 셋째,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의 경제윤리 위기의 대안으로 신인조화를 제시하고 넷째, 사회계약주의가 신인조화 사상으로 변화된 회귀적 사회계약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가 보살 자본주의의 순환성 중시 분배관을 부활시켜 경제윤리를 진작시키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분배는 순환의 결과이므로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한 분배에 대한 욕망은 회귀성(回歸性)에 의해 매우 강조된다.

상제께서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셨도다. 김 형렬은 자기 머슴 지 남식을 대하실 때마다 존댓말을 쓰시는 상제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하고 청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그 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일러 주셨도다. (『전경』교법 1장10절)

위 글은 기본적 정의에 관한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을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 정의는 또한 공정한 기회 균등으로 이어진다.585) 불교의 인과응보와 같은 연기론처럼 순환론인 대순 사상에서도 버림을 받고 명색이 없던 것을 원인으로 해서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간다. 공정한 기회균등은 자존감의 사회적 기초의 터전이 된다. 과거 한국의 신분제도는 인도에 버금갔으나 한국은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는 인도에 비해 거의 신분제도가 남아 있지 않으며 선진국인 영국, 미국, 일본 등에 비해서도 가장 민주화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전경』이 기록되던 당시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을 없앤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으나 역사는 『전경』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양의 고전적인 “연장자 존중”이라는 관념 때문에 대순의 분배관을 흔히들 위계적인 분배관으로 오해하지만 대순 사상의 분배관은 순환을 전제하는 한 사회계약주의 분배관보다 더 적극적이다.

다음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가 사회계약주의 경제윤리 재생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공정(公正)은 경제 순환을 위한 핵심관건이므로 외면 수습 등 공동체적 참여를 부정하는 사회계약주의적 인사(人事)를 매우 비판한다.

이와 같이 범사가 풀린 후에 상제께서 경오에게 「내가 그대에게 돈 七十냥이 있음을 알고 청구한 것인바 왜 그렇게 속이느뇨」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정색하여 「참으로 없었나이다」고 여쭈니라. 그 이튿날 경오의 집에 화적이 들어 그 돈을 모두 잃었도다. 그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 돈에 척신이 범함을 알고 창생을 건지려고 청한 것이어늘 그가 듣지 아니하였도다.」(『전경』행록 3장16절)

위 글은 사회계약주의는 정의를 강조하여 유교에 눌려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보살자본주의를 받아 들여 확대 발전시키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정의의 기반인 공동체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개인적 의무를 강조하여 오히려 정의의 기반인 사회를 무너뜨려 기본적인 정의마저 무너뜨려 경제윤리를 매우 피폐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의의 본질인 사회제도 개혁을 기능으로 하는 재화를 재리라는 개인적 목적으로만 운용함에 따라 개인적 경제 순환마저 결정적으로 무너뜨렸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가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의 경제윤리 위기에 대하여 제시하는 대안을 살펴보면 회귀적 사회계약주의는 개인의 의무수행과 위법자에 대한 제재 중 개인의 의무수행을 우선하는 사회계약주의와 반대로 위법자에 대한 제재 윤리를 우선 제시하는 신인조화를 보여준다.586) 신인조화란 도미노에서 최초의 원인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커지거나 작아져서 마지막에 자신에게 반드시 회귀하는 피드백(feedback, 되먹임 고리)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 위법자에 대한 제재 윤리를 신(神), 개인의 의무수행을 인(人)이라 할 때 회귀적 자유지상주의는 인(人, 개인의 의무수행) 보다 신(神, 위법자에 대한 제재 윤리)을 위에 놓는 사회계약주의와 달리 신(神, 위법자에 대한 제재 윤리)을 인(人, 개인의 의무수행)과 대등하게 놓는 신인조화를 실천한다.

상제께서 교훈하시기를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전경』교법 3장 24절)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신(神)의 영역을 두텁게 먼저 하고 보이는 인(人)의 영역을 나중에 얇게 해야 하는데 근본인 신(神)의 영역은 얇게 하고 말(末)인 인(人)의 영역은 두텁게 먼저 하는 현대문명은 실패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말단(末端)인 인간의 욕망을 신명보다 우선하여 자기도 모르게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회귀적 사회계약주의는 서양의 사회계약주의가 신인조화 사상으로 변화된 회귀적 사회계약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생략)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전경』교법 1장 2절)

위 글은 대순의 회귀적 분배관은 사회계약주의보다 더 엄격한 신명이라는 분배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회귀적 사회계약주의의 분배관은 사회계약주의보다 더 철저한 분배관이며 단순히 투입된 만큼 산출되는 단순계가 아니고 투입된 것이 증폭되거나 감소해서 나오는 복잡계이며 따라서 최초 아무런 원한이 없도록 하게 하는 “무척”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불교와 사회계약주의 분배관에서 개인적 자유는 사회의 정의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불교는 유교의 인과 예를 부질없는 분별이라 강조하고 분별을 초월하는 것이 공(空)이라고 표현하였다. 칸트에게 정의는 개인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니 다른 사람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불교와 칸트주의, 사회계약주의는 모두 최소한의 국가개입을 요청하며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사회복지를 희망한다.587)

회귀적 분배관에서는 개인의 은혜도 척도 모두 되돌아 온다.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개인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는 내가 잘 되려면 내가 먼저 증여하면 된다. 우주는 순환하므로 내가 증여한 재부(財富)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회귀적인 분배를 늘이기 위해서는 남에게 은혜든 척이든 받고 싶으면 먼저 준다는 순서 하나만을 바꾸면 될 뿐이라고 한다. 회귀적 배분을 쌓기 위한 순서를 알 때 신명과 통한다 할 수 있다.

사회계약주의적 경제윤리 재생이 실패한 이유는 사회계약주의적 경제윤리재생이 추구하는 정의가 자유지상주의의 자유와 공리주의의 공동체 이익, 공동체주의의 공동체의 탁월성과 서로 충돌하여 정의에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귀적 사회계약주의에서 상대는 몰라도 상대의 신명은 알 것이라 믿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인간상은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 공동체주의를 모두 아울러 경제윤리를 회복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상 회귀적 사회계약주의 분배관을 통한 경제윤리 문제의 해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4.2\> 대순사상의 회귀적 분배관

| | 세부 내역 | 『전경』관련 구절 |

| :---- | :---- | ----- |

|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의 인정 | -기본적 자유 -공정한 기회 균등 -자존의 사회적 기초 |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교법 1장10절) |

|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의 문제점 | -개인간 소통의 부재 -은혜를 안 갚아도 책임 없음 -단순계 | 경오에게 척신이 범한 돈을 도적에게 뺏기게 되었음을 설명하심(행록3장16절) |

| 사회계약주의적 분배관의 문제점 해결방안 | -신인조화 -영겁회귀 -복잡계 |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심 (교법 3장 24절) |

| 사회계약주의와 대순의 분배관 비교 | -대순은 사회계약주의 보다 더 엄격한 분배 네트워크로 연결 -구조적으로 철저한 분배관임 -무척은 복잡계의 초기조건임 |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예시 1장 43절) |

3. 해원상생과 경제이념의 조화

해원상생에 기반하는 중화적(中和的) 공리주의 노동관을 경제이념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중화적(中和的) 공리주의 노동관은 오늘날 유교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공리주의가 뜻하지 않게 초래한 경제이념 불화을 순환의 힘으로 조화시킨다.

최초 공익의 실현이라는 경제이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립했던 유교는 유교 자체의 전헌에 눌려 순환론에 치우쳐 있던 중 서양에 전파되어 서교의 적극적 박애정신과 결합하여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공리주의로 발전, 인류의 경제이념을 크게 진작한다. 그러나 사회계약주의가 진작시킨 인류의 경제 이념은 서교가 가지고 있는 순환성의 부족으로 오히려 크게 후퇴하고 이념적 선전은 화려하고 현실적 발전은 초라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약자의 배려 없는 공리주의가 초래하는 냉전으로 인해 인류는 공익의 확대라는 경제이념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에서는 빈부차의 극대화, 공산주의에서는 성장정체에 매몰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상을 접고 인간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며 꿈이 좌절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아무런 적극적 공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경제이념 위기에 대하여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는 오직 정치에서 남보다 득표를 많이 얻는 공익만을 공익으로 규정한 서양의 공리주의와 달리 경제의 순환성에 입각하여 시장의 효율성 제고라는 공익의 원초적인 힘의 부활을 현대 경제이념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를 살펴보면 중화적 공리주의는 첫째, 유교 자본주의의 순환적 경제이념 조화사상을 먼저 강조하고 둘째, 공리주의의 경제이념 조화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며 셋째, 공리주의적 분배관의 경제이념 위기의 대안으로 해원상생을 제시하고 넷째, 공리주의가 해원상생 사상으로 변화된 중화적 공리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가 유교자본주의의 순환성 중시 노동관을 부활시켜 경제이념을 진작시키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노동-생산은 순환의 결과이므로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한 생산에 대한 욕망은 중화성(中和性)에 의해 매우 강조된다.588)

상제께서 기유(己酉)년에 들어서 매화(埋火) 공사를 행하시고 四十九일간 동남풍을 불게 하실 때 四十八일 되는 날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병을 치료하여 주실 것을 애원하기에 상제께서 공사에 전념하시는 중이므로 응하지 아니하였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서 원망하였도다. 이로부터 동남풍이 멈추므로 상제께서 깨닫고 곧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위안케 하시니라. 이때 상제께서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 기운이 막힌다」고 말씀하셨도다. (『전경』공사 3장 29절)

위 글은 천지공사를 위해서 감수한 소수의 희생도 천지의 기운을 막을 만큼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하는 공리주의의 경우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므로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글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희생한다고 해서 결코 소수의힘이 다수의 힘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양의 고전적인 “사농공상”589)이라는 관념 때문에 대순의 노동관을 흔히들 회피적인 노동관으로 오해하지만 대순 사상의 분배관은 순환을 전제하는 한 공리주의 노동관보다 더 긍정적이다.

다음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가 공리주의 경제이념 조화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효율은 경제 순환을 위한 핵심관건이므로 시장제도내적 효율성을 부정하고 정치적으로 다른 대안을 내세우는 공리주의적 정치를 매우 비판한다.

원일이 자기 집에 상제를 모시고 성인의 도와 웅패의 술을 말씀 들었도다. 그것은 이러하 였도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전경』교운 1장16절)

위 글은 공리주의는 공익을 강조하여 유교적 전헌에 빠져 공익의 기반인 개인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공동체적 이익만 강조하여 오히려 공익의 기반인 개인을 무시하고 기본적인 공익마저 무너뜨려 경제이념을 매우 피폐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공익의 본질인 사회제도 개혁을 기능으로 하는 웅패의 술을 개인적 목적으로만 운용함에 따라 사회적 경제 순환마저 결정적으로 무너뜨렸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가 공리주의적 분배관의 경제윤리 위기에 대하여 제시하는 대안을 살펴보면 중화적 공리주의는 소수의 배려와 다수의 이익에 대한 선택 중 다수의 선택을 우선하는 공리주의와 반대로 소수자에 대한 배려 윤리를 우선 제시하는 해원상생을 보여준다. 해원상생이란 두 개 이상의 다름 힘들이 서로 순환적 이득을 취하는 구조를 포함한다.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의 피해을 원(冤)이라 한다면,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해원(解寃)이라 하고 해원이 이루어진 다음의 상생을 해원상생이라 할 수 있다. 중화적 공리주의는 원(寃)(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의 피해)보다 해원(解寃)(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을 앞에 놓았다.

전 봉준(全琫準)이 학정(虐政)에 분개하여 동학도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더욱 세태는 흉동하여져 그들의 분노가 충천하여 그 기세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었도다. 이때에 상제께서 그 동학군들의 전도가 불리함을 알으시고 여름 어느 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외워주시며 동학군이 눈이 내릴 시기에 이르러 실패할 것을 밝히시고 여러 사람에게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하셨느니라. 과연 이해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멸되고 상제의 말씀을 좇은 사람은 화를 면하였도다. (『전경』행록 1장23절)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근본 영역을 두텁게 먼저 하고 보이는 영역을 나중에 얇게 해야 하는데 근본인 시장 내에서의 효율에 대한 검토는 얇게 하고 말(末)인 제도 외적 명분만 두텁게 먼저 하는 동학과 같은 체제는 실패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전경』의 병세문에서는 천하의 세에 어두운 사람은 죽는 기운에 빠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590) 그러나 현대인은 말단(末端)인 명분을 실리보다 우선하여 자기도 모르게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는 서양의 공리주의가 해원상생 사상으로 변화된 중화적 공리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상제께서 정미년 섣달 스무사흘에 신 경수를 그의 집에서 찾으시니라.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일월무사 치만물 강산유도 수백행(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가르치고 오주(五呪)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 (『전경』교운 1장 30절)

위 글은 대순의 순환적 경제관에서 인간은 가운데서 자리에서 중화(中和)하는 중찰인사하는 존재가 되므로 주어진 틀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화적 공리주의의 해원이 공리주의적 혁신에 우선하여 모든 혁신이 해원이 될 때 혁신에 도달하기 위한 성경신은 모두 수명과 복록 곧 가치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순의 중화적 노동관은 개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공동체의 힘으로 사회 보장이 해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교와 공리주의 노동관에서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한다. 유교는 불교의 공과 도교의 기를 허황된 허무적멸이라 비판하고591) 개인을 초월하는 것이 대동(大同)이라고 표현하였다.592) 공익은 공동체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니 모든 개인이 관여할 문제였다. 유교와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모두 최대한의 국가개입을 요청하며 소수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사회복지를 희망한다. 공리주의를 유지하면서 소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딜레마는 자본주의의 핵심문제이다.

중화적 노동관에서는 다수의 이익도 소수의 이익도 모두 하나로 간주된다.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사회적 다수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는 내가 잘 되려면 내가 먼저 주면 된다. 우주는 순환하므로 공동체가 배려한 재부(財富)는 극단을 벗어난 중용으로593) 어떤 형태로든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중화적인 생산을 늘이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권익도 먼저 배려해 준다는 순서 하나만을 바꾸면 될 뿐이라고 한다. 중화적 배분을 쌓기 위한 순서를 알 때 해원상생이 된다 할 수 있다.

공리주의적 경제이념 조화가 실패한 이유는 공리주의적 경제이념 조화가 추구하는 공익이 자유지상주의의 자유와 사회계약주의의 사회정의 , 공동체주의의 공동체의 탁월성과 서로 충돌하여 공익에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화적 공리주의에서 자신의 성실, 경건, 신념을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알 것이라 믿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인간상은 자유지상주의와 사회계약주의, 공동체주의를 모두 아울러 경제이념을 조화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경제이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순의 중화적 공리주의에 대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4.3\> 대순사상의 중화적 노동관

| | 세부 내역 | 『전경』관련 구절 |

| :---- | :---- | ----- |

| 공리주의적 노동관의 인정 | -개인보다 공동체 우선 -공동체 정의만큼 공동체 이익우선 -혁신 및 효율존중 |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 기운이 막힌다(공사 3장 29절) |

| 공리주의적 노동관의 문제점 | -질적 차별 무시, 획일화 -윤리보다 이익 우선 -소수자 무시 |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교운 1장16절) |

| 공리주의적 노동관의 문제점 해결방안 | -중화적 순환 -혁신보다 해원상생을 우선 -충효열을 성경신으로 평가함 |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행록 1장 23절) |

| 공리주의와 대순의 노동관 비교 | -인간은 틀 자체를 혁신하는 존재 -능력이 아니 필요에 의한 노동 -해원을 위한 충효열 |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교운1장30절) |

4. 도통진경과 환경위기의 극복

도통진경에 기반하는 유행적(流行的) 공리주의 노동관을 환경위기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유행적(流行的) 공동체주의 재화관은 오늘날 서구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공동체주의가 뜻하지 않게 초래한 환경위기를 순환의 힘으로 극복시킨다.

최초 공동체의 실현이라는 경제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립했던 서교는 서교 자체의 독단에 눌려 순환론에 치우쳐 있던 중 서양에 전파된 유불선의 적극적 계몽정신과 결합하여 사회주의, 사회복지주의와 같은 공동체주의로 발전, 인류의 경제환경을 크게 진작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가 진작시킨 인류의 경제 환경 개선은 서교가 가지고 있는 순환성의 부족으로 오히려 크게 후퇴하고 물질적 발전은 화려하고 자연 환경은 초라한 환경위기로 전락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공동체주의가 초래하는 환경위기로 인해 인류는 공동체의 확대라는 이상적 경제환경을 상실하고 인류 공동체의 절멸 위기에 매몰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환경위기에 대한 대책을 포기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꿈이 좌절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아무런 적극적 공동체적 대응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환경위기에 대하여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는 오직 경제적으로 다른 공동체보다 유리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만을 공동체로 규정한 서양의 공동체주의와 달리 경제의 순환성에 입각하여 인류의 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공동체의 원초적인 힘의 부활을 현대 환경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를 살펴보면 유행적 공동체주의는 첫째, 서구 서교자본주의의 순환적 환경위기 극복사상을 먼저 강조하고 둘째, 공동체주의의 환경위기 극복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며 셋째, 공동체주의적 재화관의 환경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도통진경을 제시하고 넷째, 공동체주의가 도통진경 사상으로 변화된 유행적 공동체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가 서구자본주의의 순환성 중시 재화관을 부활시켜 경제 공동체의 환경위기 극복을 진작시키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재화는 순환의 결과이므로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한 공동체594)와 재화에 대한 증여 욕망은 유행성(性)에 의해 매우 강조된다.

이해 七월에 동학당원들이 원평에 모였도다. 김 형렬이 상제를 뵈옵고자 이곳을 지나다가 동학당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사실을 아뢰니 상제께서 그 모임의 취지와 행동을 알아 오도록 그를 원평으로 보내시니라. 그는 원평에서 그것이 일진회의 모임이고 보국안민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대회 장소가 충남(忠南) 강경(江景)임을 탐지하고 상제께 되돌아가서 사실을 아뢰었도다. 이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네들로 하여금 앞으로 갑오(甲午)와 같은 약탈의 민폐를 없애고 저희들 각자가 자기의 재산을 쓰게 하리라. 내가 먼저 모범을 지어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본댁의 살림살이와 약간의 전답을 팔아 그 돈으로 전주부중에 가셔서 지나가는 걸인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이로부터 일진회원들은 약탈하지 않고 자기 재산으로 행동하니라. 이 일로써 전주부민들은 상제께서 하시는 일에 감복하면서 공경심을 높였도다. (『전경』 교운 1장 15절)

위 글은 대순사상은 공동체 이익만큼 공동체의 정의를 우선하여 개인의 재산을 공동의 목적에 사용하는 박애주의적 재화관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진회와 동학이 공동을 위한 목적으로 일어났음에도 주민의 약탈로 연명하는 것을 예측하시고 미리 공동체주의적인 사례를 보여 줌으로써 일진회도 같이 자기 돈으로 공동체의 일에 종사하게 한다. 대순의 유행적 재화관은 공동체주의 재화관과 같이 재화가 비록 개인의 소유일지라도 개인의 임의대로 취급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동학은 공동체라는 대의명분을 빙자하여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했다면 대의명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대순의 모습은 일진회와 비교되기에 충분하여 일진회도 자기 돈으로 행동하게 된다. 동양의 고전적인 “덕본재말(德本財末)”이라는 관념 때문에 대순의 재화관을 흔히들 무소유적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대순 사상의 재화관은 순환을 전제하는 한 공동체주의 재화관보다 더 유행 지향적이다.

다음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가 공동체주의 환경위기 극복의 문제점을 순환성의 위기로 진단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순사상에서 탁월은 경제 순환을 위한 핵심관건이므로 시장제도내적 탁월성을 부정하고 정치적으로 다른 대안으로 핑계삼는 공동체주의적 정치를 매우 비판한다.

어느 날 종도들이 상제를 뵈옵고 「상제의 권능으로 어찌 장 효순의 난을 당하셨나이까」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 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기운을 받 아서 재앙을 해소하였노라」고 이르셨도다. (『전경』행록 3장 8절)

위 글은 가족과 학교와 같은 1차 공동체는 모든 조직에 우선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동체의 소중함에 대한 확신이 굳건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595)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탁월을 강조하여 서교의 독단에 빠져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던 중 동양의 유불선을 받아 들여 공동체의 환경을 확대 발전시키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공익의 기반인 개인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공동체적 탁월성만 강조하여 오히려 공익의 기반인 개인을 무너뜨려 기본적인 공익마저 무너뜨려 경제환경을 매우 피폐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탁월의 본질인 사회제도 개혁을 기능으로 하는 재화를 명리라는 개인적 목적으로만 운용함에 따라 우주적 순환마저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가 공동체주의적 재화관의 환경위기에 대하여 제시하는 대안을 살펴보면 유행적 공동체주의는 이득에 강한 소수의 횡포와 약한 다수의 대응 중 힘센 소수의 선택을 우선하는 공리주의와 반대로 힘이 약한 다수자에 대한 배려 윤리를 우선 제시하는 도통진경을 보여준다. 도통진경이란 두 가지 이상의 체계가 서로 유행적으로 작용하는 순환이라 할 수 있다.

힘 약한 다수자의 공통된 뜻을 도(道)라 한다면 힘센 자와 힘 약한 자의 화합이 이루어진 세계를 도통진경이라 할 수 있다. 유행적 공동체주의주의는 힘 약한 다수자의 뜻에 치우친 공동체주의와 달리 회귀적 공동체주의는 양쪽의 요청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상제께서 깊은 밤중에 태인읍에서 종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공사를 행하신 후에 그들에게 「이 공사에 천지 대신명이 모였으니 그들이 해산할 때에 반드시 참혹한 응징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마치시자 뜻밖에 태인읍으로부터 군중의 고함소리가 일어나는지라. 종도들이 상제를 모시고 산에서 내려와 이를 살피니 군중이 신 경현(辛敬玄)의 주막에 뛰어들어가서 세간살이와 술 항아리를 모두 부쉈도다. 원래 신 경현은 술장사를 시작한 이후 읍내 청년들의 호감을 얻어서 돈을 모았으나 그 청년들이 궁핍하면 냉대하므로 그들이 그의 몰인정에 분개하여 습격한 것이었도다. 그 이튿날 상제께서 경현의 주막에 가시니 그 부부가 서로 울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 하거늘 상제께서 아무 말씀을 않고 경현의 부인에게 술을 청하였으나 그 여인이 「술 항아리를 모두 깨었으니 무슨 술이 있사오리까」고 말하거늘 가라사대 「저 궤 속에 감추어 둔 소주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그 여인은 당황하여 「선생님 앞에서는 조금도 숨길 수 없나이다」고 말하면서 작은 병에 담겨 있는 소주를 따라 올리니 상제께서 경현 부부에게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이 다 나에게 있는 것이지 위치에 의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후로 모든 일을 잘 생각하여 할지어다. 그렇게 하면 앞길이 다시 열리고 영업이 흥성하리라」고 타이르시니라. 이 부부는 타이르신 대로 이사를 중지하고 허물을 고치고 장사를 계속하더니 얼마 안 되어 영업이 다시 흥성하여지니라.(『전경』 교법 3장 18절)

위 글에서 힘은 없지만 다수인 사람들이 신경현의 몰인정에 분개하고 있었으나 참고만 있던 공동체가 특정한 기운의 변화에 따라 폭발하여 신경현의 집을 습격한다.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영역을 두텁게 먼저 하고 보이는 영역을 나중에 얇게 해야 하는데 근본인 시장 내에서의 덕(德)에 대한 검토는 얇게 하고 말(末)인 제도 외적 명분만 두텁게 먼저 하는 신경현과 같은 사람은 실패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신경현 또한 마음을 잘 돌이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는 서양의 공동체주의가 도통진경 사상으로 변화된 유행적 공동체주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보여준다.

상제께서 김 갑칠이 항상 응석하여 고집을 부리나 상제께서 잘 달래여 웃으실 뿐이고 한 번도 꾸짖지 아니하시니 그는 더욱 심하여 고치지 않는도다. 형렬이 참지 못해 「저런 못된 놈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으니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언행이 아직 덜 풀려 독기가 있느니라.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셨도다 (『전경』교법 1장 11절)

공동체에서는 말을 잘하면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잘되어 계속 커지고 공동체에서 말을 잘못하면 공동체가 계속 작아진다. 재화 또한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 증여한 것은 그 남은 덕이 밀려서 더 크게 되어 유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못되게 유행시킨 재화는 그 화가 더욱 증폭되어 나에게로 유행된다.

서교와 대순의 재화관을 비교한다면 서교의 공동체주의 재화관은 이상은 높으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로써 사물의 숨은 기능을 살리지 못한다. 보들리야르가 『사물의 체계』596)에서 밝혔듯이 인간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사물이라 하듯 대순의 유행적 재화관에서는 신명이 계셔 함께 순환을 한다.

대순의 유행적 재화관은 개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공동체의 힘으로 사회 보장이 해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교와 공동체주의 재화관에서 공동체의 탁월은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한다. 서교와 생태주의는 모두 최대한의 국가개입을 요청하며 소수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사회복지를 희망한다.

유행적 재화관에서는 약자의 이익도 강자의 이익도 모두 하나로 간주된다.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사회적 강자도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는 내가 잘 되려면 내가 먼저 주면 된다. 우주는 순환하므로 공동체가 배려한 재화(財貨)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유행적인 재화를 늘이기 위해서는 다수지만 약자인 존재의 권익을 먼저 배려해 준다는 순서 하나만을 바꾸면 될 뿐이라고 한다. 유행적 재화를 쌓기 위한 순서를 알 때 도통진경이라 할 수 있다.

\<표4.4\> 대순사상의 유행적 재화관

| | 세부 내역 | 『전경』관련 구절 |

| :---- | :---- | ----- |

| 공동체주의적 재화관의 인정 | -필요에 의한 재화 인정 -공동체 이익만큼 공동체 정의우선 -효율만큼 증여중시 | 내가 먼저 모범을 지어야 하리라(교운 1장 15절) |

| 공동체주의적 재화관의 문제점 | -무임승차 -구성원의 배반 -상징가치의 측정불가능성 |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해짐(행록 3장 8절) |

| 공동체주의적 재화관의 문제점 해결방안 | -개인적 증여보다 사물의 유행성을 활용 -소수의 강자에 대한 견제를 유지함 -대화의 중요성 강조 | 청년들이 궁핍하면 냉대하던 사람을 공동체에 의해 바로잡음(교법 3장 18절) |

| 공동체주의와 대순의 재화관 비교 | -사물자체의 유행적 순환성 -증여의 순환 |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그가잘 되고 덕이 더 커져 나는 더 잘됨 (교법 1장 11절) |

공동체주의적 환경 위기 극복이 실패한 이유는 공동체주의적 환경위기극복이 추구하는 탁월이 자유지상주의의 자유와 사회계약주의의 사회정의 , 공리주의의 공익과 서로 충돌하여 탁월에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행적 공동체주의에서 자신의 공덕을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알 것이라 믿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인간상은 자유지상주의와 사회계약주의, 공리주의를 모두 아울러 환경문제를 해결할 인간상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환경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순의 유행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것을 요약하면 \<표4.4\>와 같다.

Footnotes

  1. 580)형 이상호와 함께 『증산천사공사기』를 집필한 이정립은 대순사상의 긍정적인 재부관에 대해 재부선시(在富善視)라 표현한다. (이정립, 『증산사상의 이해』, 인동, 1986, 157쪽 ),
  2. 581)대순사상은 유불선 중 특히 도교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신종교 중에서도 차별화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순 사상에 있어 도교적 요소는 주변적인 부분이 아니라 신위 등 핵심적인 부분에 나타난다. (고남식 「증산(甑山)의 도가적(道家的) 경향(傾向)과 《무극도(无極道)》의 도교적(道敎的) 요소(要素)」,『대순사상논총』Vol.17 No.-, 2004, 3~14쪽 )
  3. 582)경제인류학자 폴라니는 실제 오늘날 경제학에서 시장이라는 것은 자기조절적 시장으로 사회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원용찬, 「경제학의 방법론적 비판과 문화경제의 패러다임」, 『문화경제연구』Vol.1 No.1 한국문화경제학회, 1998. 28쪽)
  4. 583)大道廢焉有仁義, 대도가 폐하자 인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노자』 , 김학주 역해, 명문당. 1996 쪽93~쪽94)
  5. 584)대순사상에서 새로운 선도의 종장이 최제우로 나타나는 것은 동학이 도교의 역할을 맡았음을 암시한다. 대순 사상에서 동학이 실패한 것은 자유지상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대대적 자유지상주의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순 사상에서는 두 번의 계시를 통하여 대대적 자유지상주의의 참동학으로 동학 실패의 원을 풀어준다. (고남식 「대순사상에 나타난 동학의 위상과 증산의 참동학 전개」, 『대순사상논총』Vol.16 No.-, 대진대학교, 2003)
  6. 585)
  7. 586)대순사상에서 신명은 정신적 배경으로서 나타난다. 인간이 지닌 신명성 또한 그 외재적인 실재로서 이해 될 때에도 언제나 인간과 동행하며 또한 인간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경원, 『한국 신종교와 대순사상』, 문사철, 2011, 172~174쪽)
  8. 587)칸트와 불교는 공통적으로 자유를 윤리학의 근본요청으로 간주한다. (김진, 『칸트와 불교』, 철학과 현실사, 2000, 56~59쪽)
  9. 588)이정립은 대순사상의 긍정적인 노동관에 대해 녹로정정(綠路整正)이라 표현한다. (이정립, 같은 책, 161쪽)
  10. 589)(상략) 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農之工職業也 其外他商工留所 (하략, 선비는 상업의 직이요, 농업은 공업이다. 선비가 상업을 하고 농민이 공업을 하는 것을 직업이라고 한다. 『전경』교운1장44절) 개화기 당시 개화파 지도자이던 박규수는“사농공상이라고 사람을 구별하지만 사(士)가 농업에 임해 부지런히 땅의 재화를 키워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농민이 아닌가. 그리고 사(士)가 여러 가지 재료로 다듬고 만들어 백성들의 필요에 따라 기물을 개발하면 공장(工匠)이 아닌가. 사(士)가 물건의 유무를 가려 교역하고 사방의 진귀한 물건을 소통시켜 잘먹고 잘 살아간다면 이는 상인이 아닌가. 몸은 곧 그릇은 사(士)지만, 직업은 하는 일에 따라 농민과 공장과 상인으로 나뉘는 것이다.” (박규수, 『환재집」,「잡문」, 박기현, 『조선참모실록』, 역사의 아침, 2010, 262쪽) 위 구절에 비추어 보면 사지상(士之商)은 선비가 겸손하게 상인처럼 진리를 전하고 농민이 적극적으로 공장처럼 기교를 사용하여 공업에 종사해야 비로소 직업이 된다는 뜻으로 순환을 강조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사농공상 또한 사상분류이므로 애초에 사는 결단력 있는 금, 농은 생산력 넘치는 목, 상은 발양하여 세계에 유통시키는 화, 공은 모든 정보를 집약하여 자동화하는 기술인 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실제 종교와 같이 공업은 치수와 관계에 뛰어난 공공족(工共族)이 거주한 중국 남방에서 수극화의 이치로 도교에서 발생했고 상업은 화극금의 이치로 서교(화)의 기운이 강한 서양에서 융성했다. 인도에는 종교가 (사)가 많고 농업은 목극토의 원리로 중국에서 발전했다 할 수 있다. 순환적 경제관인 대순 사상에서는 선비도 자기의 식견을 공정하게 홍보하지 못하면 비록 물 한 그릇이라도 설혹 부모형제지간이라도 의지할 수 없다. (우리 공부는 물 한 그릇이라도 연고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공부이니 비록 부자와 형제간이라도 함부로 의지하지 말지어다. 『전경』교법1장7절)
  11. 590)(생략)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생략) (『전경』행록5장38절)
  12. 591)송대(960-1279)에 이르러 신유교는 불교를 수용하여 배우고 난 뒤 불교를 버렸다. (윤영해, 「주자의 불교비판연구」, 서강대학교 박사논문, 1997, 40쪽) 허무적멸은 도가의 초월경지인 허무와 불가의 열반의 경지를 적멸이라 하지만 유교는 불교의 공과 도교의 기를 개인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허무적멸을 비판한다.
  13. 592)대동은 『예기』 「예운」의 대동론에 잘 나타나 있다. 대동은 대도가 실현된 시대로 천하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천하위공)이었다. (이상익, 「유교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사상연구』Vol.3 No.-, 한국정치사상학회, 2000, 24~25쪽)
  14. 593)유학의 늦둥이 중용은 치우로부터 시작된 신의 질서의 붕괴로부터 전국시대가 초래한 극단의 시대를 균형의 시대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 (신정근,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사계절, 2010) 에릭 홉스봄은 현대 또한 극단의 시대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이용우 역, 까치, 1997)라 진단하므로 중용, 곧 균형과 해원상생은 우리 시대의 가장 필요한 사상이 된다. 영국의 기든스는 공동체와 개체, 구조와 행위를 조화하는 제3의 길을 위험사회인 현대사회의 대안으로 주장한다. 기든스는 베버의 ‘철의 감옥’을 ‘사회의 분절화’라는 긍정적 기능으로 해석한 짐멜을 활용하여 현대사회를 비관적으로 해석한 푸코와 베버의 비관주의를 경계한다.(김윤태, 「통합적 사회학의 가능성과 한계-앤서니 기든스의 사회이론」, 『사회와 이론』Vol. No.11, 한국이론사회학회, 2007, 69~75쪽)
  15. 594)이정립은 대순사상의 긍정적인 공동체관에 대해 사단사회(社團社會)라 표현한다. (이정립, 같은 책, 162쪽)
  16. 595)음양합덕을 종지를 첫머리로 하는 대순사상은 가족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주역에서 만물이 다 남녀라는 가족관계의 복잡계적 반영인 것처럼 주역을 실체화하는 대순사상에서는 그 실천적 의미가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사회적 환경이 나빠질수록 가족 문제가 더 표면화 되듯 대순사상은 혼란기인 개화기 가족관계의 문제점과 해결을 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다. (고남식, 「개화기 강증산 전승에 나타난 가족관계의 문제점과 해결방식」, 『겨레어문학』Vol.26 No.-, 2001, 건국대학교, 27~28쪽)
  17. 596)장 보드리야르, 『사물의 체계』(지식을 만드는 지식 , 2011)